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성경 계시 비교는 다른 차원이다
‘빅뱅’론은 성경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 계시는 초월(超越) 계시요 과학 영역은 초월에 대응하는 내재(內在)의 영역이다. 초월과 내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계시로 믿는다. 반면 과학은 그 피조 세계의 질서를 탐구하는 즉 내재를 다루는 도구의 학문(causa instrument)일 뿐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목격한 것처럼 과학은 오류를 토대로 발전한다. 즉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Carl Sagan). 언제나 특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나 그것은 잠정적이다. 가설이 세워지지만 그 가설도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은 수정과 반박이 가능한 학문이다(Karl Popper). 반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의 질서를 만드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참 된 과학은 당연히 성경적 질서와 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성경 적용이 사이비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내재의 도구를 다루는 과학(causa instrument)을 내재의 원인이신 창조주 하나님(causa prima)의 초월 계시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미숙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정상상태 우주론과 팽창 우주론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우주형태론’(cosmograpy)과 ‘우주생성론’(cosmogony)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사는 세계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절대자의 창조-섭리로 보려는 관점과 자연-우연 발생의 관점에서 보려는 두 입장이다. 이 두 설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단히 다양한 양상을 가진다. 왜냐하면 기원론은 필연적으로 지구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화와 종교와 민속과 문화와 사회적 해석 시기를 거쳐 기원론은 고대 헬라 철학자 중심으로 시작된 천동설(geocentric theory)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지나며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한때 우주기원론은 H. 본디, 프레드 호일이나 위클라마 싱 그리고 한때 아인슈타인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상상태우주론이 지지를 받는 듯했다.
우주 팽창론으로 기울어진 과학
하지만 정상상태우주론은 오래가지를 못했다. 1929년 허블이 도플러 효과에 의한 적색 편이(red shift)을 관측함으로써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하고, 1948년 조지 가모프가 빅뱅(대폭발)에 의한 우주기원론을 제창한 후, 1965년 미국 벨(Bell)연구소 연구원들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1970년)하면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은 최근에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물론 빅뱅 우주론도 이론이기에 여전히 딜레마들이 남아 있다. 빛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인 우주의 지평 밖에 위치하는 사건들에는 어떻게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우주의 지평 문제’ 문제나 어떻게 인류가 우주에 서식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편평도의 문제, 원시 입자의 존재 등에 대한 의문은 빅뱅우주론의 완벽성에도 틈새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우주 최초시기에 근접한 분자가 발견되었다는 <네이처>지의 논문 기사가 나왔다.
천문학계에서는 수소화헬륨(HeH+)을 우주 진화(생물 진화와 혼동하지 말 것)의 시발점으로 여긴다. 우주가 식고 수소화헬륨과 수소 원자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별과 은하의 주원료인 수소 분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논문 대표 저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롤프 귀스텐(Rolf Güsten) 박사는 “수소화헬륨의 존재는 수십 년간 천문학의 딜레마였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초기 우주의 화학반응에 대한 의심이 해소됐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빅뱅은 성경적인가를 생각해보자. 최소한 정상상태우주론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데 힘이 실리는 관측이 한 가지 더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전부다. 빅뱅이 성경의 오류성이나 무오류성을 확증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과학의 본질과 성경 계시의 진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혹시라도 우주의 물질이 한때 한 점에 뭉쳐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곳에 물질이 한 점으로 있었는지? 그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으며 그 태초 물질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 폭발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덧붙여서 물질을 담은 공간은 어디서 왔고 시간은 어떻게 우주에 들어온 것인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섭리 하셨는지 이런 문제들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학적 판단은 언제든지 변하고 수정될 수 있다. 대 과학자 뉴턴(만유인력, 기계론)도 아인슈타인(통일장, 정상상태론 등)도 스티븐 호킹(타임 머신 주장 등)도 그들의 이론이나 주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며 착각이었다고 고백하거나 수정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오히려 그렇게 수정되는 것이 건전한 과학이고 과학의 당연한 본질이다.
반면 성경은 여전히 세상과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구원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책으로 굳건하다. 그리고 최근의 수소화헬륨의 관측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한 가지 증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다.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빅뱅우주론”은 21세기 가장 유력한 과학자들의 신뢰를 받는 우주기원론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또 어떤 탁월한 과학자가 나타나 이 이론을 미세 조정할지 아니면 뒤집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떠할까? 필자가 보기에 성경은 ‘빅뱅’을 긍정도 부정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즉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빅뱅의 방법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하셨는지, 아니면 그 유사한 방법으로 하셨는지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인류가 찾아서 탐구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발견은 어떤 또 다른 결론을 유도해낼지 아무도 모르며 언제든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사실을 선포할 뿐 과학적 증거인 ‘빅뱅’을 말하는 책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빅뱅은 무조건 반성경적이라는 억지 주장은 제발 이제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늘 유동적인) 최근의 가장 유력한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래서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3명도 어김없이 모두 우주팽창론자들이었음에도 전혀 분노하거나 실망할 거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분노하는 일부가 있기는 하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아닌 ‘빅뱅’을 수용하면 무조건 불신자라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성서근본주의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만 실망하고 분노할 뿐이다. 성경은 어떤 과학적 주장이나 발견 앞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진리 안에서 자유케 함을 잊지 말자.
창조 연대에 대한 자유함
따라서 창조과학이 창세기 1-1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창조의 시기를 주전 4000여 년 전으로 보는 것이나 과학이 지구의 나이에 대해 대략 2500만년으로 시작(1850년)하여 2000만년(1862년, 크리스천과학자 Kelvin), 4000만년(1897년, Kelvin), 10억년(1921년, Rayleigh), 45억년(A. Holmes), 최근(2018년) 대략 46억년으로 확장되어 오며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딜레마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함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해석의 핵심적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자유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과학으로(빅뱅이든 창조과학이든) 창세기 1장을 재단하지 말라
이제 창세기 1장과 빅뱅의 입장을 결론 내어 보자. 즉 빅뱅은 인류가 현재까지 찾아낸 우주 기원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기원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이론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가 없으며 물질은 왜 그곳에 모여 있었으며 빅뱅이 일어난 원인과 동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성경은 빅뱅과 달리 그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창조에 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선포한다.
빅뱅으로 창세기 1장을 설명하려는 것은 초월의 성경 계시를 내재 학문인 과학 아래로 격하 시키는 것이며 빅뱅을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무조건 반박하는 것도 옳지 않다.
과학적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성경의 내용과 해석을 수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전혀 계시가 아닐 것이다. 또한 수천 년 동안 교회 전통을 따라 이루어진 성경에 대한 해석 방식을 20세기 시작된 창조과학이라는 운동으로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방식도 전혀 옳지 않다.
이 방식도 성경 계시의 초월성을 무시해 버리는 아주 나쁜 해석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는 성경을 아주 어리석게 해석해 왔다는 이상한 결론에 빠져버리게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과학은 과학 시대의 선지나자 제사장의 자리로 올라가 버리게 되는 큰 참사를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주신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내려주신 참 된 창세기 해석법을 찾아야 한다. 즉 바른 해석의 문제다. 따라서 빅뱅을 긍정하건 빅뱅에 큰 반감을 가지건 그 같은 태도는 창세기 1장 해석에 그리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없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