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지역의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가 아시리아에 점령당했습니다. 앗시리아는 자국민들을 대거 이주시켜서 그들과 강제 혼인을 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없애 버렸습니다. 남유다는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자신들만 계승하였다면서 사마리아 지역의 혼혈족들을 차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오랑캐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 그가 낳은 자식을 ‘호로(胡虜)자식’이라고 차별한 과거가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사마리아’라는 단어는 심한 욕설이 되었고 사마리아 지방에 발을 딛는 것 조자 금기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어버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방인 갈릴리로 피신하면서 중간에 있던 ‘사마리아’ 지방과 사마리아인을 피하지 않고 그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때는 정오였으며 여행으로 피곤하신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요4:7) 그 순간은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만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유대인들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오신다고 하신 구약의 예언(사65:1)을 따라 첫 번째 이방인을 구원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처음에는 남자로, 그리고 선생님, 예언자, 메시아,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요4:29)
오늘날 교회는 ‘거룩한 교회’와 ‘타락한 세상’으로 구별하고 은연중에 교회 밖 세상을 마치 사마리아처럼 차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자’에게 있습니다.(눅5:31) 우리는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님은 지금 ‘세상’에 계십니다.
햇볕같은이야기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