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선교 역사 새로 쓴 장요나 선교사의 간증집

신간 『가라, 니느웨로!』
장요나 선교사 ⓒ나침반 출판사

지난 30년 동안 베트남의 선교 역사를 새로 쓴 장요나 선교사의 간증집이 출간됐다. 신간 『가라, 니느웨로!』다.

이번 책에서 장 선교사는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야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비라카미'라고 불리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복음의 씨를 뿌린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장 선교사에게 처음으로 신앙의 본이 되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를 싫어하는 계모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배날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횃불을 치켜들고 교회에 갔다. 계모는 식사기도 중인 그에게 다가와 '어디서 예수쟁이 티를 내냐'며 담뱃대로 머리를 내리치고, 식구들 앞에서 회초를 들기도 했다. 그 모든 수모를 묵묵히 감당한 아버지를 보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본을 봤다.

장요나 선교사의 베트남 선교 현장 ⓒ나침반 출판사

40대 초반에 시작한 건설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부산 수영장 요트 경기장을 수주 받았고, 옥외광고 회사도 차려 전국의 시계탑 광고를 독점했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벌려서 요일마다 다른 시계를 차고, 양복도 수십 벌을 사 놓고 기분 따라 입었다. 물 쓰듯 돈을 쓰며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그에게 찾아온다. 갑자기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고 눈도 뻑뻑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하는 것. 곧 온몸이 마비되고 혼수상태가 왔다. 얼마 후 의식은 돌아왔지만, 몸은 마비된 채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가족들은 그가 산송장이라고 생각해서 '이젠 포기하자'는 말도 했는데, 귀만은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하는 말이 다 들렸다.

그 비참한 절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불렀다. 탄식 속에 부르짖은 외마디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외마디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즉각 응답하셨다. 마치 오랫동안 그 말 듣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마음 속에 기도가 터져나왔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제야 제가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손발이 닳도록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서원도 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고막이 파열될 것 같이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를 소유하리라. 이제 네 서원을 갚아라!"

기적이 그에게 일어났다.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것. 이후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매일같이 부흥회를 다니며 간증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선교사로 훈련받았다.

드디어 1990년 베트남에 입국했고, 종교활동이 금지된 그곳에서 죽을 각오로 선교하기 시작했다. 처음 10년 동안은 경찰의 눈을 피해 처소교회를 세웠고, 2000년 들어 종교의 자유가 서서히 용인되면서 합법적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들어간지 30년이 지난 지금, 장 선교사를 통해 베트남에 세워진 교회는 312곳이다. 병원 16곳,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 그리고 신학교를 개척 설립하기도 했다.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도 복음의 씨를 뿌렸다.

2014년, 베트남 종교성에 찍혀 추방을 선고받았지만 1년 만에 체류 허가가 나왔다. 종교성 관계자는 장 선교사에게 "우리나라 사람보다 베트남을 더 사랑하는 미스터 장, 26년 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와 계속 함께 일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현재 장 선교사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다시금 선교에 매진 중이다. 책에서 그는 죽을 때에도 베트남에서 죽겠노라고 각오를 밝히며, 자신의 가족보다도 베트남을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라, 니느웨로! ㅣ 장요나 ㅣ 나침반 ㅣ 370쪽 ㅣ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