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병의 시작
세계보건기구(WHO)는 두통을 사지(四肢) 마비, 치매, 정신 질환과 함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4대 질환으로 꼽았다. 필자는 이 중 두 가지를 경험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원인은 극심한 교통사고였다. 이 사고로 팔다리뼈가 피부 밖으로 터져 나온 개방성 압박골절을 당했다.
뼈가 노출되면 세균이 들어가 패혈증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패혈증 우려가 높아 사지를 절단해야 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복되어도 걷지 못하고, 의사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최악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왼쪽 다리는 마비가 풀리지 않아 1년여를 끌고 다녀야 했다. 피눈물 나는 재활 속에서 현재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사고 후 원치 않는 선물로 찾아온 것이 하나 있었다. 두통이었다. 필자는 "두통이 뭐예요"라고 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책에 나온 두통이라는 질환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을 정도로 건강했다. 극심한 머리 통증을 겪으면서 얻은 것은 '고통'이라는 두 글자였다.
두통의 원인을 치료하는 약은 없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진통제만 있다는 것을 아는 의사였기에 더욱 힘들었다. 약으로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참자'며 지내온 세월이 무려 8년이었다. 이런저런 치료법을 연구하며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 머리 아픈 증상에도 순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중(頭重, 머리가 무거움) → 두통 → 현기증 → 오심(메스꺼움) → 졸도(일과성)나 중풍
뇌혈관질환은 두통을 지나치는 경우가 없었다. 유전 성향이 강하면 두통에서 곧바로 현기증이나 오심, 졸도, 중풍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다. 뇌혈관질환은 두통에서 시작되니, 두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다음도 치료할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기존 치료는 '증상 치료'일 뿐 '원인 치료'가 아니다. 그래서 두통을 잡고 들어갔다. 우리가 평생 두통에 쫓겨 다니는 것은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니 고치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니까 죽는 날까지 시달리는 것이다.
두통의 원인 탐구를 시작해보자. 두통은 의학적 관점에 의해 1차성과 2차성 두통으로 나누어진다.
1차성 두통은 원인불명의 두통이다. 편두통, 긴장성두통, 자율신경두통 등이 있다. 2차성 두통은 특별한 원인이 있는 두통이다. 주로 뇌출혈이나 뇌종양, 뇌막염 등에 의해 발생하는 두통을 가리킨다. 50대 이후 갑자기 발생하는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통증이 온다. 의식혼미와 언어장애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는 성공적이다. 그런데 치료 성과가 엉망인 것은 무슨 이유인가. 원인을 모르는 1차성 두통과 원인을 아는 2차성 두통 가운데 원인 치료가 되는 것은 뇌종양과 뇌막염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달의 반대편처럼 미지(未知)의 영역에 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원인 없는 두통은 없다. 원인을 모르는 두통이 있을 뿐이다.
뇌의 평균 무게는 약 1400g이다. 뇌는 350㏄쯤 되는 물인 뇌척수액 위에 떠 있다. 그 때문에 부력(浮力)이 생겨, 뇌는 가해지는 충격을 35분의 1(약 3%)로 줄여서 받을 수 있다. 프로 레슬러 김일 선수가 박치기해도 멀쩡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 부력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뇌혈관은 전체 혈관의 약 2%에 불과하지만, 몸 전체 혈액량의 약 15%와 산소와 포도당의 약 25%를 소모한다. 뇌는 매우 소모적인 장기이다. 뇌가 대사하기 위한 에너지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사고, 언어, 기억, 청각, 감각 행동의 중추인 대뇌는 생각을 조합하고 복잡한 일을 해결하는 사령부 같은 곳이다. 소뇌는 조화로운 동작을 위해 반사와 평형 유지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뇌는 심장과 더불어 생명을 유지하는 소중한 존재이며 '살아 있음'의 시작과 끝이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방어장치로 중무장해 있다.
작은 가시에 찔려도 난리를 치는데 가장 핵심부위인 뇌와 그 방어 시스템인 머리가 아파 지르는 비명을 방치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차성 두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 8년을 방황한 필자에게 서광을 비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의 의학서적인 <황제내경>이었다. 이 책에는 '막히면 아프다'는 '불통즉통(不通卽痛)'이란 문구가 있다.
필자가 환자들 앞에서 보여주는 통증 체험이 있다. 다섯 손가락 중 하나만 누르고 "어느 손가락이 아프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눌린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이다.
눌리고 있으면 혈액과 신경순환이 방해를 받는데, 이를 해결하라는 사인이 통증이다. 이대로 놔두면 손가락이 위험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뇌가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행은 대개 다음의 순서로 일어난다.
아픔 → 저림 → 무감각 → 썩어들어감 → 절단이나 패혈증 → 사망
아픔의 끝이 사망이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아픔을 싫어한다. 아프다고 느끼는 감각은 위험을 알려주는 사이렌이다. 정상 조직에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신경이 존재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통증으로 이 사실을 알리려고 애쓴다. 한센병처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병은 매우 드물다.
통증의 원인을 MRI나 CT로 못 찾으면 대개 이렇게 말한다. "큰 문제가 없네요"라고. 위로되는 이야기지만, 필자의 귀에는 정답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뇌 조직 자체에는 아픔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痛覺) 신경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서의 통증은 두개골막이나 혈관벽, 뇌신경, 부비동, 근육처럼 통증에 민감한 조직이 충격이나 자극을 받아야 느껴진다.
레고 블록으로 다양하고 신기한 조형물을 쌓을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검사기기 조합에 최고 전문가의 식견을 덧입힌 '질병 맞춤형 검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통증을 없애려면 병목구간을 없애야 한다. 통뇌법 검사체계는 진료 현장에 무게중심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이 치료법 덕분에 필자도 두통을 끊어낼 수 있었다.
「통뇌법 혁명: 중풍 비염 꼭 걸려야 하나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