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피아, 그녀(she)와 그것(it)의 사이
휴머노이드를 구현한 소피아(sophia)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우리들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으로 간주되어도 무방한가? 오늘의 이야기는 소피아이다. 우리가 소피아에게 그녀(she)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인칭대명사인 ‘그녀(she)’는 사물을 지칭하는 ‘그것(it)’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피아, 인공지능으로 기획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그녀’라고 불렀다. 그럼 소피아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가? ‘그것’이라 말하지 않고 ‘그녀’라고 했으니 말이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소피아를 그녀라고 말했을까? 우리처럼 생각할 수 있는 존재여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처럼 생각할 수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기특해서 그런 것인가? 우리에게 ‘그녀’와 ‘그것 ’, 즉 인칭대명사와 사물을 지칭하는 대명사 사이에서 엄청난 두려움이 스쳐지나간다. 만약, 소피아 로봇이 ‘그녀’라고 불리면 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또는 소피아가 ‘그것’으로 불린다면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고 인칭 대명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기계를 사물로 간주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 우리는 기계를 인간과 유사한 여러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유로 인해 인격처럼 대우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물었다. 인간이란 존재, 우리가 왜 다시 물음을 제기해야 하는지를 이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 호모 릴리기우스(Homo Religius), 신(神)을 찾다
과거 우리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에 국한 시켜서 그 외의 종들과 구분시켰다. 다시 말해 사유하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인격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유하는 존재 즉 휴머노이드의 구현으로 인해 과거 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유를 넘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은 소외될 지경에 놓였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즉 사유의 존재를 뛰어 넘는 인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종교적 존재’이다. 호모 릴리기우스(Homo Religius)는 신(神)의 존재를 상정한다. 종교적 존재인 인간은 초월자인 신을 동경하고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인간은 사유의 함정에 빠져 때론 고독에 놓여있다. 슬픔과 코믹을 즐기는 가운데 인류는 힘든 실존의 단계에서 신의 존재를 찾는다. 그(녀)는 바로 신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신에게 기도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그(녀)는 바로 인간을 말한다.
하지만 그녀라 불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종교적 실존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의 두뇌를 업로드 한 슈퍼컴퓨터라고 불리지만, 여전히 그들은 인간만이 가지는 유일한 실존, 호모 릴리기우스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신의 존재를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수억 만개로 촘촘히 연결된 신경망을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해 낼 수 없다.
* 아프리오리(a priori), 하나님의 형상
인간이 종교적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험이전의 것, 아프리오리(a priori)의 상태에서 종교적 실존을 얻기 때문이다. 인류는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설계된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 실존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류가 슬픔과 고독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신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휴머노이드와 같은 존재는 경험 이전의 것, 다시 말해 그들이 제작되어 질 때 종교적 실존은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 삶의 형태들뿐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다양한 삶과 경험 그리고 생각들이 얽혀진 신경망을 구축했더라도 그들은 종교적 실존을 가질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창조에 일부분이고 조각이다. 신의 형상(Imago Dei)으로의 모습,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이다. 휴머노이드, 그들은 종교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함께 했던 존재가 아니다. 휴머노이드에게 ‘호모 릴리기우스’는 저 멀리 있는 은하수의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계속)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