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항상 피곤을 이기며 즐겁게 사는 비결은, 언제나 주님의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언약 안에서 쉼을 누리며 신령한 기쁨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지치게 만드는 죄의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겸손하게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듯한 힘찬 비상의 삶이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
- 정필도, <믿음이 쉬울 리 없지요>
식물은 먼저 씨앗으로 자신을 축소시켜 땅 밑으로 들어가야 새 생명으로 올라오고, 동물과 인간 역시 태 안에서 정자와 난자로 먼저 낮아지고 작아져야 한다. 사람의 도덕적, 정서적 삶에서도 자기 부인의 죽음을 거쳐야 원숙한 인격으로 재상승할 수 있다. 자연 안에 이런 패턴이 있는 것은 이 패턴이 먼저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설명은 기독교 비판자들에 의해 모순적이라고 자주 혹평을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무덤에 갔던가?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거기에 있었는가? 누구에게 예수가 나타났으며, 또 언제 나타났던가? 하지만, 비록 복음서의 서술들이 다를지라도, 그것들은 모순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그처럼 예기치 못하고 초자연적인 사건에 관한 목격자의 설명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정확히 반영한다. 복음서 설명의 차이들이 오히려 부활의 진실성을 확인해준다. 만약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대중을 속이려는 음모를 꾸몄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더 일치된 설명들을 고안해냈을 것이며, 여인들을 최초의 증인들의 자리에 두지도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여성들의 증언은 쉽게 묵살되었고 가볍게 취급당했다.
-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버거, 저스틴 테일러,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