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어떤 곳인가?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이 하란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아브라함의 고향은 우르였음을 강조하고 있다(창 11:31; 15:7; 느 9:7). 아브라함이 살았던 주전 2000년경의 우르는 번성하던 우르 제3왕조가 몰락하고 고대 바벨론제국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일종의 혼란기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우르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번성하였던 도시였다. 아브라함 당시의 우르는 10평방킬로미터 넓이의 도시로서 30만 내지 40만의 인구가 모여 살았던 거대한 도시였다. 이곳에는 유프라테스강물을 끌어들이는 수로가 잘 발달되었고 주변의 거대한 평원에는 비옥한 농경지와 과수원들과 아름다운 정원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옛 우르 지역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 발굴 작업은 1854년 영국의 고고학자 테일러(J. E. Taylor)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뒤로 1918년 영국 학자 톰슨(Campbell Thompson)과 1918-1919년 홀(H. R. Hall)이 발굴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들의 초기 발굴 작업은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우르 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은 1922년 울리(Sir Leonard Woolley)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934년까지 12년 연속으로 우르 지역을 발굴하였다. 그는 우르의 옛 유적지에서 거대한 지구랏(ziggurat)을 비롯하여 우르의 주신이었던 월신 난나(Nanna)를 위한 여러 신전들, 그리고 우르 제3왕조의 궁궐들과 황실무덤들을 발굴하였다. 울리가 발굴한 지역은 일부였지만 발굴 결과는 전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는가를 알게 해주었다.
우르는 청동기시대인 주전 4000년대 초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도시의 번영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우르 제3왕조 때였다. 우르에서 발굴된 거대한 규모의 지구랏은 우르 제3왕조를 창건한 우르-남무에 의해 건축된 신전이다.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우르의 지구랏은, 성경에 언급된 바벨탑처럼, 불에 구운 흙벽돌과 역청으로 지어졌다. 중앙으로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있었으며 꼭대기 층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작은 신전이 있었다.
우르남무 이후 그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가던 우르 제3왕조는 북서쪽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아모리인들과 이들과 연합한 북동쪽의 엘람사람들의 위협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자 우르를 제외한 여러 도시들 사이에서 주도권 장악을 위한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이런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친 도시국가는 이신(Isin)과 라르사(Larsa)와 바벨론(Babylon)이었다. 이들 중에서 바벨론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되었는데, 서쪽에서 유입된 아모리인들로 구성된 고대 바벨론은 동쪽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엘람사람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다른 도시들과 동맹관계를 확대하면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함무라비는 고대 바벨론제국에서 최고의 절정기를 이룬 왕이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과 고대 바벨론왕국의 등장으로 우르는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나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중심 세력을 이루지 못했다. 우르는 2000년대 중반 카시트 왕국시대나 기원전 7세기 엘살하돈이 통치하던 앗수르제국 시대에 일시적으로 번영하는 도시가 되기도 했지만, 옛 영화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헬라시대에는 아랍 유목민들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던 우르는 그 이후 폐허에 묻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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