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지난 50년 동안 교회의 목표를 ‘성장’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다보니 사회정의 실현과 민주적 생활양식 함양을 등한시하며 대형교회로 급성장했다. ‘성장’의 정점을 지난 코로나19로 인하여 '성장'에서 ‘건강’으로, ‘발전’보다 ‘회복’과 ‘세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어떤 교회를 세워나갈 것인가. 그런데 최근 수년간 대다수의 교회나 목회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건강한 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딱히 ‘건강한 교회’라 말하기도 뭐한 경우도 있다. 비정상적이면서 정상을 말하는 것과 같다. ‘비만’을 가지고 ‘건강’이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교회 세움’이나 ‘건강한 교회’에 대한 생각이 막연하거나 말이 다르다면 이는 한 번쯤 개념정리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1997년 이후 세미나와 집회에서 ‘건강한 교회, 건강한 목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강연을 하면,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건강한 교회에 대한 기초나 근거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과 건강한 교회의 표지는 어떤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교회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인가? 참 교회의 표지들(marks of the church)이란 그것이 있으면 교회이고, 그것이 없으면 교회가 아닌 것들을 칭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모여서 예배하고, 종교적인 일을 하면 그저 ‘교회’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진다. 본래 교회는 사람들끼리 모인다고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교회의 기초는 ‘바른 신앙고백’이다. 이를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가’이다. 우리가 느끼고 좋다고 판단하는 것 중심으로 ‘건강한 교회’를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감성적으로 은혜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재정의 투명성이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운영된다고 꼭 건강한 교회라 판단해서도 안 된다. 판단의 기준이 ‘성경적인가’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첨부해서 다른 것을 붙이게 되면 이단이나 사이비일 가능성이 오히려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건강한 교회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돼야 한다.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교회의 존재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병원이나 학원이나 고아원, 양로원을 세움이 아니라 ‘교회 세움’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고 선언하신 것처럼,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친히 세우시고 통치해 나가신다.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이처럼 성경에 근거해 성경적 복음에 충실한 교회만이 ‘교회’이다. 개혁주의교회라면, 복음의 바른 선포를 교회의 표지로 삼아야 한다.
또한 주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리라’하셨기에 성례의 신실한 시행이 교회의 표지이다. 성찬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는 모든 지체들이 함께 서로를 돌아보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 가는 일을 권면하고 함께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도록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정상적으로 잘 되지 않을 때 심지어 사랑하는 심정으로 벌을 주어서라도 주의 몸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이 세상에 밝히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 치리(治理)인데, 이를 교회의 표지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이다. 예배가 순전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회복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엔터테이너’들을 육성하여 인간들의 취향과 감성을 자극하거나 형편을 고려하는 것이 앞서지 않아야 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해 가는 교회임이 더 중요하다.
더 나아가 크리스천들이 부르신 곳,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답게 주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삶속에서 바르게 행하며 받은 은혜와 은사를 따라 우리 자신들을 온전히 헌신하므로 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자의 은사에 따라서 가정과 학교, 직장, 일터 사역에서,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평신도 일터 사역의 모델들을 발굴하고 나와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에 교회가 같이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시대에 감당해야 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한 부분이다.
주님의 부르신 소명은 다르지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은 분명 ‘사명’이다. 그 사명을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감당하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한 교회나 건강한 성도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찌보면 모든 성도는 다 거룩한 직분자다. ‘평신도’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다. 그것은 기능상의 차이요, 직분이든 아니든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부르신 목적을 알고 그 일을 수행하면, 그 자체가 ‘성직’이다.
건강한 교회는 일상에서 성경이 말하는 코이노니아, 성도의 교제를 이룬다. 그래서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공동체이다. 조직이나 행정이나 교육 등 모든 활동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이가 동등하고, 모든 직분이 동등하다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현실로 드러내야 한다. ‘직분’은 특권이나 명예가 아니라 주님과 성도들을, 그리고 교회를 ‘섬김’이다. 교회 일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가 가장 중요하다. 교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 되는 것이 ‘함께’이다.
오늘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다음세대’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믿게 된 분들을 잘 양육하는 것과 더불어 다음세대에게 믿음을 계승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현실적 문제에 급급하여 다음세대의 교육, 다음세대의 교회가 현재보다 더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일을 등한히 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정신차려 기독교 문화를 흘려보내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 다시 세움의 기초는 다른 말로 ‘교회의 건강성’이다. 변화에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 ‘생존성’이자 ‘건강성’이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기반이 목회생태계이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은 이런 고민을 가지고 각계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매년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될 만한 교회를 선정하고 목회자를 발굴하여 소개하려 한다. 이는 ‘교회 세움’에는 ‘교회 다움’과 ‘목회자 다움’ ‘성도 다움’이 전제된 건강한 교회가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어찌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앙 행태가 알곡과 가라지로 나누어졌다. 136년만의 예배를 중단하는 참담함을 보며 너무도 서글퍼서 통곡했다. 아합왕 때 바알에게 무릎끊지 않은 남은 종들이 있었다. 이 시대도 그런 시대 아닌가.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이 나와야 한다. 세상권력이나 여론에 아첨하지 아니하고 교회 본연의 신앙과 예배모습을 지키는 그런 교회가 사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건강한 교회상(像)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건강한 교회라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여부이다. 즉 꺼져가는 기도의 불을 다시 피우는 기도사역, 성경의 말씀을 용기있게 선포하는 설교사역,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사역, 병든 세상과 이 땅을 치유하는 사역을 전제로 한다. 더 나아가 공교회성을 지닌 목회사역의 아름다운 계승과 교회의 공적 사회적 책임, 기독교 문화로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교회의 모습 등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단과 사이비들의 사교회로 인한 폐해를 보며 이런 한국교회의 공교회성은 더욱 더 절실히 요청되어 진다. 건강한 교회를 지향한다고 문제점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 땅 교회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 각자의 이권과 자리앞에 갈등과 분열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시험들기 딱 좋다. 코로나 위기 가운데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교회 공동체의 연결, 연합에 한국교회는 하나 되는 네트워크를 도모해야 한다. 항상 문제가 있기에 그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기도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됨을 지켜감으로 우리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시대, 건강한 교회의 가장 효과적인 일은 묵묵히 교회가 교회됨에 바로 서 그런 빛을 이 세상에 비추며, 하나 되는 일이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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