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관심이 많다. 이것은 지난 칼럼 [내 짝은 어디에?]에서 다루었다. 어떻게 결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결혼해야 하는 가이다. 항상 ‘왜(Why)’가 ‘어떻게(How)’보다 중요하다.
보통, 결혼을 왜 하는가? 끌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서? 남들이 다 하니까?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결혼을 왜 하는지 모르고 한다. 사회적 관습과 본성에 따라서 하는 정도이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하면 결혼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운전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차를 몰고 나가면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왜 결혼하는지 알아야 결혼관계와 가정을 잘 drive 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본질을 다루는 성경은 창세기 2장과 에베소서 5장이다. 창세기 2장은 구약적인 면에서, 에베소서 5장은 신약적 의미에서 결혼의 이유와 목적, 가치를 적고 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아담이 홀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정서적으로, 실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와주는 짝’이란 뜻의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 결혼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세계의 관리라는 사명을 돕도록 배필을 만드셨다. 이 때문인지 배필은 도움을 주는 천부적 자질들을 가지고 있다. 사명 없는 결혼은 허무하고 무력하다. 동역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결혼의 외적 목적이다. 내적 목적은 무엇인가?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 어려운 것이다. 둘이 하나 되는 것을 어려운 말로 하면 ‘연합’이라고 한다. 연합이 결혼의 목적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것이 연합이다. 살아보면 알지만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끌리는 감정으로 결혼하지만 원수가 되어 헤어진다. 미국 같은 나라는 이혼율이 50%를 넘어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혼하지 않는 모든 부부는 승리자들이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둘이 하나가 되도록 섭리하셨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인간의 신체기관이라든지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는 것을 보면 분명히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몸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한다.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들은 심지어 결혼하지 않고자 한다. 이런 말이 있다. ‘혼자 살자니 외롭고 둘이 살자니 괴롭다.’ 사람들은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고뇌한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어도 괴로워도 결혼해야 한다. 그것이 창조주의 결혼섭리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됨의 원형은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 되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혼을 통해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이해하고 배우길 원하신다. 성삼위 하나님도 그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것이 아니다. 특히 성자는 성부에게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성령은 자기 이름도 없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린다. 예수님 승천 후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성령의 목적이며 사역이며 기쁨이었다. 성삼위 하나님의 연합은 이 우주에서 가장 지고한 가치이며 이 연합을 배우는 것이 바로 결혼의 이유이며 목적이다.
신약적으로는 에베소서 5장에 결혼의 목적이 나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이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창세기에 선포된 결혼진리를 그리스도와 결부시켜 더 심오하게 드러내었다. 바울은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의 신비를 배우는 제도임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남편이고 교회는 아내다. 그리스도는 부족한 신부인 교회를 선택하였다. 그리스도는 아내인 교회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셨고 교회가 영광스런 신부가 되기까지 섬기신다. 신약적으로 결혼은 그리스도의 섬김을 배우는 장이다. 이것이 신약적인 의미에서 결혼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며 결혼의 목적이다. 완전한 배우자는 없으며 배우자에게 완전을 요구하면 그때부터 그 결혼은 불행해진다. 결혼은 완전한 배우자를 만나 그 섬김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배우자를 만나 그를 섬기기 위해서 한다. ‘1+1=1’ 이라는 신비한 수학이 가능하게 하려면, 둘 중 하나는 0이 되든지 혹은 각자가 0.5가 되든지 해야 한다. 결혼을 통해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섬김과 희생, 심지어 목숨 버리심을 배우고자 결심하면 그리스도를 배우는 기쁨이 넘치며 결혼생활의 놀라운 가치와 행복을 알게 된다.
기독청년이여, 시대를 넘어선 결혼의 본질적 목적과 결혼 진리를 알 때 결혼은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 결혼의 목적을 알고 결혼하라! 기독청년, 파이팅!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