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심판 없는 만인 구원론은 타당할까?"

  •   
위르겐 몰트만 "단언할 수 없지만 타당할 수 있어"... 김명용 박사 "믿지 않다면 이미 심판의 그늘안에 있는 것"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 ©기독일보 DB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는 온신학회 아카데미 4회차 마지막 강연을 천호동 광성교회에서 7일 오후 7시에 전했다. 제목은 ‘믿지 않고 죽은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몰트만의 만유구원론과 새 지평에 대한 신학적 평가’이다.

김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그는 “몰트만은 믿음 없이 죽은 자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신학적 이론을 제시했다”고 했다. 또 그는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도 배격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명처럼 여기는 개신교인들에게도 절충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로 몰트만 박사는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에서 희망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 지점에서 김명용 박사는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을 설명했다. 칼 바르트는 1942년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버리신 이유는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칼 바르트는 “예정은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극단적 대리 교환”이라며 “하나님은 버림받아야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버림받을 수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셨다”고 전했다.

다만 김 박사는 “칼 바르트의 예정론은 구원이 만민에게 열려있음을 뜻 한다”고 밝히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고 단언하진 않았다”고 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과 의 만남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예정하셨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 곧 믿음”도 역설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구원은 확증될 수 있다”고 칼 바르트의 견해를 전했다.

여기서 칼 바르트가 한층 발전시킨 신학적 산물은 바로 ‘객관적 화해론’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이미’ 화해됐다”고 말하며, “이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는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있고,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다”며 “이는 ‘객관적’ 화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바르트 견해를 전하며 “하나님과 화해된 순간은 믿는 순간이 아니고,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라고 역설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만인이 그리스도와 화해된 상태를 말한 것”일뿐, “만인이 구원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바르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예화를 전했다.

2차 대전 때, 나치를 피해 어떤 사람은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깊은 산골로 숨었다. 그가 엄청난 고생을 겪는 와중, 나치가 패망하고 오스트리아가 해방됐다. 오스트리아에는 이미 객관적인 평화와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알프스 산골에 숨어있고, 나치가 망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이 사람에게 전해야 하고, 이를 믿어야 하며, 믿고 도시에 내려와야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에 김 박사는 “나치가 망한 사실은 화해의 사건이고, 자유와 평화는 객관적 실체”라며 “그러나 알프스에 은신한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르기에, 구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 부연했다. 때문에 그는 “누군가는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고, 소식을 듣고 믿어야만 구원은 확증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화해와 구원 사이의 간극은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교’를 통해 메워야 하는 것이다.

2018년 8월 31일 한신대 강연에서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발언하고 있다 ©한신대 제공

이 대목에서, 김 총장은 칼 바르트의 신학적 의문을 제기한 위르겐 몰트만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바로 그는 “하나님과 인간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화해됐다”고 가정하면, “끝까지 복음을 거부한 사람은 결국 심판받을 것인가”를 되물었다.

이에 그는 “칼 바르트는 만인 화해론을 만인 구원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반면 그는 신학자들의 견해를 빌려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은 만인 구원론으로 향해간다”며 “대표적으로 몰트만(J. Moltmann)은 1995년도 책 ‘오시는 하나님’을 통해 만유구원론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해 “그리스도의 은혜가 만민을 구원하고 살릴 것을 선포하고 있다”며 “구원의 보편성을 말했지, 그 제한성을 말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몰트만은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 32)

따라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만민에게 미치는 긍휼”이라며 “하나님은 바로 이 긍휼로 만민을 구원하고, 만유를 구원하고자 하신다”고 확증했다. 더불어 그는 “몰트만에 의하면 영원한 지옥 형벌이 있다면 십자가에 계시된 자비와 사랑의 신은 무의미해진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명용 박사는 몰트만을 견해를 빌려“영원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이오니오스’(aionios)와 히브리어 ‘올람’(olam)은 끝을 제한할 수 없는 긴 시간이지, 절대적 영원은 아니”라고 전했다. 하여 그는 “성서는 저주의 기간을 말하면서, 이 단어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지옥은 절대적 의미의 영원은 아니”라고 재차 말했다.

나아가 그는 몰트만이 주장한 희망의 신학은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의지”라면 “그분의 속성 상 영원한 지옥은 선포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해 “교회의 희망은 하나님께서 지옥도 없애고, 지옥의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 밝혔다. 그래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뿐만 아닌, 지옥을 파괴하는 구원 사건임”을 강조했다고 김명용 박사는 부연했다.

몰트만이 바라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만이 아닌 '지옥을 파괴하신 구원 사건'인 것이다. 김 박사에 따르면, 몰트만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없는 세계에 떨어진 ‘하나님의 현재·미래 그리고 미래의 지옥 고통’까지 겪으셨다”고 했다. 몰트만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가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기에, 그렇지 않으면 모든 희망이 떠날 수밖에 없는 그곳에도 희망은 존재하게 됐다” (J. 몰트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서울 기독교 서회, 이신건 역)

때문에 김명용 박사는 “이 그리스도의 지옥의 경험은 지옥을 열고, 지옥을 파괴시킨 결정적 근거”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몰트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옥을 파괴시키기 위해,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다’고 말했다”며 “십자가는 지옥이 파괴되었다는 결정적인 보증”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뿐만 아닌 지옥을 여시고, 지옥과 죽음을 하나님 안에서 폐기한 사건”이라고 재차 밝혔다.

논의를 확장해, 김 박사는 “몰트만은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십자가 속에 만민의 화해 및 만민을 구원할 하나님의 의지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이미 하나님의 의지는 구현됐고, 교회는 계속적 복음 선포를 통해 희망이 구현될 것”을 역설했다.

한편 김 박사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전했다. 그는 에밀 브룬너(E. Brunner)를 빌려 “성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이중적 결과에 대해 곧 몰락과 저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브루너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인데, 우리가 믿는 경우에만 구원을 주시는 말씀”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은혜로우신 분이시지, 그리스도 밖에서는 진노하시는 분”이라고 못 박았다. 또 김 박사는 만유구원론은 전도의 절박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 괄목할만한 점은 몰트만의 논리 전개가 다소 비약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몰트만이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에서 만유구원론으로 도출할 때, ‘십자가는 만유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을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결단 사이, 하나님이 결국 이기실 것으로 보았다”며 “이는 기계론적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만유구원에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에, 만유구원은 하나님께도 열려진 미래”라고 했다.

물론 “몰트만 또한 만유가 구원에 이른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며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했다. 다음은 2003년도 몰트만의 책 ‘희망의 신학’에 나온 대목이다.

“만유구원(Allversöhnung)은 이단도 아니고 더 이상 책망할 이론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만유구원에 대한 결정은 하나님의 일(Gottes Sache)이다. p.166)

때문에 김 박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란 결론은 성서의 가르침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만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분명하다”며 “몰트만은 하나님의 의지는 관철될 것이란 이유로, 만유구원론의 희망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박사는 “그런데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는 만인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만 계시된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그는 “그 의지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고, 감사하는 자들을 구원하겠다는 의지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이 후자의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몰트만은 이 두 번째 의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며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 속에 있고, 이 심판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끝으로 그는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비가 계시돼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이 자비를 알고, 믿는 일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시급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십자가에는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도 있지만, “믿는 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김명용 전 장신대 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몰트만 #칼바르트 #희망의신학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