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말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수준에 해당하는 국민들에 의해서 어떤 수준의 정부를 가지게 됐다고 볼 수 있을까? 진보와 보수에 따라 답은 아주 대조적일 것이다. 어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선거 전부터 누가 다수당을 차지할 것인가가 국민적 대관심사였는데, 개표결과 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야당을 찍은 사람들은 수준 낮은 좌파 국민 덕에 수준 낮은 정부와 국회를 가지게 됐다고 실망할 것이고, 여당을 찍은 사람들은 수준 높은 국민들이 수준 높은 정부와 국회를 만들었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2] 국회의원이나 정부나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의 수준에 따라 그들의 수준도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원리에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함을 기억하자. 우선은 나라의 일꾼을 뽑는 국민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고, 다음으로 그 선택의 대상인 리더들 또한 온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당이 다수당이 되건 야당이 다수당이 되건 완벽한 사람이나 완벽한 당은 없다. 모두가 문제와 결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본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이 사람을 선택하는 이 방식이 영적 세계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그 백성들의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3] 요 15:16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누구를 택했다면 딱 우리 수준에 맞을 것이다. 요 1:16절도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한다. 사람의 혈통이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우리가 선택되었단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는 유한한 분이셔도 문제가 될 것이고, 그분이 자기 수준에 맞는 완벽한 백성을 고르셨어도 죄 많은 우리에겐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4] 히 9:12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죄를 지을 때마다 염소나 송아지를 사서 속죄하려면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해야 할 것인가? 돈 많은 부자만이 선택되어 자신의 죄를 씻고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면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참 많다. 잘못된 선택은 자신은 물론 타인과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만큼 선택은 중요한 것이다.
[5] 구원, 즉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일이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한 것임이 다시금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죄로 가득한 형편없는 우리를 일방적이고 선제적인 은혜를 통해 자기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할까?
엡 2:8-10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써(by Grace) 믿음을 통해(through faith) 우리를 구원시키시되 선한 일을 위해서(for good works)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의롭고 선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의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존귀한 천국백성 됨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렇다. 수준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더럽고 추한 우리를 값없는 은혜의 선택으로 천국백성 삼으신 이유와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하여’서이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 바로 ‘선한 일’(good works), 즉 ‘선행’이다. ‘값없는 은혜’가 베풀어질 때는 다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값없는 은혜’라고 할 때 ‘값없는’은 ‘공짜’(free)를 의미하지 않는다. ‘priceless’, 즉 ‘값을 매길 수 없는’이란 뜻이다.
[7]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은혜와 사랑에 과연 우린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를 본받는 수준 높은 삶으로 천국 시민권자 다운 자로 인정받게 되기를 조용히 다짐해본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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