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휴가 끝나는 6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종료하고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이행을 발표하면서 가장 높은 '심각' 단계인 감염병 위기경보 조정을 질병관리본부 등에 주문했다. 하루에 생활 방역 전환부터 등교 개학, 위기경보 하향까지 한꺼번에 언급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위기 상황보다 한박자 빠르게 격상해 온 위기경보 수준을 낮출 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방역당국이 현재 상황을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안을 국무총리가 지침을 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정세균 본부장(국무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사회적 거리 두기 종료와 6일부터 생활 속 거리 두기 이행 계획을 결정했다.
이로써 3월22일부터 4월5일, 4월6일부터 19일, 20일부터 5월5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추진해온 사회적 거리 두기는 45일 만에 종료된다.
이날 중대본 회의에선 생활 속 거리 두기로의 전환 외에도 등교 수업 순차 추진과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조정도 관심을 모았다.
중대본 본부장인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회의에 앞서 "아이들의 등교수업도 순차적으로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등교수업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내일 교육부 장관이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울러 현재와 같이 안정적인 상황이 유지된다면 복지부와 질본에서는 위기단계를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5월초 학교 등교 개학과 어린이집 및 유치원 개원 계획 발표는 예고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4일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체적인 등교 수업 방안을 발표한다.
여기에 정부는 등교 개학 시기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조정을 함께 염두에 두고 있다. 총리 주문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4월30일부터 5월5일까지 연휴 기간 이후 환자 발생 추이 등을 분석해 2월23일부터 70일 넘게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유지 중인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 조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박능후 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방역당국은 금번 연휴기간 이후의 환자발생 추이 등 후속영향을 엄밀하게 살펴보며 현재의 심각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위기단계를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기경보 단계 조정 검토를 언급한 건 심각 단계 격상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일부 행정명령을 완화하기로 한 직후인 지난달 22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한다고 해서 위기 단계를 낮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생활 속 거리 두기 전환부터 등교 개학, 감염병 위기경보 하향까지 현재 유지하고 있는 정부 차원의 핵심적인 방역 체계 전반에 대한 조정 및 검토 요청이 국무총리로부터 하루 만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조언했다. 현재 상황이 실제 심각 수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한국이 위기경보 조기 격상으로 어느 정도 방역 성과를 거둔 만큼 이를 낮추려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심각 단계는) 지역사회 감염 유행이 분명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상황을 의하는데 그 기준 대로라면 현재는 대규모 유행 가능성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며 "생활 방역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선 그런(위기경보 하향 조정) 검토를 할 때가 되긴 했다"고 말했다.
다만 엄 교수는 "코로나19 감염 양상 등을 보면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바이러스라 상당히 조심스럽고 코로나19 특성상 확잔지가 나오는, 눈으로 보이는 양상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제한점이 있어 여러 가지 불안 요인도 있다"며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보다 빨리 단계를 격상시켜 방역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평가할 때 내릴 때도 빨리 가도 좋을지, 한박자 늦는 게 옳을지는 여러 사람들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조정 여부를 국무총리가 지침처럼 제안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확진자 숫자뿐만 아니라 향후 감염 확산 가능성까지 독립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를 총리가 '하향 조정'으로 방향까지 제시하는 건 자칫 거리 두기를 완화해도 좋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은 자체위기평가회의를 거쳐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발령한다.
정은경 본부장도 지난달 22일 위기경보와 관련해서 "위기경보 단계는 코로나19 발생현황과 위험도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며 "객관적인 수치 등으로 정해서 위기단계를 조정하지 않고, 평가와 위험 예측까지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지역사회 내에서 감염이 아예 없는 상황이 아니라서 기준에도 안 맞고 전 세계가 난리인 상황에서 해외 유입을 통해 언제든 감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우리만 위기 단계를 낮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상황이 어렵지만 경제를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거리 두기를) 열려고 하니까 시민들께서도 원칙을 철저히 지켜달라는 것과 위기 단계 완화를 생각해보겠다는 건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위기경보 단계 조정을) 질병관리본부가 판단하라고 독립성을 부여해놓고 총리가 가이드라인처럼 제시하는 건 독립된 권한을 주겠다고 해놓고선 그 원칙을 깬 것"이라며 "어제 위기분석위원회에서도 (감염병 위기경보 하향 언급은)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오늘 언급하신 게 뼈아프다"고 덧붙였다.
위기경보 단계 조정 검토를 발표한 정부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박능후 1차장은 "WHO(세계보건기구)가 4월30일 코로나19 긴급위원회에서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현 상태 위기상황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연휴기간이 끝나고 난 뒤, 일정기간이 끝나고 난 뒤 환자의 발생 상황이라든지,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신규 확진자의 발생 건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방대본과 그리고 전문가들과 긴밀히 상의해서 위기단계 조정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