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비례대표 부정 진상조사를 발표한 후, 더욱 촉발된 통합진보당 사태를 두고,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를 밝히려고 노력한 책이 나왔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들녘, 2012년 8월)는 자칫 구당권파의 입장에서 쓴 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지만, 그렇게 넘길 문제는 절대 아닌 듯하다. 바로 정치인이 아니닌 김인성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 소설가 김갑수 등이 공저(共著)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매카시즘과 한국언론> 입법토론회에서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공동대표 자격으로 격려사를 했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진보언론의 보도 형태를 꼬집은 토론회였다. 토론회가 끝나고 서울 종로구 경복궁 1가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열린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출판기념회에 함께 토론회를 지켜봤던 후배들과 우연히 그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문 앞에서 참가비 2만원(뒤풀이 비용과 책값)을 내고서야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를 받을 수 있었다.
이날 이정희 민주통합당 전 공동대표, 이혜선 통합진보당 최고위원과 김인성 교수, 이시우 사진작가, 김갑수 정치평론가 등 공동 저자를 비롯한 1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거문고 공연, 공동저자 인사말, 독자발언 등의 순으로 진행했다.
집안 일로 행사 도중 살며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억수같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탄 후, 바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날 지하철에서 1/3을 읽고, 다음날이 광복적인 관계로 마지막까지 집에서 다 읽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이번 (통합진보당)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다”라는 글귀였다. 진보통합당 사건 2차 진상조사위원회 의뢰를 받아 비례대표투표관리시스템을 맡은 김인성(한양대 겸임교수)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의 글이었다.
포털 엠파스를 설계한 사람으로서 명성이 높아 지난 4월 초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초청 강연을 듣고, 차를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그래서 낯익었다. 또 김 겸임교수는 글을 통해 “지역의 건설업자가 자기 이권을 챙겨줄 국회의원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나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도 밝히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대로 해석하면 피해자(구당권파)와 가해자(신당권파)가 진짜 뒤바뀐 것일까.
또 다른 저자인 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 스스로 무서워하던 나치의 논리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과 양심 있는 지식인들까지 제대로 맥을 못 짚고, 일방 편향적 글을 썼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교수가 구당권파에 가까워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 진보 언론보도와 지식인들이 한쪽 편향적으로 논리(산당권파 논리)를 몰고 간 것에 대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2일 조준호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선거 진상조상위원장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뒤, 거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구당권파를 질책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에 대한 기본적 검증과 확인 없이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은 진보언론이나 보수언론이 똑같았다. 사실에 대한 검증과 확인에 노력했더라면 잘못과 판단에 오해들은 상당 부분 해소됐고, 통합진보당의 내부갈등이 분당까지 치닫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국민의 눈높이’도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라고, 진실 규명의 중요성을 밝힌 부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왜 진보언론은 사건 초기 중요한 의혹과 팩트를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조준호 위원장의 보고에만 의존해 침소봉대했을까. 발표 이후에도 진상을 밝혀줄 주요한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었음에도 집중 취재를 하지 않았을까. 이는 바로 한국 언론(진보언론이 되새겨야할 문제)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나 통합민주당처럼 몸집이 큰 정당도 아닌데, 한 소수 진보정당의 내부 문제가 전사회적으로 비화됐다. 소수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어야 할 진보언론이 소수 목소리나 반대 진영의 목소리를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다, 이 책은 구당권파의 입장에서 쓴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언론의 현실과 양심 있는 지식인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두고 ‘조준호 오판의 심상정의 노림수, 유시민의 과욕, 이정희의 무대응’ 등으로 분석한 김철민 <수원시민신문> 기자의 글과 부록에 실린 이정희 전 공동대표의 글 ‘사실이 아니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가 눈길을 끌었다. 솔직히 이 책은 억울한 구당권파의 입장에서 기술한 책임은 분명하지만, 공동 저자들이 쓴 전문을 다 읽어보면, 이 시대의 언론인과 지식인들에게 초점이 맞춰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는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김준식 소설가, 김영종 작가, 김갑수 정치평론가, 이시우 사진작가, 김대규 서울디지털대 교수, 김귀옥 한성대 교수, 최진섭, 전 <월간 말> 기자, 인병문 <사람일보> 편집국장, 나미꾸 온라인 시민기자, 김철민 <수원시민신문> 기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글ㅣ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