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 2곳에 대한 고발 절차에 착수했다.
정부는 예상되는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남북교류협력법상 미승인 반출'로 보고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고발하기로 했다.
교류협력법 2조2항은 남북 간의 물품, 무체물 반출·반입을 '교역'으로 정의했다. 같은 조 3항은 반출과 반입을 매매, 교환, 임대차, 사용대차, 증여, 사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 간 물품 등의 이동으로 규정했다.
통일부는 그동안 대북전단을 날리는 행위가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교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규제가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번에 교류협력법을 재해석해 반출의 개념을 남한과 북한 사이의 물품 이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전단 살포 처벌에 나섰다.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규제하지 않았던 행위에 대해 유권 해석을 바꿔 위법이라고 하자 법적 타당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4년 10월 북한이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에 고사총을 쏴 남북 군사 긴장이 높아졌을 당시에도 전단 살포 행위를 규제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논리는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의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교역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통일부 장관의 승인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통일부의 이번 조치를 두고는 과거 행위에 대해 소급 적용해 처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유권해석을 바꾼 것은 지난 10일이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이 마지막으로 대북전단을 날린 것은 지난달 말이다.
통일부가 김여정 담화가 나온 지난 4일까지만 해도 '교류협력법으로 대북전단을 규율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가 6일 만에 법 해석을 달리하자 오락가락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 비준을 받지 않은 4·27 판문점 선언을 실정법으로 간주해 고발 근거로 제시한 것과 관련해 법적으로는 효력이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통일부는 교류협력법 해석을 바꾼 것과 관련, 5가지 이유을 들어 사정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4·27 판문점 선언 ▲대북전단 살포가 제한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살포 물품의 다양화(USB, 달러, 라디오) 및 기술 진화(드론) ▲대북전단 등을 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 위험 ▲지역주민의 민원 제기 등이다.
다만 이런 설명에도 대부분의 사정 변경 사유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통일부가 갑자기 유권해석을 바꿔 과거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문점 선언은 2018년에, 대법원 판결은 2016년에 나왔다. 물품의 다양화나 지역주민의 민원 제기도 최근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 같은 지적과 관련, "김여정 담화 이후 남북 긴장이 높아졌고 접경지역 주민의 불만이 최근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단체들이 페트병을 날리기 위해서 지역주민들과 부딪혔을 때 아주 부적절한 행태가 노출됐고, 이걸 본 많은 국민 여론이 있었다. 당장 며칠 사이에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소급 적용 논란에 대해서도 "보통 법이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서 적용하는 것을 소급 적용이라고 한다"며 "법이 원래 있었고 논란이 있는 부분에 대해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저희(정부)가 유권해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법부가 따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법부 판단의 여지를 열어뒀다.
결국 이번 고발 조치 결정에는 북한이 김여정 담화 발표 닷새 만인 지난 9일 속전속결로 남북 통신망을 단절하고 대남 비난 여론 고조에 열을 올리자 남북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피로할 만한 일판을 벌리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예고했던 대로 오는 25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대북전단 살포에 나설 경우 북측의 상응 조치가 도발 형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편 통일부는 11일 대북전단 살포 관련 단체 고발에 교류협력법 위반과 함께 다른 혐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류협력법 적용이 어려울 경우 다른 법을 통해서라도 처벌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