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멀리서 더 가까워지는 공동체’(엡 2:13~18)라는 제목으로 19일 주일예배에서 설교했다. 이 목사는 “요즘은 서로 거리를 두는 일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라는 단어가 세계적인 표준어가 됐다”며 “우리가 안전을 위해서는 이를 꼭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는 이 단어를 뒤집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단어를 뒤집어서 ‘멀리서 더 가까워 지는 공동체’(Distant Socializing Community)가 되어야 한다.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두기가 도리어 반가운 단어가 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멀리 있을수록 마음은 더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교회는 영적 가족으로서 멀리서 더 가까워지는 공동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영상에 나온 지체가 교회 가고 싶다며 눈물 흘린 이유는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활동이 그리워 눈물 흘린 것이 아닐 것이다. 여러 성도들이 눈물 흘리며 우리 자녀들도 예배당을 방문하는 것을 그토록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 지난주에 드라이브인 예배에 참여했던 성도들도 차를 타고 나가면서 인사하는 가운데 여러분들이 눈물 흘리며 떠났다”며 “그 성도들의 눈물은 어떤 의미인가. 그건은 단지 인간적인 정(情)의 차원이 아니다. 그 정을 넘어서는 분명한 영적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교회란 ‘멀리서도 가까워지는 공동체’이다. ‘코로나 19 감염병이라는 재난’으로 인해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됐다”며 “예배당 건물이 교회였다면 교회는 이 재난으로 인해서 무너진 것이다. 교회의 어떤 활동이 교회였다면 교회는 망한 것이다. 예배당에 모여야만 예배가 가능했다면 예배는 이 땅에서 중단 된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분명히 깨닫는 교회의 본질이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교회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영역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더 강조하고 있다”며 “교회의 일차적인 활동은 우리의 예배나 어떤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일차적인 활동은 성령 안에서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다. 에베소서 2장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때 사용된 모든 동사의 주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셔서 화평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셔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셨다. 모두 주어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헌신, 섬김 이 모든 것이 다 2차적 활동이다. 교회의 1차적인 활동은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 이전에 우리에게 행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어떤 활동 이전에 어떤 존재인가에 달려 있다. 교회를 기능이 아닌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이번 코로나 재난은 이 기능적 교회론을 버리고 존재론적인 교회, 교회의 존재 그 자체를 다시 깨닫는 좋은 기회”라며 “교회가 멀리서도 가까워지는 공동체가 되는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이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엡 2장 13절 말씀을 보면, 인간이 자유의지로 죄를 택하였을 때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게 됐다. 그 멀리 떨어진 상태가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 비참하고 불행한 일인지를 역사 속에서 스스로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원과 회복의 길을 내어 주셨을 때 이제 구원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멀리 떨어져 있어 스스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했다.
또 “하나님과 멀리 있던 이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더 가까이하게’ 됐다. 죄가 없었던 상태보다도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존재로 인간이 변화 됐다. 우리는 물론 죄가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다”고 했다.
이 목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바이러스의 출현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던 인간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다. 이러한 역습은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한 만큼 인간은 고통스럽고 불행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돌이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는 것, 그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며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과 실패를 뛰어 넘어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아담과 하와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그 친밀한 교제의 삶을 회복시키셨다. 그래서 교회는 멀리서도 더 가까워 지는 공동체”라고 했다.
이어 “교회가 멀리서도 가까워지는 공도체가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져서 그리스도의 화평을 누리게 됐기 때문”이라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화평, 평화를 공동체 가운데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든지 ‘거리두기는 죄의 결과’이다. 하나님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 죄의 모습이었다. 죄와 사단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과 거리를 둔 것이 죄의 모습이다. 하나님과 거리를 둔 인간에게는 참된 화평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은 그들 끼리도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 단, 관계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피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 목사는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저는 교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 화평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역으로 교회 공동체와 거리를 둠으로써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며 “교회 안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아픔이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화평, 이 선물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었던 분들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관계속으로는 들어가기 원치 않는 것, 나홀로 신앙, 또 관계는 유지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 관여하지 않고 때로 심심하면 가끔 만나는, ‘그저 나는 어느 교회에 출석한다’ 정도로 만족하는 그런 신앙생활… 자신의 깊은 마음을 토해내고 누군가 넘어질 때 함께 붙들어 주고 내가 넘어질 때 붙들어 줄 수 있는 또 서로의 짐을 서로 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없다면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그러나) 멀리서도 더 가까워 지는 분들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된 분들이다. 교회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교회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 다니는 신앙 생할이 아니라 나의 삶이 교회가 된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 이 말은 안전만을 지켜야 하지 그밖의 모든 우리의 삶에는 결코 적용해서는 안되는 단어”라고 했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는 매우 무서운 단어이다. 소외감을 만들어내고 그 소외감은 죽음을 만들어 낸다. 소외와 외로움은 다르다. 외로움은 어떤 갈등이나 적대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외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진정한 소외는 하나님과 거리를 둠으로써 생긴 인간 안에 발생한 소외, 그리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도 거리를 둔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또 자기 자신도 소외시킨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 역사에서 그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위기는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리두기였다. 복음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서 많은 이방인들이 생겨났지만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요구하고 같이 하기를 원치 않고 거리두기를 계속해서 했기에 사도행전의 갈등이 일어났다. 교회마다 일어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거리두기였다”고 했다.
이 목사는 “인류 역사는 거리두기의 역사이다. 유대인은 세상을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헬라인은 세상을 헬라인과 야만인으로 구분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볼 때도 동과 서가 완전히 나눠진 이 모습이 거리두기”라며 “이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멀리서 더 가까워지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는 교회 본질에 대한 책이다. 교회라는 단어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는 ‘한 새사람’이다. 그것은 곧 거리두기로 인한 소외가 없는 공동체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연합된 새 사람,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보이는 많은 교회의 모습은 재난을 통해서 위축됐지만, 우리 많은 성도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또 멀리서도 서로 마음으로 함께 만나기를 소망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 안에 모든 장애물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다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 재난의 기간을 통과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우리가 멀리 있기에 더 가까워짐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그런 교회가 된다면 재난은 이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요동치는 세상의 정치와 타락한 문화도 결코 교회를 이길 수 가 없다. 우리가 잠시 안전을 위해 실천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결코 신앙적인 영역에서까지 적용해서는 안된다. 또 교회와 거리두기가 편해져서도 안된다”고 했다.
한편, 온누리교회는 오는 25~26일 현장 예배 재개를 검토하고 있으며, 드리게 될 경우 인원을 제한하고 안전수칙 역시 준수할 예정이다. 또한, 드라이브인 예배의는 주일에 모두 4번 진행하며 오는 성령강림주일까지 어려움을 겪는 시장 상인들, 자영업자들을 돕는 ‘공감 소비운동’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