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일년 중 가장 화려하여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합니다. 따뜻한 봄날 꽃들의 향연이 있고 만물의 소생과 회복이 있는 때입니다.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목적지가 분명해야 길을 잃지 않고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는 앞서 자녀를 잘 양육한 이들을 보고 교훈을 삼고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자녀를 얻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하나님의 뜻대로 경영해야 잘 되고 거룩한 가정과 행복한 미래가 보장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면 어린이를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막10:13)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때로는 어른이 중심이 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힘이 없고, 소란하고, 손이 많이 간다고 아이들을 소외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보배이며 미래의 힘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심으로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
아이들의 순수함과 솔직함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아이와 같이 순수한 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10:15~16)
오늘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정신대로 자녀를 잘 키워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38년 전 선교원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아이들을 보배로 여기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아이의 소중함을 알고 잘 출산하고 양육해서 민족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기를 바랍니다. 어린이의 행복은 부모를 통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부모의 노년의 행복은 지금의 아이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1. 예수님을 양육한 마리아와 요셉을 기억합시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눅2:41)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에게 절기를 잘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습니다. 열두 살 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있는 선생들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선생들 눈에는 숨겨졌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키가 자라는 것이 육체적 성장이라면 지혜가 자라는 것은 인성의 성장이고 신앙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성장은 균형 잡힌 성장입니다. 그분은 참 사람이며 참 성자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식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뿌리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받고 순종하는 자녀로 자랐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사랑이 많고 부모에게 효도했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본성이 어려서부터 나타났습니다. 구약에도 아주 좋은 부모가 있습니다. 한나는 서원하여 기도함으로 아들 사무엘을 얻었고 성전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 당시의 제사장은 엘리 제사장이었고 그의 아들들은 참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서원을 지켜 사무엘을 성전에서 자라게 했더니 하나님이 사무엘을 맡아주시고 역사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무엘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부모가 자녀를 성전 중심으로 양육하면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 큰 사람으로 사용합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전 중심으로 키우기를 바랍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불의의 세력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타협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도록 자녀를 키워갑시다.
2. 자녀는 부모님의 삶과 신앙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의 신앙을 닮았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와 어머니의 믿음을 닮았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자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3~5)
바울사도는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근원이 있습니다. 좋은 학생, 자녀에게는 좋은 교사와 부모가 있고 좋은 성도를 보면 좋은 교회와 목사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불행한 길로 갈 때는 그 사회의 문화와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과 문화를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 환경 속에 자녀들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삶의 현장이 무질서해지므로 바른 교육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엘리사가 벧엘이라는 동네로 갈 때 지역의 아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하고 배척했습니다. 벧엘 사람들에게는 선지자를 경히 여기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놀렸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저주를 불러왔습니다.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왕하2:23b)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면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2:24)
악인을 멸할 때 하나님은 다양한 심판의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실 때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키십니다. 의인을 보호할 때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키십니다. 부모의 믿음은 자녀에게는 축복입니다. 최고의 유산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을 수 있는 자로 양육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3.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의무가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입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사는 방법을 보여주고 닮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효도를 가르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자녀 앞에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 중심으로 살게 하고 항상 기도에 동참시켜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서 교회 온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사회에서도 모범이 되고 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선교원, 방과 후 비전의 교실, 청소년복지학교를 통해 크리스천의 삶과 지혜를 배우게 하고,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어야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신앙의 바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제 주일학교 교사는 봉사의 개념이 아닌, 신앙을 보여주는 바른 교사가 필요합니다. 주일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예배를 호흡처럼 귀하게 여기며, 물질과 연보생활을 철저히 지키는 교사가 인성과 영성을 겸비한 아이들을 키워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일천일 동안 전쟁없는 나라를 위해 기도했으니 이제는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100년 후에 아이들이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사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사는 날까지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기도합시다. 아이를 사랑하고 자신의 미래와 영원을 보면서 예배하며 천국 소망으로 승리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