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부동산 안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정작 정책 신뢰성을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청와대 다주택 참모진이 여전한 상황 속에서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시그널만 남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 장관으로부터 주택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에 대해 보고받은 뒤 김 장관에게 "투기성 매입에 대해선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높다"며 "다주택자 등 투기성 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는 부담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강민석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으로 전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투기성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 부담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세금 부담 완화,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 확대, 추가 부동산 대책 적극 마련 등 크게 4가지였다.
특히 투기성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는 보유세 인상의 도입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유세는 주택이나 토지를 보유할 때 내는 세금으로, 보유세 인상은 평소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대표적 부동산 철학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에서 "부동산 보유세는 국제기준보다 낮다"며 "높여야겠다"고 인상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그동안 청와대는 중산층의 저항을 의식해 고가 및 다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먼저 보유세 인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보여왔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도 이미 김 장관이 최근 공공연하게 밝혀온 것들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다. 단지 김 장관이 구상 중이던 추가적인 부동산 정책 수단을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확인했다는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 보인다. 6·17 부동산 대책 이후 "정부 정책이 종합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김 장관에게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2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도 집값 때문에 논란이 많다는 무소속 이용호 의원의 질의에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와 함께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동산 시장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정부 대책은 4차례에 불과했고, 그러한 4차례의 대책들은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게 김 장관의 답변 취지였다.
하지만 "서민들 분통 터지는 얘기(심상정 정의당 대표)", "어떻게 입증할지 대통령이 입장 표명해야(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등 야권은 일제히 김 장관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했던 각각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민간 시장 내 구체적인 작동 여부보다는 주무 부처 장관의 "문제 없다"는 식의 태도가 야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거부감에 불을 질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비서관급 이상 대다수의 청와대 참모진이 한 몫 했다. "살 집 빼고는 다 팔라"는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 따른 국민들의 신뢰감 상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실거주 목적의 주택 1채 외에는 모두 처분하라는 6개월 전 노 실장의 권고를 따른 경우는 김연명 사회수석비서관, 한정우 홍보기획비서관 단 2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6개월 전 11명이었던 다주택자(청와대 설명 기준)는 중간에 퇴직·승진·신규 임명 등의 인사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15명까지 늘었다. 최상영 제2부속비서관, 조성재 고용노동비서관, 유정열 산업통상비서관 등 3명의 신규 임명자들이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다주택자로 나타났다.
다만 청와대는 현재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가운데 다주택자에 해당하는 비서관은 12명이라며 오히려 6개월 전보다 줄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주택 보유자는 현재 12명으로, 최초 6개월 전에 권고가 있었던 때보다는 다주택 보유자가 줄어든 상황"이라며 "이달 안으로 다 (처분) 결정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처분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을 얘기하며 지난해 12월16일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에게 처분을 권고했던 노 실장 조차 정작 6개월 이상 실행에 옮기지 않자, 신규 임명자들은 물론 기존 참모들까지도 '버티기'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개월 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추후 비서관급 이상 신규 인사 과정에서의 다주택자 우선 배제 기준 적용 여부에 대해 "(반드시) 그렇다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임용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하나의 잣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나온 이날 노 실장의 처분 재권고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것도 이행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노 실장이 보유하고 있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아파트(67.44㎡)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22.86㎡) 가운데 청주 아파트를 처분 대상으로 밝히면서 오히려 스스로 진정성을 의심 받기를 자처했다는 냉소적 반응까지 청와대 내부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애초 노 실장이 반포 아파트를 처분할 것이라고 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뒤집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데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도 거리가 멀다.
이러한 청와대 참모들의 모습을 보며 참여정부 출신 인사도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기숙 전 노무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참여정부 고위공직자 중에는 다주택자가 많았던 기억이 없는데 이 정부에는 다주택자가 많아 충격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