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가 22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한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창조연대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양 교수는 “창조연대 논쟁은 지구연대에 대한 1차적인 논쟁”이라며 “특히 창조진화 논쟁에서 척추와 같은 이슈”라고 했다.
그는 “지구연대 논쟁에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성경이 말하는 6천년인가, 아니면 과학이 보여주는 45억 년인가’ 하는 것”라며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젊은 지구론자들이며 창조과학회가 대표적이다. 나머지 모든 입장은 45억 년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 속에는 진화론자, 진화론자가 아닌 사람들도 섞여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과학적인 데이터는 반드시 해석을 하며 여기에는 1차 해석 층과 2차 해석 층이 있다”며 “1차 해석 층은 어떤 데이터를 해석하되, 해석자의 주관과 세계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데이터다. 그에 반해 2차 해석 층까지 있는 데이터의 경우 해석자의 배경과 신념이 반영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진화론, 그 중에서 소진화는 단순한 변이로 1차적인 것이지만, 대진화(모든 생명 세계가 하나 또는 몇몇 조상으로부터 출발했다)는 2차 해석층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연대 문제는 1차 해석 층에 해당된다. 그러나 1차 해석 층임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해석하는 것에는 성경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 이유는 성경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성경은 사실적 문제에 있어서 무오하며, 신앙과 도덕적 문제에 있어서는 무류하다”며 “(그러나) 복음주의 입장에서 성경관을 말할 때 중요한 선언 중 하나인 ‘시카고 선언’(1982)에 의하면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성경이 과학 교과서, 역사 교과서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 교수는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비일치주의’라고 한다”며 “성경은 무오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과학이나 그 외 현대 학문의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학과 성경의 권위를 말할 때도 성경이 주는 메시지의 목적과 과학을 통한 메시지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이 과학 교과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만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까지도 왜곡할 수 있다”며 “그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이다. 이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온 우주가 움직이고 지구는 정지해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에 무려 67번이 나온다며 지금도 성경은 천동설을 주장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구의 창조연대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이 아니라 과학으로 돌아가서 봐야한다”며 “오랜 지구의 증거로 대표적인 방사능 연대는 방사선 동위원소가 지구상에 많은데 모원자에서 자원자로 붕괴하게 되면서 안정된 다른 자원자가 되며 붕괴되는 속도를 통해서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연대 측정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방사능 연대 방법은 절대 연대 측정법으로서 많이 사용되며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오랜 지구의 증거로 자주 사용되는 지질학적 증거들이 있다. 강 하구 델타에 있는 두꺼운 퇴적층, 연층, 증발퇴적물(소금층), 빙핵(2,000m의 얼음 기둥에는 16만개의 층이 확인됨), 오래된 암석(38~39억년), 월석(32~40억년), 운석(44~46억년) 등”이라며 “(그러나) 6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연대는 틀렸고, 잘못 측정했다고 한다. ‘방사능 붕괴가 지금처럼 일정하게 일어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핵 에너지와 화학 에너지는 크게 다르다. 핵 원자는 안정되게 붕괴한다. 강한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전혀 붕괴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그 만큼 방사능 원소를 가지고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안정됨을 뜻한다. 방사능 연대측정은 아주 정확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지층의 오랜 연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우주와 지구가 오래 되었다는 과학의 증거는 거의 압도적”이라며 “방사능 연대 측정의 발견의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의 형상대로 지으시면서 그 형상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17세기의 신학자 멜데니우스(Rupertus Meldenius, 1582~1651)는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자유를, 이 모든 일에 있어서는 사랑으로’라고 말했다”며 “맞고 틀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