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빛이시라 증거 했는데 요한1:9-13절에 보면 세상에 오셔서 사람에게 비추이는 “참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둡고 캄캄한 이 세상을 밝혀주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일1:5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자신을 빛으로 비유한 의미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빛은 어두움을 주기 때문이고
둘째는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해바라기를 보면 해가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 때 그 방형으로 꽃이 따라갑니다.
왜냐하면 물만 주어서는 살수 없고 빛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할지라도 밝은 빛을 밝히는 순간에 어두움은 감쪽같이 사라지듯이 빛 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은 걷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 좌절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지 아십니까? 그들이 가짜 빛을 따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세상이 내게로 오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 주장대로 해 줄 수 없습니다. 죄악의 쾌락은 잠깐일 뿐입니다. 빛이 되신 그분만이 우리의 가슴을 소망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을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화재 비상구로서 이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을 원하면서도 그 마음의 자리를 그분에게 바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도덕적이고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이 암흑에 잠겨 있습니다.
사악한 자들이 번창하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범죄는 증가 일로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가짜 빛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평화와 번영으로 지시해 주는 불빛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인공적인 빛은 우리가 많이 갖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넓은 지역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어두움은 갈수록 더 화려해지고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예수님은 오늘날 온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작은 지역의 빛이 아닌 온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은 촛대 아래 계셨을 것입니다.
빛이 금으로 된 지붕에 반사하면서 사방으로 두루 빛이 번집니다.
그 불빛처럼 세상을 밝히시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어둡고 답답하고 무지몽매 하지만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사회가 개화되고 문명이 발달 되었을 뿐 아니라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변화되고 그 변화된 사람들에 의해 새 역사를 이루어 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여기 따른다는 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그리스도 따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1,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빛을 따르면 자연히 어두움은 떠나게 됩니다.(엡5:8-9절)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 가운데 있느니라. 고 하셨으며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종말에 대하여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어두움이 몰아쳐 와서 광명한 자들 이 떠날 것을 예언했는데 현대는 참으로 밖으로는 문명과 문화가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혼돈과 어두움의 세대로 빛이 없는 타락의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언젠가 모르게 빛을 잃고 어두움의 세계를 치닫고 있습니다.
인간의 관능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욕구 불만의 감정이 짙어가는 불신 풍조가 더해가고 시기 질투 음란 방탕의 밤이 광분(狂分)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복음의 말씀이 들립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입니다.”
빛은 의와 선 곧 진선미를 창조합니다.
오늘 우리는 참 생명의 빛을 소유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으로 생명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혜와 기쁨과 사랑을 체험하는 성도 되었는지 (엡5:8-9)
그래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의식하고 있는지(요1:12-13)
우리의 시민이 하늘에 있고(빌3:20)
우리가 과연 하늘에 속한 천국 시민이 되었다면(요일 4:4-8)
새 생명을 누리게 되는데, 첫째는 매일의 생활에서 승리 적 생활을 하며(요일 4:4)
말씀 안에 살게 되고 (요일 4:6)
나아가서는 사랑의 실천 생활 (요일 4:7-8)을 하게 됩니다(롬 13:11-14).
빛의 본질은 밝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 옛날부터 헬라인들도 빛은 지식의 표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지식을 얻습니다. 대낮에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의 모양이나 주위도 가는 방향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이와 같이 천국이 보이니 그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안에는 모든 교훈과 교리를 예수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등등.
‘안다’는 말과 ‘빛’이라는 말과 ‘참’이라는 말은 상호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빛이 없이는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참 빛을 간직하는 성도가 됩시다.
2, 생명의 빛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30-31)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믿어(30-31)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13)
항상 말씀에 거하는 참 제자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됩니다(요15:7-10).
참된 제자의 길은(3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참 제자의 삶입니다(마16;24).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날마다 진리를 알아 가는 가운데(호6:3, 골1:6 2:2)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롬 8:2).
진리는 천하대도(天下大道)이므로 진리 안에만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진리를 체득한 자는 천지로 더불어 생각하고 천지로 더불어 행동하므로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말씀 한 구절이 그 표본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의 절대적 자유의 길입니다.
성경은 자유를 강조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 하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갈5:1)“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자유인답게 사시오“(벧전2:16)라 했으며,
야고보는 예수의 말씀을 자유 하게 하는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독특한 자유로서 죄에서 해방, 형벌에서 해방, 죽음의 공포와 근심 걱정과 온갖 번뇌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정치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참 인간이 누려야 하는 인간 생명에 이르는 자유를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가 남의 종 된 적이 없거늘 이라고 바리새인들은 반박한 것입니다.
저들은 생명에 이르는 자유를 저희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빛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을 얻은 자들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수의 강으로 넘치는 영혼의 만족입니다(요7:38). 생명의 빛을 받아 지혜와 기쁨과 사랑을 넘치게 소유할 것입니다(8:12). 참 진리를 아는 가운데 영혼의 자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구원의 빛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의 청을 받아 어둠의 인생을 청산하고 광명을 찾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