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크리스챤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가 19일 오후 서울 평창동 ‘대화의 집’에서 ‘분열된 사회와 교회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첫 번째 순서로 발제한 김경재 교수(한신대학교 명예)는 ‘허구적 이념 틀에 갇힌 진보와 보수, 틀을 깨고 넘어설 수 있을까?”란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인간은 해석학적 동물”이라며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말할 때 인간 존재는 개인이면서 공동체적 집단적 존재이며, 역사를 창조하면서 역사적 경험에 의해 강하게 영향 받는 존재”라고 했다.
이어 “인간을 해석학적 존재라고 하는 이유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사도 바울이 개종 전에 가졌던 유대교적 메시야관에서 ‘눈의 비늘’처럼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행위에서 쉽게 편견에 사로잡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또 “편견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은 ‘선악이원론’과 ‘흑백이원론’이며 조금 낮은 단계의 편견의 보편성은 ‘진보와 보수 진영논리’로 나타난다”며 “인간은 자기가 습득하고 경험하고 학습당한 패러다임을 절대화하고, 자기와 다른 입장을 단죄, 비판, 백안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 스스로 이 동굴과 비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며 “그러나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종교적 회심경험, 둘째는 끊임없는 비판적 자기성찰, 셋째는 자연과 역사가 주는 패러다임 전환의 충격이다. 현재 한국 사회와 기독교는 전염병의 대재앙과 총선결과로 카이로스의 위기에 처해 있으나, 이것은 곧 기회”라고 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 총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허물고, 세워야 하는가”라며 “먼저는 한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양분시키고, 갈등관계로 몰아갔던 정치적 이념, 편 가름이 소모적 허구논쟁이었음을 드러냈다”고 했다.
이어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성장주도경제와 분배중시경제 등 모든 형태의 이원론적 도식에 사로잡힌 갈등과 투쟁이 나라의 주권자인 시민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논쟁이었음을 드러냈다”며 “생명을 위해 그동안 이념 대립적 양편의 정책이 얼마든지 패러다임 융합을 통해 서로 보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념과 국가를 위해 사람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해 그것들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깨어있는 지구촌 시민들로 하여금 근대 이후 지난 300년간 서구사회와 지구촌을 지배해 왔던 자본주의 경제원리와 신자유주의 이념이 더 이상 지탱 가능하지 않으며, 지구문명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음에 커다란 경각심을 갖게 하고 그 탈출적 대안을 모색하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복음이 지향하는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이 자본주의와 본질적 친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기독교의 이념적 선입견을 깨트리고 편견에서 벗어나는 과제가 시급하다”며 “복음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라고 했다.
이어 “세 번째는 코로나19 대재앙과 총선 결과는 보수적 기독교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숭미주의, 미국메시야니즘, 미국 예외주의 신화에 금이 가게 했다”며 “미국은 네 가지 얼굴을 가진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교도 정신에 기초한 미국, 기독교적 휴머니즘이 강했던 정의와 자유 수호국가로서의 미국, 지극히 세속적 국가로서 국가이기주의와 세계 패권주의에 병든 미국, 개인의 절대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심한 인종차별과 빈부격차와 비인간화가 엄존한 미국 등 네 가지 얼굴 모습을 구별하지 못했다”며 “미국에 대한 환상은 한국 기독교의 건전한 성숙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됐다”고 했다.
끝으로 “네 번째는 코로나19와 팬데믹은 지구촌 의식을 강화시켰고, 지구행성에 살아가는 인류종은 물론이고 다른 생명체 종들과 자연 그 자체와 서로 유기체적 관계로서 존재하여 만물공동체라는 자각과 동시에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경외’를 갖게 했다”고 했다.
아울러 “그동안 이웃종교들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 우월주의, 백인중심의 기독교 선민의식, 오로지 개종을 강조하는 타종교 문화 지역 해외선교는 그 타당성과 매력을 잃어버리게 됐다”며 “세계 종교들은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한 참 종교인가를 다투는 한가한 시간은 없다. 오로지 뜻과 지혜를 합쳐 금세기 말 안에 현실화될 산소부족, 기온폭등, 사막화, 식량부족 등 현실적 위기에 대처할 실천적 협력이 중요하며, 종교 간의 대화협력은 권고 사항이 아니라 필요불가결한 현실이 됐다”고 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손봉호 교수(기윤실 자문위원장, 서울대 명예)가 ‘분열된 사회와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손 교수는 “2018년 여론조사기관 Ipsos가 BBC의 의뢰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61%)으로 조사대상 27개국 평균 44%, 유럽 평균 20%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많은 한국인에게 정치적 견해는 단순히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한국은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운명이 어느 쪽에 줄을 서는가에 따라 좌우되며, 이념 갈등이 극열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주목할 현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한국 사회에서 지난 달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85%가 되면서 Economist가 놀랍다는 표현을 했다”며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한다면 우리 사회에도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Ipsos가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종교간 갈등은 14%로 27개국 평균 27%의 절반 밖에 되지 않고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세계적 고등종교들이 공존하는데도 한국만큼 종교간 평화와 협력이 잘 이뤄지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 기독교는 한국의 최대 종교로 성장했고 구성원의 숫자, 교육수준, 재정 능력에 있어서 비정부 집단들 가운데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며 “거기다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 기본적이 사명이자 존재의의로서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에 매우 필요한 사회통합에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교회 자체가 매우 분열되어 있고 도덕적 권위를 많이 상실하여 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에 교계 내 진보와 보수 간의 반목은 다소 줄어든 것 같으나 사회의 신뢰는 파산상태”라고 했다.
손 교수는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통합을 시도하기 전에 그렇게 할 자격 혹은 능력부터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교계 내 통합도 이뤄져야 하고 사회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모두 성경이 분명하게 제시한 교회의 본질에 충실할 때 가능하다. 즉 교회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쉬운 것은 ‘교계의 연합’이다. 우파와 좌파 등 정치적 이념에서 초연해져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예수님은 제자들과 주위 동족이 원하고 바랐던 정치적 메시야의 유혹을 끝까지 물리쳤다. 이처럼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국교회의 통합은 가능하며 정치는 분열을 함축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사회의 신임을 얻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도덕적 실천’에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