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항공 일정 전부 취소되고 예약한 인천행 비행기만 운항
2주 의무 자가격리 위해 찾은 지역서 도로 봉쇄해 출입 막아
코로나 '음성' 판정..."현 상황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있어"
동남아시아 A국은 한국 내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자 3월 초 한국인과 한국 경유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3월 중순부터는 해외 입국자의 입국과 자국민 해외 출국을 전면 금지했다. 사실상 국경이 봉쇄된 것이다. 5개월간 A국서 공동체 훈련을 받고 있던 한국, 미주 출신 한인 수습 선교사들이 갑자기 발이 묶였다. 일찌감치 코로나19로 플랜 B, C까지 염두에 두고 훈련을 진행했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더 빨리 바뀌었다.
결국 파송단체와 현지 사역자들은 한인 수습 선교사들과 자녀들이 비상시 가장 안전하게 치료와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눈물을 머금고 긴급 귀국을 결정했다. 앞뒤로 항공 스케줄이 대거 취소되는 가운데 사역자들이 예약한 인천행 비행기가 1일 기적적으로 이륙했다. 모두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지만, 자가격리 장소를 찾지 못해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한국에서는 1일부터 모든 해외 입국자의 2주 자가격리가 의무화돼, 파송 단체, 후원교회 등의 도움으로 비어 있는 수련원, 쉼터에서 자가격리를 할 예정이었다. 물론 지자체에도 알렸다. 그러나 지역 주민은 트랙터와 차로 도로를 막고, 지자체는 전입 신고를 거부하는 등의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모처에서 자가격리 중인 A국 J선교사는 7일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선교지 상황과 귀국 당일 경험한 일들을 전하며 "지금은 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J선교사(GP선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해외선교위원회 소속)는 신학공부 후 선교사로 부름받아 OM국제선교회에서 사역하고, 싱가포르 ACTI에서 경력 개발 훈련, 선교한국 조직위원회에서 선교 동원 및 훈련, GP선교회에서 한국 본부 동원 및 훈련을 담당했다. 19년 전 A국에 파송돼 2008년부터 인력 자원 훈련 및 연구개발 원장으로 사역해 왔다. J선교사에 따르면 다양한 언어, 문화, 인종, 종교가 공존하는 A국은 수습 선교사들이 훈련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이곳에서 수습 선교사들은 공동체 훈련을 받으면서 지역교회 예배, 셀그룹 참여, 난민학교, 장애인 대안학교 등 다양한 사역 현장을 삶으로 배운다고 했다. 2006년부터는 한 텀(4~5년)을 마친 사역자들의 경력 개발 훈련을 실시했는데, 사역 디브리핑, 사역 보고와 차기 사역 계획 보고, 멤버케어를 통한 부부와 자녀, 동료, 현지인들과의 관계 점검 및 치유, 소통, 협력을 지원해 왔다. 허입 선교사 교육과 10년 차 이상 시니어 선교사들을 위한 리더십 컨퍼런스, 지역교회와 젊은이, 전문인 동원을 위한 비즈니스 사역 훈련도 하고 있다.
ㅡA국에서 일시 귀국하게 된 상황이 있었나.
"수습 선교사 공동체 훈련 기간이 5개월이다. 중간에 사역 관련 필드 리서치 트립을 A국이 아닌 해외로 2주간 떠난다. 비자 연장을 위한 비자여행을 겸한 것이다. 올해는 강사로 섬겨주시는 분들이 코로나로 초반부터 변화가 많아 우리도 플랜 B, C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그러나 A국이 한국인과 한국 경유자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국경을 봉쇄하면서 수습 선교사들이 필드 리서치를 나가지도 못하고, 나갔다 하더라도 A국에 다시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전파 상황을 보며 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치료와 훈련을 계속할 수 있을 곳이 고국이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서의 자가 격리 2주를 필드 리서치 기간으로 대체하여 영성 강조 및 독서 훈련 주간으로 진행하고 있다. 마침 독서 훈련을 위한 서적 제목이 '기독교 선교의 이해: 고난과 영광에의 참여'여서 여러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ㅡA국 상황은 어떤가.
"우리가 사는 P도시 근처에 1만여 명이 모이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있는데, 1만6천여 명이 모여 집회한 후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A국 정부가 집회 참여자에게 자진 신고하도록 했으나,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은 추방을 두려워해 신고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 인원만 4천여 명인데, 아직까지 3천여 명이 미신고한 상황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M국과 B국 국경 인접 지역의 L종족 난민 무슬림이고, 주변 국가의 다른 무슬림도 포함돼 있다.
A국은 3월 중순 이후부터 '이동제한령'이 떨어지고, 생필품 판매처와 약국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국민과 외국인들이 산책과 조깅을 하자, 이들을 구류한 후 보석금을 받고 풀어줬다. 또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해 고속도로 등을 막고 검문을 시작했다. 생필품 구입 시에는 가족 중 한 사람만 차를 타고 나가 구매해야 한다.
A국 정부는 모든 종교 활동과 심지어 가정에서의 예배까지 금지했다. 무슬림 가족은 우리처럼 4~5명의 핵가족이 아니다. 부인이 많으면 4명까지 있고, 자녀들도 10~20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많다. 거기에다 3대가 같이 살면 식구가 30~40여 명이다. 가족 중 한 명이 걸려도 집단 감염이 발생하므로 가정에서의 종교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어느 도시에서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침례교 목사님이 지역 내 첫 코로나19 희생자가 되었고, 교회 내 집단 감염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출발한 지난 31일에는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소외자 공동체에서 20여 명이 모여 지내다 집단 감염 우려를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현지인 리더가 알려왔다."
ㅡ귀국하는 과정에 여러 난관이 있었다.
"3월 중순 이후 한국 국적기 입국이 금지되고, 마지막 주간에는 미국 항공기 운항이 대부분 중단됐다. 이어서 A국 저가 항공마저 운항을 정지했다. 1차 이동제한이 풀리자마자 밤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려 했는데, 출국 수일 전 모든 항공기 운항 일정이 홈페이지에서 내려졌다. 그러자 한인회와 교민,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 한국 정부와 협상하여 특별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다. 비행기 편도 가격이 US달러 750~900달러(약 92만~110만 원)로 비쌀 뿐 아니라, 교민에게 민폐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귀국을 포기했다.
이후 저가 항공사에서 4월 중순까지 하루 한 번 인천공항행 비행기 10편을 운항하겠다는 공지가 떴다. 마지막에 홈페이지를 확인했을 때에는 우리가 예약했던 비행기가 출발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택시도 운영 시간이 제한되어, 예상보다 일찍 출국과 입국 관련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가족별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상황판에는 오직 인천행 비행기만 체크인을 하고, 앞뒤 비행기가 대부분 취소되어 있었다. 미주 출신 수습 선교사들은 한국 입국 시 무조건 국가 격리시설로 들어간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모두 출국 대기장소로 나왔다. 300여 명이 탑승한 비행기는 긴장 속에서 예정보다 30분 일찍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ㅡ입국 과정은 어땠나.
"노란색 건강 상태 질문서와 하얀색 특별 검역 신고서에 방문한 곳과 주소, 연락처, 발열 증상 등을 기록하고, 긴 줄을 서서 체온 측정과 검역대 확인을 마쳤다. 이후 외국인과 한국인 입국 카운터에 들어가기 전 보건복지부의 '자기격리 안전보호 앱'을 설치했다. 앱 가입과 주소, 연락처 기록, 담당자 확인 후 자동 심사대를 거쳐 나오기까지 2시간이 더 걸렸다. 짐은 바로 찾을 수 있었는데, 미주 출신은 공항 법무부 사무실로 안내를 받아 1일 하루 10만 원씩 지불하고 14일간 국가격리시설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들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 목에 명찰을 걸고 나온 미주 출신들과 만났고, 모든 입국자에게 안내원들은 격리장소 이동까지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하는지 문의하며 게이트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명찰을 걸고 온 외국인들은 다시 육군의 안내를 받고 국가격리시설로 갔다. 이분들은 공항에서 10분 거리 격리시설로 간다고 했지만, 결국 우한 교민이 머물렀던 아산까지 갔다. 숙소가 준비되지 않아 버스 안에서 저녁 7시까지 기다리며 종일 식사를 하지 못하다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31일 저녁 7시 A국에서 식사 후 1일 저녁 8시까지 식사를 못하고 다이어트를 위한 '간헐적 단식'을 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ㅡ한국 국적 사역자들도 자가격리 장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원래 가려고 한 장소는 31일 오후 늦게 주민의 민원으로 1일 오전 관계자들의 미팅을 통해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플랜 B인, 팀 분산 계획을 가동했다. 미주 팀은 아산 격리시설로 가고, 나머지는 B지역과 C지역으로 파송단체 본부 스태프가 총 출동해 가져온 차량으로 각각 출발했다. B지역에 가기로 한 팀은 지역 밖에서 검체를 하고 무증상이면 들어가기로 했으나 보건소들이 이리저리 떠넘기기를 해서 결국 E지역 보건소에서 검체를 하고 E지역 격리시설로 들어오게 됐다.
저는 공항에서 C지역으로 향했는데, 보건소에 도착 시간을 알려주었고 보건소는 숙소(수련관)에 들어가기 전 검체를 받고 가라는 안내를 계속 해주었다. 수련관 대표자의 연락처와 이름도 물어와 알려주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연락이 없어 보건소에 전화하니 서로 돌려가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련관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트랙터와 SUV 자동차가 사고가 난 듯 도로를 막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코로나 청정지역인 C지역에서 아예 출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수련관을 운영하는 교회는 서울에서 수련관 열쇠, 생수, 라면과 컵밥, 간단한 생필품을 준비해 달려왔지만, 자기 공동체 수련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주민에게 10여 분 상황 설명과 양해를 구했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져 더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여m 뒤 차 안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며 못 올 곳을 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좀비'가 된 듯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은 기저 질환이 있어, 후원자요, 친구요,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역자에게 자가격리 장소를 미리 부탁했었다.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자기격리자를 확진자라도 되는 듯 거부하는 모습에 자괴감도 들었다. 마음 한구석엔 '이리 좀비 취급하고 거부할 거면, 내려오기 전에 이야기해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와 공항 검역 과정을 12시간 이상 거쳐왔는데, 좌우 운전석이 바뀌어 졸음을 이겨내며 온종일 먹지도 못하고 이곳까지 내려왔는데.... 돌아가는 길은 몹시 씁쓸했다."
ㅡ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본부와 동생에게 연락하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환영하는 곳은 없어도 마음은 평안했다. 그래도 파송단체 본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지인들의 도움으로 E지역에 안착했다.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예약해 검체 채취를 했고, 한국 출신 선교사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아산에 있는 미주 분들은 매일 2번씩 체온과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고생하는 의료인들과 대부분의 공무원에게 감사했다.
'선교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선교를 정의하고 훈련해 왔는데, 이번에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2020년 사순절 기간에 팀을 이끌고 위기관리 대응과 비상시 이동을 위한 현장 실습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어느 때보다 의미 있고 축복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시 일상의 제한이 신앙인들의 내면 성숙과 성장의 시간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주님의 고난을 온 마음과 몸으로 체험하며 영광스러움에 참여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ㅡ다른 지역 시설에서 격리 중인 선교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국가격리시설에 있는 미주 분들은 고비용이 들지만, 비용만큼 서비스가 괜찮다고 한다. '이러다 확 찐 자(비만)가 되는 것 아닌가' 염려한다고.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잘 먹고,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되니 격리 기간을 늘려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친구와 지인들도 격려차 음식을 배달해주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 동료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현재 상황을 나누고 이슈들을 나누고 있다. 현지에 두고 온 현지 동역자들과도 통화하고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뒤늦게 입국 중 어려움을 겪은 소식을 듣고 문안해온 친구들도 있고, 파송교회 담임 목회자님도 연락해서 식사하자고 하셨다. 처음 입국 시 긴장과 불편함, 거절로 인한 피곤과 잠시 분노한 마음은 사라지고, 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고 있다."
ㅡ자가격리 기간이 끝난 후 계획은?
"코로나19의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이동훈련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코로나 이슈가 지나가면 A국 현장으로 복귀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 텀을 마친 선교사들을 위한 경력 개발 훈련이 계획되어 있고, 바로 이어 경력 허입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다."
ㅡ선교 현장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선교사들이 현장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특별히 현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이슬람 국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복음 증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는데, 선교단체와 파송교회, 현지와 협력하여 보다 중장기적인 협력과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장기 비자 없이 사역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단기 비자로 잠시 현장을 이동한 것이 재입국 불가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ㅡ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동안 모든 사람이 세계화(globalization, 글로벌리제이션)를 경험하며 목표로 삼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과 종교 생활에까지 엄청난 파장이 미치고 있다. 타임지의 한 기사는 '글로벌리제이션의 스테이지1은 끝났다'고 했다. 지금은 집에서 비대면 영상 예배를 드리고 온라인 헌금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교계도 영상 예배를 위한 캠코더 등 장비를 갖추려 하지만, 비용의 증가와 품귀 현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변화에 대비하려면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창조적인 길'을 긴장감을 가지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순종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회를 대형화하거나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많은 책임을 지우고 또 의존하기보다는 가정에서 모일 수 있는 셀 그룹 리더와 목장을 인도하는 전문적인 인력 자원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세대인 젊은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대안과 투자, 모델도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되고 실행되어야 할 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관계가 쉽지 않은 시기에 신앙인들의 사랑의 마음마저 거리두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벌써 교회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고 선교단체에 후원비 중단 소식이 들려온다. 일부 돈으로 사역하는 것도 지양해야 하겠지만, 꼭 필요한 선교 사역을 중단하는 것은 선교사의 철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시 선교지로 나가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나가지 못할 시기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험한다. 중국이 그랬고, 중동과 인도와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번 코로나19로 여행 및 단기 비자의 무효화 조치, 입국 거부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인 현실이 될 수 있기에 사역지를 사수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