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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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하란은 어떤 곳인가?

권혁승 박사

‘하란’은 '도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로’를 의미하는 수메르어에서 기원된 이 단어는 아카드어에서 '하라누'라고 읽혀졌고, 히브리어는 아카드어의 음을 따라 ‘하란’이라고 불렀다. 바벨론어나 앗시리아어에서도 ‘하란’은 ‘도로’ ‘여행’ ‘대상’ ‘군대의 출정’ 등을 의미했다. 실제로 하란은 상부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지나가는 중요 도로들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동쪽에 위치한 티그리스강 유역의 니느웨에서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거쳐 알렙포와 지중해로 연결되는 간선도로가 이곳 하란을 경유하여 지나갔고, 남부 지역인 우르에서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동쪽의 아나톨리아로 연결되는 중심도로도 하란을 지나갔다. 하란을 ‘밧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창 48:7), ‘밧단’은 ‘도로’를 의미하는 또 다른 아카드 단어였다. 성경에서는 ‘밧단’보다는 ‘밧단 아람’(‘아람의 도로’)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하란은 유프라테스강의 한 지류인 발릭강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발릭강은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서 유프라테스강 본류와 합류된다. 하란은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와는 94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란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란의 초기 역사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고대 비문에 따르면, 하란은 주전 2000년대에 이미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였음이 밝혀졌다. 아마도 하란이 우르와 함께 달 신을 섬기는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전 2000년경 우르 제3왕조의 영향으로 큰 도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교통의 중심지였던 하란은 자연스럽게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최근에 발견된 쐐기문자판을 통해 하란과 그 인근 지역이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음이 밝혀졌다. 에스겔도 하란을 여러 중요한 상업과 교역 중심지 중의 하나로 열거하고 있다(겔 27:23).

고대의 중요한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하란 역시 종교적인 도시였다. 특히 이곳에서는 달 신인 ‘신’(Sin)을 숭배하는 중심지였다. 신(Sin)은 바벨론과 앗수르에서도 주신으로 섬겼던 신들 중 하나이다. ‘에훌훌’이라고 불렸던 하란의 신(Sin) 숭배 신전은 그 규모가 웅장했을 뿐 아니라 모양도 대단히 화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전의 지붕은 레바논에서 수입한 백향목으로 지었으며 청색을 띈 금석과 은으로 장식되었다. 하란의 신(Sin) 숭배는 기원 6세기까지도 계속되었는데, 이는 하란의 달 신 숭배가 기독교가 번성하던 시대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란은 가나안으로 이주하던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창 11:31). 아브라함의 부친이었던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고, 그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친족 중 일부는 하란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종을 이곳으로 보냈고, 또한 야곱은 에서의 위협을 피하여 이곳으로 피신해 와서 지내기도 했다.

하란과 관련하여 성경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아람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리브가의 오빠이자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은 여러 차례 자신이 아람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으며(창 25:20; 28:5; 31:20; 31:24)), 이들이 살던 하란지역을 ‘밧단 아람’(아람의 도로) 혹은 ‘아람 나하라임’(두 강사이의 아람)이라고 부른 것도 하란이 아람사람들과 관련된 곳임을 지적해 준다. 후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조상을 ‘유랑하는 아람사람’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신 26:5). 이러한 내용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란에 정착해 살면서 아람사람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역시 하란을 자신의 고향이라 불렀다(창 24:4).

고대 문헌 속에 아람이라는 지명이 언급된 것은 주전 23세기로 추정되는 아카드의 나람-신 비문에서다. 이 비문에 의하면, 아람은 상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을 의미했다. 그러나 원래의 아람인은 오늘날의 시리아 주변 사막에서 살아오던 혼혈 반유목민들이었다. 이들 아람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였던 언어를 통하여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는 본래 동부 시리아나 서북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서북 셈어에 속하는 지방 언어였다.

아람 사람들의 세력이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자, 이들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특히 아모리인들도 아람어와 같은 서북계통의 셈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아람어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는 아모리인들이 다수 포함되었음이 분명하다. 아모리인에 속했던 아브라함이 이주하여 살게 되었던 하란 역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었다. 자연히 그들은 같은 계통의 언어인 아람어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 역시 아람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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