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54~57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이 질문은 인간이 던져봄직한 어떤 질문도 무색하게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시인하느냐? 아니면 부인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약아 빠진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일반적인 견해 중에 하나는 과학은 어쨌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다는 막연한 생각일 것이다.
과연 옳은 판단일까?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우드워드(E,l wood ward,)는 “우리 서구전통의 가치관인 공평과 자비와, 친절과, 인내와 자기희생은 물질주의와 서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물질주의는 영혼도 하나님도 아무 영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물질만 존재 한다는 우주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위대한 과학자들이나 특히 천문학자 중 90퍼센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을 들여다보자.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고 모의한 그 유대인 지도자들을 피해서 에브라임이라는 동네로 가셨다. 예수님은 죽기가 두려워서 피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
주님은 피하시는 지혜도 있으셨다. 악인과 더불어 싸우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는 아니다. 예수님은 친히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시며 유언하시기를 “나는 어린양으로 세상을 위해 십자가 위에 죽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마지막 죽음을 위해서 주님은 쉬는 것이 필요했고 영적 충전의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주님의 피하심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주님의 영적 분별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언제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때를 따라서 행동 하셨다. 실제로 사탄의 세력도 하나님의 작정하신 그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내어 줄 때까지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7:30절에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음이러라.”그래서 주님은 에브라임으로 피하셨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미리 예루살렘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그 예수를 찾고 있었다. 저들이 예수를 찾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첫째로 저들이 주님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를 믿고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집단 속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나 이야기 거리의 예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호기심의 예수, 잡담 속의 예수 외에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리들이었다. 그 예수 때문에 어떤 손해도 보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예수님은 호기심의 예수, 잡담 속의 예수 외에 아무것도 아닌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친구와 어울리기 위함이고, 설교는 교양 강좌에 불과하고, 종교는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좋은 정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주님의 고난의 여정인 사순절에 대해 묵상해 보자.
둘째 예수님을 찾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를 찾아 죽이려고 벼르는 무리들이다.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지금 예수를 찾지 못해서 안달하는 이 집단은 오직 예수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예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없애버릴 때까지 저들은 결코 두 다리를 펴고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기독교의 충성스런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통해서 이런 집단들에 의해서 언제나 고통을 당해왔고 박해와 순교까지 당해왔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실제로 승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예수를 찾고 따라야 할까?
세 번째 진정으로 예수를 찾는 무리가 있다. 정말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충성스러운 집단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다.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해를 당할 수도 있고 역경을 만날 수도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죽음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참으로 사는 길이며 영생의 길임을 시인하고 고백하자.
주님은 그런 충성스러운 성도를 찾으신다. 우리 모두가 그 주님을 찾고 그 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걸어가자. 그 분만이 나를 위하여 지옥의 형벌을 대신 당하셨고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 꿇고 그를 나의 삶에 모셔들였던 순간 이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나를 감동 하셨기 때문이다.
사순절 마지막 주일에 수난의 의미를 음미해 본다.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를 찾는 이유이며 나는 이 길을 가리라 다짐해 본다.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선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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