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출신 여류 독신 찬송 작가인 히윗은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여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정한 형제애를 실천했고 주일학교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였다. 그의 찬송시의 대부분은 주일학교를 위한 것들이다. 그녀는 병약한 가운데서도 주옥같은 찬송시를 많이 남겨 오늘날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필라델피아 학교에서 그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는 아주 불량한 문제아가 있었다. 1887년 겨울 어느 날 그 불량 학생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타이르는데 이 아이가 느닷없이 지붕 스레이트로 여사의 등을 때려 척추를 다쳐서, 상반신을 석고붕대하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이 사고로 1888년 봄까지 6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원수를 은혜로 갚아야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속에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마침 그 때 청소부 아주머니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병원청소하고 다녔다. 청소부가 뭐가 좋아서 저렇게 콧 노래 부르면서 살아갈까? 도전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저보다는 환경이 나은데, 직업도, 환경도, 사는 것도 다 나은데 왜 낙심하고 포기하고 있지,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히윗 여사는 “청소하는 것이 뭐가 그리 좋아 찬양합니까?”라고 흑인 여자에게 물었다. 그 흑인 여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나에게 닥친 어려운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영적인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낸 자신의 모습을 회개를 하게 되었다.입술로는 본 찬송시를 읊었던 것이다.
이 때 찬송을 지은 것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찬송이었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투병 생활은 기쁨과 찬송의 시간이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의 아픔은 제거되었고 또한 가해를 한 학생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 지자 병실을 나가 바람을 씌우기를 원하였다. 의사는 반대하였으나 끈질긴 요청으로 허락을 받아 ‘페어마운트’라는 공원으로 나왔다. 그녀는 공원에서 봄의 아름다움, 향기, 공기를 느겼다. 집에 돌아와서 그 감격의 기쁨을 적었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훗날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 선도에 일생을 바쳤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듣기
/ 이병석 목사 제공, 조성호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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