사회의 선순환을 만드는 ‘밥 한 끼’의 기적

사회
복지·인권
서다은 기자
smw@c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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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빛, 복지시설 탐방] 다일복지재단 ‘밥퍼 나눔운동본부’
현재 밥퍼 나눔운동본부 모습 ©다일복지재단

다일공동체(이사장 최일도 목사)의 최초 사역인 ‘밥퍼 나눔운동’은 다일공동체의 오늘을 있게 한 섬김의 뿌리다. 오늘도 1천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며, 밥 굶는 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밥퍼 나눔운동본부의 김미경 부본부장을 만났다.

설렁탕 한 그릇으로 시작한 밥퍼 나눔

밥퍼 나눔운동본부의 역사는 32년 전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일공동체 이사장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 역전에서 사흘간 밥을 굶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해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했다.

최 목사는 끼니를 때울 대책이 없는 노인을 위해 다음날, 그다음 날도 밥 한 끼를 대접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런데 노인이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노인을 10명, 20명씩 데리고 나왔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전도사 시절, 최 목사는 점점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할 길이 없어 냄비 하나를 준비해 컵라면을 끓여 드렸다. 이 소문을 들은 무의탁 노인, 행려자, 노숙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밥퍼 나눔은 청량리 쌍굴다리 아래에서 14년간의 거리배식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에 이웃의 일곱 교회 후원을 시작으로 수십 교회와 단체들의 협력이 이어졌고, 컵라면으로 시작한 나눔이 따뜻한 밥 한 끼가 되어 매일 500명 이상의 도시빈민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일복지재단은 2002년 8월 9일, 동대문구청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작지만 오랜 소원이었던 '밥퍼 나눔운동본부'를 건립했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며 최소한으로 인간답게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

저마다 다른 배고픈 사연

밥퍼 나눔운동본부 이용자의 60%는 80세 이상의 독거노인이다. 무의탁 노인도 있지만, 가족이 있는 어르신도 많이 있다. 노인급식소가 아니라 무료급식소이기 때문에 노숙인, 일용직 근로자도 이용하고 있다. 현재,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연을 가진 1,200여 명의 인원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에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고 있다.

김 부본부장은 독거를 자처한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밥상에서 밥그릇 하나 덜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집에서 나와서 독거를 하는 거죠. 겉으로는 '혼자 살면 얼마나 속이 편한데'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경제적으로 힘든 자녀들을 위해 일부러 나와 사는 것이더라고요. 이런 분들은 25만 원 정도의 적은 노인 연금으로 쪽방 세를 내야하고, 병원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여기 와서 밥을 안 먹으면 안 되는 분들이예요."

이외에도 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키우는 노인, 병든 배우자의 간호를 하며 사는 노부부, 말조차 못 할 사연을 가진 노인 등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이들이 급식소를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급식소는 5개월째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시락을 2~3개씩 받아 가는 노인들이 있어 아침에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다리를 절뚝이면서 번호표 하나를 받고 한참 뒤로 가 또 줄을 몇 차례씩 서서 받아 가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김 부본부장은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께 '한 개씩만 받으세요'라는 말을 강하게 못 하겠더라고요. 저도 하루에 세 끼를 먹는데, 한 개씩만 받으라는 말은 '당신은 한 끼만 먹어'라는 말과 같잖아요. 2~3개씩 받는 분은 정해져 있어요.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모른 척하기도 하고, 일부러 밥을 여유 있게 더 준비해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세 끼니를 먹는데 그것조차 못 먹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타깝죠."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다

밥퍼 나눔운동본부가 위치한 동대문구는 규모가 작은 지역이다. 그런데 구의 전체 인원 대비 고독사 비율이 높다. 작년에만 90명이 고독사했고, 이 중에는 젊은이도 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직원들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쪽방에 사는 노인은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가장 고독감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직원들은 아침 일찍 급식소 문을 열어 놓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노인들은 새벽 6시 전부터 와서 함께 모여 TV를 보거나 직원들이 준비해 놓은 커피, 빵, 떡 등을 나눠 먹고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급식소는 노인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한 노력은 물론, 문화향유 기회가 적은 빈곤층 노인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명절에는 특식을 제공하고,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먹으며 함께 윷놀이를 한다. 어버이날에는 효도관광을 시켜 드리고 직원들이 자식이 되어 절도 올린다. 크게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생일잔치를 열고 있고, 성탄절에는 방한복이나 혹한기 대비를 위한 용품을 선물한다. 김 부본부장은 급식소를 통해 어르신들이 많이 밝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초반엔 남자 어르신들이 자주 싸워 큰소리가 나기도 했어요. 어르신들의 환경이 전보다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요. 가장 많이 변화된 건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반찬이 다르면 바꿔먹기도 하고요."

급식소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90세가 넘은 노인 중에는 20년간 이용한 분도 있다. 매일 만나서 인사하다 보니 일주일 넘게 얼굴이 안 보이는 분이 있으면 직원들이 연락하거나 집에 찾아가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쓰러져있거나 돌아가신 어르신을 발견해서 조치를 취한 사례도 있다. 김 부본부장은 세월이 흐르며 모두가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어르신들이 자기의 힘든 부분을 이야기도 하시고, 눈이 잘 안 보이니까 편지를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도 하세요. 핸드폰 하는 것 도와 달라, 이것저것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사소한 거지만 정말 가족이 된 것을 느껴요."

건강한 사회의 초석이 되는 밥 한 끼

초기 밥퍼 나눔 모습 ©다일복지재단

기초 공사를 잘해야 견고한 집이 완성되듯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구성원이 건강해야 나라도 잘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점점 늘어나는 노인의 인구로 국가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노인들이 건강해야 비용이 절약되고, 후손들의 어깨도 가벼워진다는 의미다.

김 부본부장은 20년이 넘게 일하면서 급식소가 제공하는 밥 한 끼가 건강한 사회의 초석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80세 이상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하지 않아요. '배고프지 않은 것, 이슬 맞지 않을 잠자리가 있는 것, 안 아픈 것' 이게 다예요. 어르신에게 드리는 게 밥 한 끼지만 오랜 시간 지켜보니 이 일이 사회 전체를 살리는 일이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급식소를 통해 육체적,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되면 어르신의 후손들도 어딘가에서 마음 편히 누군가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거든요."

급식소 이용자들의 대부분이 식사를 무료로 하지만 자율적으로 '자존심 유지비'를 100원씩 내고 먹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100원이 5백만 원이 됐을 때, 그 돈을 가지고 쓰레기장에서 아무거나 주워 먹는 필리핀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해외 19곳에 무료급식소를 설치해 아이들의 교육과 양육까지 책임지고 있다. 밥 한 끼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함께 살리는 것이다.

김 부본부장은 이러한 뜻깊은 일을 어르신들에게 알린다.

"어르신들에게 '우리가 모은 돈이 이번에는 우간다, 탄자니아에 갔다' 등의 소식을 전하면 정말 좋아하세요. 어르신 스스로 '나도 누군가를 살리고 있구나, 어딘가에 기여하고 있구나,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공격적인 성향도 많이 줄어들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자발적 나눔이 이뤄낸 기적

밥퍼 나눔운동본부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운영하고 있다. 구청에서 어르신 140명의 식사를 의뢰해서 그만큼의 예산만 지원받고 있다. 그런데도 32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 후원자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다. 김 부본부장은 특히 교회와 성도들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때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봉사하고 후원하는 건 교회와 교인들이에요. 과거에는 봉사자들에게 욕하고 우산으로 때리는 어르신, 칼로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묵묵하게 봉사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 때, 고3 학생이 어릴 때부터 모은 세뱃돈과 용돈으로 마스크 1천 장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마스크를 사러 다니며 오히려 학업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풀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봉사자 중에는 봉사 인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야간근무를 한 후 한숨도 못 자고 달려와 힘을 보태는 이들도 있다. 자원해서 하는 봉사와 후원은 여전히 급식소의 큰 힘일 뿐 아니라, 베푸는 이들이 더 큰 행복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일들은 세금으로 운영하면 얻을 수 없는 감동일 것이다. 정부가 거둔 세금으로 무언가를 운영하면 잘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용자들이 급식소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잘못 알았을 때,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 내놓으라고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후원으로 이뤄지는 것을 알고 난 후,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고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땅에 밥 굶는 이가 없을 때까지

코로나19가 발생한 초창기에 2주간 급식소 문을 닫았을 때, '굶어 죽겠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듣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다시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주변의 민원이 많이 들어왔고, 봉사자 모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것처럼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료급식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래서 김 부본부장은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일도 목사님이 유명하셔서 급식소가 풍족할 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아니에요. 여기는 날마다 어려운 사람들이 오는 곳이어서 필요한 것이 많이 있어요. 코로나19 이후 자원봉사자의 발길도 많이 줄었고 도시락으로 제공하다 보니 일회용품 값도 많이 들어서 모금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도움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밥퍼 나눔운동본부는 노인 인구의 급증을 대비해 건물 재건축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 재건축이 이뤄지면 급식소가 밥만 먹는 장소가 아니라 어르신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생활까지 할 수 있는 '노인문화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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