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단체 지원을 강요하는 등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81)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김 전 실장은 법정구속 되지 않았다.
앞서 김 전 실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지만, 대법원에서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려 425일 만에 석방됐다.
이날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지만, 김 전 실장이 이미 1년 넘게 수감생활을 해 미결 구금 일수가 선고형을 이미 초과했기 때문에 재판부가 별도의 법정구속은 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기소된 조윤선(54)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현기환 전 정무수석과 허현준 전 행정관도 각 징역 1년6개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상고심에서 강요 부분에 대해 판단을 달리해 그 점을 반영하고 기록에 나타난 양형 조건들을 다 고려해 형을 다시 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김 전 실장 등이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이 강요죄에서 '협박'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하고 일부 감형한 것이다.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요구를 '해악의 고지'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판결이 끝난 뒤 취재진이 '아무런 입장 없나'고 묻자 김 전 실장은 "실형을 선고했는데 무슨"이라고 답했다. 조 전 수석은 '오랜 시간 재판 받았는데 하고 싶은 말 없나'는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김 전 실장 등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상대로 어버이연합 등 21개 보수단체에 총 23억8900여만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전 수석 등은 2015년 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31개 단체에 35억여원을 지원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2014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국정원 특활비 총 45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1심은 "최초로 보수단체 자금지원을 지시했고, 구체적인 지원 단체명과 금액을 보고받고 승인해 실행을 지시했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조 전 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김 전 실장을 정점으로 한 일반적인 직무권한"이라며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단을 내렸다. 다만 1심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도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이 전경련에 보수단체 지원을 요구한 행위는 직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는 점이 강요죄에서의 협박으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의 헌법적 의미나 우리 사회 공동체에 미친 영향은 대법원의 판결로 충분히 확인됐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조 전 수석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