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요한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우리는 추상적 관념이나 모호한 감정, 혹은 막연한 영적 체험을 믿도록 초대받지 않는다. 우리는 육체가 된 말씀을 믿도록 초대받는다. 진짜배기 믿음은 언제나 말씀을 그저 육체에 이르는 방편으로 이용하지 않고 육체 안에 감추어진 말씀을 찾는다. 요한의 이야기가 보여 주듯이, 우리가 반복해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곧 “하나님께서 세상을…사랑하[신]”(3:16) 이유는 우리의 삶이 현 세계의 굴레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 가운데 세상을 보듬으셨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목적이 있다. 곧 지금처럼 어둡고 부패한 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 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 1>
일반적 이해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세상이 오래도록 기다려 온 성령의 전달자시라는 것이다. 성령은 그분의 삶에 거의 지배적으로 임재하시는 능력이다. 마가는 예수님의 세례 이후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 1:12)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악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구원하실 때, 그분의 일이 효력을 갖게 만든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한 중요한 일화에서 어떤 반대자가 예수님이 사탄의 능력 아래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예수님은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탄은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여기서 우리는 핵심 용어의 조합을 보게 된다. 바로 메시아, 성령, 하나님 나라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미래를 그들에게 선사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등장했다. 메시아가 여기 계시고, 성령은 지금 갈릴리에서 역사하신다. 예수님에 따르면, 이 진리를 오해하고 이 능력을 사탄에게 돌리는 것은 가장 심각한 신성모독이다(마 12:31-32).
- 게리 버지, <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
예수님도 꿈을 꾸셨다. 하나님도 꿈을 꾸신다. 우리와 함께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꿈꾸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희망을 주기를 꿈꾸신다. 지금 누군가를 격려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꿈을 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꿈을 위해 죽으셨다. 하나님은 순종으로 그 꿈을 이루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이 원리가 오늘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위해, 하나님이 꿈을 꾸실 수 있도록 순종하고 인내하고 섬기고 나누면, 하나님은 우리가 내어 드린 것들을 풍성한 복으로 돌려주신다.
- 하형록, <메이크 뮤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