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에 따라 10년 만에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지만, 일선 의료진은 원인불명 페렴환자 검진 권고가 나온 시점부터 이미 업무 차질이 생겼다면서 정부의 뒤늦은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하대병원 응급의학과 백진휘 과장은 24일 "코로나19 관련 사례정의 6판에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를 일단 격리해 검사하도록 하면서 격리 대상자가 많아졌다"며 "일부 응급실 의사들은 선별진료를 한 후 바로 옷을 갈아입고 일반진료를 보는 등 (이때부터) 이미 업무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별진료나 일반 진료 등을 분리해 보는 의료전달체계로 조금 더 빠른 정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위기대응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 정부는 범정부적 총력 대응을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하게 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게 되면서 이전보다 정책 적용과 전환이 빨라진다.
국립암센터대학원 기모란 교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지면) 인력이나 돈 지원 등을 좀 더 빨리 결정할 수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에다 지원하는 것 등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감염학회·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대한소아감염학회 등으로 구성된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범대위)는 지난 22일 대정부·대국민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감염병 경보단계를 '심각'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한감염학회 백경란 회장(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현재 특정 종교집단 연관된 사례 많지만, 한번에 많은 환자들이 진단되고 있고 역학고리 못 찾는 확진자가 발견된다"며 "지역사회 감염이 유행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심각 단계로 격상한다"고 말했다.
한림대의대 예방의학과 김동현 교수도 발언자로 나서 "접촉자 격리하는 방역 전략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며 "감염원 특정되지 않은 환자가 전국적으로 흩어지면서 전국에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라 지역사회 확산 초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 단계를 올려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위기대응단계 격상에 주춤한 이유에 대해 외국에서 보는 국내 이미지를 신경쓴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 교수는 "'심각'단계로 격상하면 국외적으로 우리나라가 위험 상황에 빠졌다는 사인이 될 수 있다"며 "국외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면 안 되겠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미 지역사회 확산이 다 알려지고 (외국에서) 입국 금지나 여행 자제 올라오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위기대응단계 격상이 되더라도 실질적인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기 교수는 "이미 위기대응단계 '심각' 수준처럼 총리 주재 다부처 지원 시스템을 가져가고 있었다"며 "메르스 때는 위기대응단계가 올라가면 컨트롤타워가 바뀌었지만, 이제는 방역 컨트롤타워도 질병관리본부가 계속한다고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방역을 지원하는 부처가 복지부냐 총리실이냐 정도만 달라진다는 얘기다.
한편 23일 감염병 위기대응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국내에서는 2009년 이른바 '신종플루'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수준의 위기대응단계가 발동됐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날로부터는 35일째 되는 날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7일 4번째 코로나19 확진 환자 발생 이후 위기대응단계를 '경계'로 올렸다.
이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