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그러나 공교육은 보편적인 지식을 얻는 데에는 효율적일지 모르나 그것이 독인지 약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받아들일 여지가 많다. 모든 교육은 철학을 담고 있고, 모든 철학은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갖는다. 교과서와 강단의 철학을 꿰뚫어보고 분별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페미니즘, 성평등,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학생들이 배우게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온 문화혁명이 서서히 사회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는 교육, 문화, 언론 등을 장악하고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라는 이름으로 사상계를 점령한 결과물이다. PC는 성경적 세계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본주의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문화혁명의 흐름이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1789년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이 물꼬를 열었다. 학교와 교과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부패한 기존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뒤엎으려던 기존 질서는 무엇이며, 그렇게 이룩하려 했던 새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를 일컬어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이라 한다. 이 시절,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프랑스인들은 과학, 예술,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성도덕의 문란과 더불어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계몽주의, 즉 이성을 신격화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시민들은 더 이상 강압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이성을 새로운 종교로 하는 시대를 탄생시키려 했다( 프랑스혁명과 종교, 백인호 저, 한국문화사).
글로벌 성혁명(The Global Sexual REVOLUTION)>의 저자 가브리엘 쿠비 박사는 프랑스 혁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프랑스 혁명은 ‘자율적 이성’을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케 한 여성해방 운동가이자 여신으로 격상시켰다. 사람들은 자유, 평등, 박애 등과 같은 말들에 현혹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가 오직 평등을 대가로 지불했을 때에만 확대되고, 평등은 오직 자유를 대가로 치렀을 때에만 얻어지며, 정의가 없는 곳에는 박애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악질들을 짓밟아 버리자!’(악질적인 것, 바로 교회를 박살내 버리자!)는 볼테르의 외침은 수천 명의 목회자들과 종교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는 항상 지옥을 만들어 낸다”는 말을 했다. 프랑스의 대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 이성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수많은 시도는 결국 인간을 타락시키고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고 만다. 교회와 가정이 사회의 근간이며 질서 유지의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는 학부 1학년 시절, 철학 교양 강좌를 매우 흥미 있게 들은 적이 있다. 수업을 들으며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그리고 당시의 사상가였던 볼테르, 장 자크 루소, 콩도르세 등에 크게 매료되었다. 이성을 절대시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혁명과 사상가들이었지만 필자는 이를 신앙과 결부시키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에 아무 문제없이 이들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강의를 맡은 교수님은 마르키 드 사드를 전공한 분이셨는데 사드가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에서 성도착에 관한 저술활동을 했다는 것은 이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세상 지식과 신앙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이분법(二分法)이 이 세대의 기독교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교회 안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성경이 아닌, 세상의 가르침을 교회가 주고 있다. 그저 교인들이 좋아한다면 그것이 비록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시류에 영합하여 표류하고 있는 안타까운 교회의 현실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성경이 해답을 주고 있다. 첫째, 자녀들에게 가정과 교회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알려주어야 한다.“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렇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쁘고 힘들지만 아이들을 공교육에 무책임하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교회와 가정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를 가르치고 세상의 지식이 이끄는 방향과,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경건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시대를 깨우기 위해 부름 받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신학, 철학, 문화, 국제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세계관 강의 등 영적 전쟁을 위한 좋은 무기들을 공급해주고 있다. 부지런히 찾아 공부하고 배워야한다. 지금부터라도 다음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세상의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도록 교회와 가정이 깨어날 때다.
김휘문(한국성과학연구협회 학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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