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라인교회의 등장
온라인교회, 네트워크교회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 교회는 유비쿼터스(Ubiouitious) 기술과 세계적인 대점염병이 가져온 새로운 일상(new normal)의 만남이 만들어낸 신앙고백공동체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사회소통망(SNS)을 수단으로 교회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현대 정보통신기술(IT)은 새로운 방식으로 영적 필요를 채우는 목회를 가능하게 한다. 코비드19의 등장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비대면 또는 간접대면 방식의 예배, 세례, 성찬, 교육, 상담 등을 대중적 원격 방식으로 제공하거나 소통의 길을 열었다.
감염병 권위자들, 과학자들은 인류가 코비드19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 중앙방역대책본부장 권준욱 박사는 2020년 4월 13일 일일 브리핑에서 “코비드19가 발생하기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라고 선언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죽음의 바이러스와 공존, 동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인간이 3년 주기나 연례행사처럼 대역병 대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꼽는 근거는 주로 3가지이다. 첫째,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백신이 개발되면 감염자의 고통이나 사망률을 낮출 수 있지만 감염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둘째, 완치 후 재감염 또는 재활성화가 반복되고 있다. 셋째, 무증상자 비율이 높다. 자신도 모른 채 바이러스를 대규모로 감염시킬 수 있다.
지난 반년 동안의 세계의 감염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역감염이 증가되고 감염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인다. 잠시 봉쇄했다가 경제활동을 서둘러 재개한 나라들인 미국, 브라질, 인도 등은 바이러스 재 확산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코비드19의 확산 양태는 과학자들의 판단이 정확함을 뒷바침한다.
며칠 전의 바이러스의 변이 소식은 우리를 더욱 침울하게 만든다. 미국의 어느 연구팀은 코비드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 2(SARS-CoV-2)가 인간의 세포를 10배 더 쉽게 감염시킬 수 있을 정도로 변이되었다고 알렸다.
작은 침방울을 거쳐 전파되는 코비드19와 전이된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밀집 모임을 하지 않는 것과 '사회적거리 두기' 실천이다. 작은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하여 호흡하고, 큰 소리로 찬송을 하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형태의 예배 모임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대역병이 가져온 인간 삶의 혁명적인 전환(paradigm shift)은 교회를 향하여 뉴 노멀 시대에 부합하는 교회, 새로운 개념의 예배를 요청한다. 기독교가 오순절 날에 출범하여 2019년까지 약 2000년 동안 유지해 온 예배 방식과 신앙생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대안은 플랫폼 교회, 온라인 예배-성례-세례-목회이다. 예배당 중심의 집단예배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된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이다. 온라인 사역에 심혈을 기울이는 목회 시대가 열린 것이다.
2. 뉴 노멀 시대의 교회
뉴 노멀 시대는 목회자에게 창조성, 상상력, 역동성, 유연성 발휘를 요구한다. 유비쿼터스 방식의 의사소통 정보전달 기술(IT)은 소시얼 미디어 포룸, 가상 회합, 비대면 팀 미팅이 가능하게 한다. 간접대면 형태의 ‘교회’를 형성과 대중적 소통성을 가진 플랫폼 구축을 재촉한다.
온라인교회는 교회당, 건물, 장소에 기반을 두지 않는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신앙고백공동체이다. 뉴 노멀 시대에 부합하는 진지한 콘텐츠를 동시방송 또는 영상으로 송출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수신이 가능한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를 한다.
온라인교회는 유비쿼터스 방식의 예배와 성례가 필요한 사람들에 다가간다. 개인 공간에서 홀로 있거나 소수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영적으로 의기소침한 상태의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고 먼 거리에 있는 신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기회를 제공한다. 예배는 회집자의 규모와 관계없이 진행된다. 본부 역할을 하는 교회당에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비대면, 간접대면 방식으로 '함께' 드리는 시청자들 곧 팔로워가 교회 구성원이다.
온라인교회는 방역 규칙에 따라 소수의 신도들이 가정, 직장 등 별도의 장소에서 비대면 또는 간접대면 방식의 예배를 드린다.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채플의 예배를 동시중계하거나 녹화영상으로 제작 방출한다. 신도들은 온라인교회의 예배 실황을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 영상으로 보면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온라인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본질과 방법을 구분한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며, 다만 접근 방법이 새로울 뿐이다. 이 교회의 간접대면 또는 비대면 형태의 예배는 사적 예배(private service)가 아니라 온라인 공예배(online gathering for public worship)이다. 신도들은 온라인교회의 공예배에 진지하게 참여(attending)한다.
3. 온라인 사도 시대
온라인교회를 주도하는 온라인 사도들은 비대면 또는 간접대면 방식으로 사람들을 찾아간다. 예수께서 하늘 왕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찾아온 성육신과 동일하게 사람들에게 찾아간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코비드19 때문에 선교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마스크 쓴 사람들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었을까?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 중심으로 복음전도를 한 선교지향적 사도였다. 고린도, 에베소, 빌립보, 갈라디아, 데살로니가, 아테네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유비쿼터스 세상에 살면서 코비드19 상황을 직면한다면 교회를 인터카네이션(intercarnation) 공동체, 플랫폼 교회로 전환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계시의 메시지를 네트워크를 수단으로 전했을 것이다. 온라인교회를 세워 그 통신망으로 복음과 복음의 감격, 기쁨, 장엄함을 전했으리라.
온라인교회는 예배, 성찬, 설교를 오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목소리의 크기나 상투적인 용어에 호소하지 않는다. 더운 여름에 깊은 샘에서 길러 올린 한 그릇의 냉수처럼, 예수의 산상수훈 설교처럼 명료하고 신선한 성경적 메시지로 신도들에게 다가간다. 엄중하고 진지한 복음을 전한다. 알찬 콘텐츠가 신도들(팔로워)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낸다.
온라인교회의 설교자와 청중은 상호작용한다. 온라인교회의 가치는 시청자의 반응으로 드러난다. 온라인 목회의 반응은 동영상 시청자 수, 채널 구독자 수, 헌금자 수에서 드러난다. 온라인교회는 헌금 방식은 사회봉사 목적의 헌금, 선교 목적의 헌금, 일반 헌금 그리고 스토리펀딩이 가능하다.
대역병은 기독교가 비상(飛上)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한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복음전도와 영혼구원, 세계복음화의 절호의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차근차근 제거한다. 올림픽 경기, 월드컵 경기, 다중 모임과 회합과 놀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기죽인다. 술집, 유흥업소, 오락실을 기피하게 한다. 봉쇄와 불안감과 고립감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인간의 교만을 꺾는다. 생명의 고귀함과 죽음의 불가피성 그리고 사후 세계에 궁금함을 가지게 한다. 영생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함께 기도할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4. 온라인교회론
온라인교회는 기독인으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안주하게 하고, 나태하게 하게 할 수 있다. 전통적 방식의 전도와 선교를 위축시키고, 성례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코이노니아를 약화시킬 수 있다. 온라인 사도들은 이러한 단점들을 숙지하고 개선에 최선을 다한다.
한국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임시적 대안으로 수용하고 있다. 온라인 세례와 온라인 성찬은 현재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교회법으로도 보장된다.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예장 고신 교회와 미국 기독개혁 교회의 헌법은 세례와 성찬의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고신 헌법, 예배지침 5:3; CRC 헌법 55조). 특수한 상황에서 비대면 또는 간접대면으로 진행되는 세례와 성찬은 허용적이다. 안수를 받은 목사가 집행하면 된다.
새 시대는 새 상황에 부합하는 교회론 정립과 교회법 규정을 재촉한다. 온라인 신학, 온라인 교회론 정립이 필요하다. 인간다운 만남과 소통이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대끼며 접촉하는 방식에서 비대면 또는 거리를 둔 만남과 안전한 회집 형태로 전환하는 교회 개념의 도입이 요청된다.
코비드19가 확산되고 장기화될 수록 사람들의 우울증이 증가하고, 이를 피하려고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연대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 낯선 타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커지고, 안심할만한 동료집단 구성원들끼리의 친밀한 교제를 재촉한다. 사회적 우울감과 고립감은 가까운 신도들끼리의 연대를 강화시킨다. 온라인교회는 전통적인 개념의 교회공동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의미의 만남과 교제의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대역병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 코비드19의 창궐 상태도 조만간 끝나리라. 임시방편인 온라인 예배가 종식되고 좁은 공간에 함께 모여 드리는 밀착 예배가 회복되리라. 그러나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교회와 교회 관련 모임들에서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역병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장기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온라인교회가 뉴 노멀 시대의 노멀 교회로 정착될 수 있다.
코비드19 백신이 만들어지고 대전염병이 물러가도 유비쿼터스 채널, 네트워크 교회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온라인교회는 밀집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 참석과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사람들, 유형적 조직교회를 혐오하는 젊은이들, ‘가나안 교인들', 구도자들을 구원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삶으로 인도한다. 마음의 아픔 때문에 사회적 마스크를 쓴 사람들, 만남을 기피하거나 소외된 자들, 양 우리 바깥의 사람들을 영생의 길로,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한다. 온라인교회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백신 공급채널이며, 피난처이다.
옛날로 돌아가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과학자들의 예고가 대립한다. 과학자들의 예측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은 기존의 질서, 지혜, 가르침의 권위에 집착한 결과일 수 있다. 두려움은 신중함, 관습, 비역동성을 덕목으로 여기게 하면서 "구관이 명관이다"는 식의 태도로 "옛날 같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게 한다.
5. 원증회고(怨憎會苦) 시대의 신학자
하나님은 코비드19 시대, 인공지능(AI) 시대을 맞이 하는 우리에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을 요구한다(롬 12:2). 변화하는 시대의 영적 의미를 간파하고 위기를 세계복음화의 기회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
포스트 코비드19 시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국가, 사회, 산업, 개인, 기업 등 모든 것을 빅테이터(Big Data)라는 하나의 서버(Server)에서 통합 관리하고 인간을 노예화 하는 중앙 통제, 전체주의 통치가 예견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발전을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인간을 기계와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하고, 고위층들과 가진자들이 시민을 더욱 무지하게 만들어 통제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예견하면서, 온라인교회는 새 환경에서 생존이나 살아남을 목적이 아니라, 새 시대의 사명을 확인하고 그 시대의 영적 투쟁 과정에서 드러날 하나님의 의도를 찾는다. 대변혁적인 '새 판짜기' 구도 안에서 펼처질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과 자기 백성에게 주는 언약의 복이 무엇인가를 헤아린다. 세계복음화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 그리고 성섬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 전념한다.
네크워크 사역은 복음제공자와 복음수요자를 연결시킨다. 온라인 사역의 가치는 참여자의 수의 자승(自乘, 제곱)에 비례한다. 기독교가 나아갈 새 길을 열어 제시하고, 다가오는 거친 광야를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일은 우선적으로 신학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신학자의 임무가 막중하다.
신학자는 자기 시대의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자이다. 변화를 환영하지 않는 신학자는 세상이 변화되고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중세후기의 타볼파처럼, 성경과 교회사에서 온라인 형태의 교회 모범을 찾을 수 없으며, 신앙고백서에서도 그러한 개념의 교회에 대한 힌트조차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경 저자들, 사도들, 초대교회 교부들, 종교개혁신학자들, 교회헌법 제정자들을 들먹이면서 온라인교회의 등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중세기 도미니크수도회 수도사 니콜라스 트리벳(d. 1328)은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을 인용하여 변화를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당대 신학자들의 발상과 교회지도자들의 태도의 맹점을 꼬집었다.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우면서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고통, 싫은 환경에서도 함께 해야 하는 고통―불교용어) 시대, 뉴 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유유미션-브레드유니버시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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