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가 27일 ‘탐욕의 시대 절제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이 목사는 “풍요의 시대, 절제하기 힘들어져 간다”며 “무절제로 탐욕의 노예가 되기 쉽고 충동질하고 유혹하는 것들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욕망하게 하며 더 가지지 못하면 실패하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물량주의가 그리스도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모든 영역에서 과잉 현상이 벌어진다.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너무 넘치는 풍요에 지쳐가고 있다. 음미를 모르고 탐닉만 남는다”고 했다.
이어 “절제력을 잃으면 중독에 빠진다”며 “중독은 우상숭배와 같다. 시간과 돈과 열정을 다 쏟고 있다면 숭배다. 한번 우상에 빠지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억압한다. 중독은 강박증으로 연결된다. 중독이란 자신이 의존하는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다. 좀 더, 좀 더 하다가 덫에 걸려든다. 제어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다는 뜻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절제는 죄성과 연결된다”며 “죄성은 자아 중심적 만족을 위해 쉬지 않으려는 속성을 드러낸다. 움켜쥐고 쌓고 버리고 비울 줄 모른다. 갈수록 복잡해지며 스스로 메여 버린다. 노예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핍증세 때문이다”며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는다.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려고 한다. 소비주의 시대에서 박약한 의지로는 어디로 끌려갈지 알 수 없다. 소유 중심의 삶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유혹을 거절하기 어렵다. 현대인들의 욕망은 커질 대로 커져 있다. 절제보다 방종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면 절제력은 붕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절제는 영적 성숙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절제 없는 성숙은 불가능하다. 절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삶은 제한적이다. 절제하지 못한 삶은 낭비다. 에너지를 과다하게 엉뚱한 곳으로 쏟으면 갈수록 삶은 붕괴된다. 소비와 방종의 끝은 파구이다. 과도한 힘의 방출을 막아야 한다. 단순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적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 불행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절제의 훈련을 빼놓을 수 없다”며 “승리의 레이스를 위해서 가장 큰 난적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실패다. 성경적인 절제란 단순히 도피적이거나 금욕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절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일이 선행된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 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내적 결핍과 공허를 채워야 절제가 가능해진다. 하나님 안에서 충분한 만족을 하면 단순해진다. 절제력을 가질 때 자유가 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절제 훈련이 되어야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누린다”며 “절제력에서 집중력이 주어진다. 그때 에너지가 집중되고 풍요로워진다. 내가 살고 싶은 마음뿐만 아니라 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 나를 지배하던 것에서부터 풀려날 때 찾아오는 기쁨은 크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절제는 성령의 열매다”며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갈 때 맺히는 열매다. 작은 순종을 할 때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절제를 위한 절제를 하면 안 된다. 기독교는 자기수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절제는 의미를 잃는다. 절제 훈련이 안 되면 갈수록 혼란해진다. 자기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아울러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날 때 이타적인 삶이 시작된다”며 “절제력이 높을수록 삶은 강력해진다. 에너지가 모이며 움켜쥐려는 모드에서 주는 모드로 전환된다. 절제할 때 삶은 단순해진다. 목적이 분명하다. 자기 절제의 훈련으로 성숙에 이를 때 주를 위해 살 준비가 된다. 절제하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 절제의 미가 여유로운 삶을 제공해준다. 갈수록 삶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