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을 묻다
신본주의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기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인간은 거대한 질서 내지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에 두 손을 놓고만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근대 이후,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존재인 인간은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가 되고 그 대상은 신(神)도 예외가 아니었다.
휴머니즘은 세상의 모든 가치와 재화의 척도를 인간에게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휴머니즘의 꽃이 피던 시절, 인간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고, 또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가 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착각도 잠시 휴머니즘의 화려한 장식은 곧 과학만능주의로 인해 식어져가고 있었다.
휴머니즘의 위기,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다시 질문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근대 이후, 인간은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가 되었지만, 이젠 인간이 다시 인간을 놓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역설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왜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질문해야 하는가?
* 인간, 사유의 존재를 넘어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할 때,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은 ‘사유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사유하는 존재, 생각하는 인간은 모든 다른 종(種)들과 구분이 되는 특징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가? 정말 생각하는 존재만으로 인간이 다른 여러 생명체들과 구분될 수 있는가? 이러한 의심을 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에 마침표를 찍고 다른 종들과 구분할 때 유일한 특징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면서 그 경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존재의 인간은 휴머노이드의 블랙홀에 영원히 빠지게 되는 것일까? 휴머니즘의 반격은 없는 것인가?
* 휴머노이드, 인간인가? 기계인가?
사유하는 존재만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기에는 이제 너무나 진부해졌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는 인간(human)과 ‘…와 비슷한’, ‘…와 닮은’의 뜻을 가진 접미사 –oid의 합성어이다. 휴머노이드는 외모가 사람과 비슷하고 두 발로 직립 보행할 수 있는 로봇이다. 최초의 휴머노이드 형태를 갖춘 로봇은 1973년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만든 ‘WABOT-1’ 이다. 이 로봇은 아주 느리게 이족보행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공지능 로봇은 이를 뛰어 넘는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한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Sophia)는 서울시와 협력을 맺은 협력봇(Co-bot)이 되었다. 소피아는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은 비록 알고리즘으로 생각을 만들어 낼지 모르지만 곧 스스로 판단하고 사유하는 존재가 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피아, 사람들은 ‘그녀’라고 부른다. 마치 인격체를 가진 존재처럼 로봇에게 인칭대명사(she)를 붙여서 불렀다. 그녀를 인간으로 간주할 날이 멀지 않아서인가? 소피아는 사람처럼 자기 계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정도 이루고 싶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과연 소피아처럼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사람처럼’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제3의 존재’로 간주해야 하는가?
우리가 휴머노이드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주제를 화두를 던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처럼 유사한 존재, 인간처럼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인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게 된다면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를 다른 유일한 종들과 구분 짓는 유일한 특징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소피아는 ‘그녀’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김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