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브라함의 원칙 있는 물질관
아브라함의 인격적 성숙은 그가 보여준 물질관에서 잘 드러난다. 아브라함은 롯과의 분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모든 가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앞세운 인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참된 가치라는 신앙고백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당대에 크게 번영을 누린 인물이었다.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려고 하란으로 온 아브라함의 종은 라반에게 자기의 주인이 받은 복과 창성함이 어떠한지를 이렇게 증언하였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나귀를 주셨나이다.”(창 24:35)
아브라함이 이삭의 배우자와 그 집안에 선물로 보낸 은금 패물과 의복이 약대 열 필 분량이었다는 것은 그의 부요가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누린 물질적 풍요는, 아브라함의 종이 증언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결과이다. 그런 결과를 누린 것은 그가 철저한 하나님 중심적 신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해주고 그런 가치관에는 건전한 물질관이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건전하고 원칙 있는 물질관은 곧 그의 인격과 신앙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아브라함의 물질관은 두 가지 면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신앙적 자세이다. 창세기 14장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고임 왕 디달과 연합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한 내용이다. 이들 네 왕의 연합군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노략질하여 갔고, 그때에 소돔에 살고 있던 롯도 소돔사람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 이런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고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사병 318명을 동원하여 추격전을 벌렸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던 롯을 비롯한 소돔사람들과 그들의 재산을 되찾았다.
승전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은 예루살렘 제사장이며 왕이었던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 이것은 구약성서에서 십일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십일조는 자신이 얻은 소득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헌금이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과 소돔사람들의 되찾은 재산의 십일조를 하나님에게 바쳤다. 그 외의 다른 물건들은 모두 소돔 왕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자신에게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한 승전하고 돌아오는 자신에게 복을 빌어준 제사장 멜기세덱의 영적권위를 존중하는 자세에서 나왔다.
아브라함의 물질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는 부당하고 불의한 재물을 거부하는 그의 자세이다. 포로로 잡혀갔던 소돔사람들을 구출해준 아브라함에게 소돔왕은 되찾은 물건은 모두 아브라함이 가져갈 것을 제안하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먼 곳까지 추격하여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소돔사람들의 재산은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승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시 사회의 관습이었다. 그런 점에서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제안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관습에 의한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네 말에 내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창 14:23) 그것이 소돔왕의 제안을 아브라함이 거절한 이유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복을 줄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 거기에 포함된다. 그는 자신의 부가 소돔 왕이 제안한 전리품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소돔사람들이 죽음의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구출 받은 직후라 경황이 없겠지만, 나중에는 아브라함이 소돔사람들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는 다른 내용이 숨어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추격하여 싸운 것이 소돔왕의 정식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고, 조카 롯을 구하겠다는 그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롯을 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구출하게 된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소돔 사람들의 재물을 취하는 것은 정식 계약에 의한 정당한 수입이 될 수 없었다. 성경은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당한 이익으로는 뇌물이 대표적이다. 뇌물을 주고받는 일은 공정한 재판을 그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한 또 다른 이유로는 소돔 사람들의 재물이 고난당한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는 포로에서 구출되었다는 감격과 안도가 있었겠지만,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당장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왕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곧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물건을 취하여 부자가 되는 셈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의 물건을 취하여 그들로 더욱 어렵게 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더불어 오히려 그들의 물건을 돌려줌으로서 어려움을 다소나마 덜어 주겠다는 아브라함의 뜻이 그의 거절 속에 담겨져 있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제에게 돈을 꾸어 줄 때에도 변리를 취하지 말라고 규정한다. 변리를 취하는 것은 형제사랑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신 23:30) 또한 가나한 사람의 겉옷을 저당 잡을 때 해가 지면 그 옷을 돌려주라고 명령한다.(신 24:13) 당시 겉옷은 밤에 잘 때 덮은 이불 역할을 겸하였다. 그래서 여유의 겉옷이 없는 가난한 자는 밤에 추위를 막아줄 다른 대책이 없었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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