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3. 한국교회는 동성애 반대(하루살이 걸러냄)에 그치지 않고 우상숭배 타파(낙타 지킴)해야 한다.
1) 동성애는 적대시 하면서 각종 우상숭배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교회 풍토
손 교수는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라면서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번연히 드러나는 거짓과 탐심(우상숭배, 골3:5)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고 지적한다. “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는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며 “한 때 술, 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지금은 동성애를 찬동하면 기독교의 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손 교수는 동성애 비판하는 지도자들이 목회 세습하고 교권욕에 불타고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한국교회가 책임을 묻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예리한 지적에 대하여 필자를 비롯하여 한국교회 일부 대형교회와 목회 지도자들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2) 동성애 반대만이 아니라 교회 내 비리 및 우상숭배 척결 함께 해야
하지만 성경을 인용해서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에 반대하는 것’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고, 오히려 ‘교회가 긍휼과 정의를 상실하고 부패하는 것은 낙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손 교수 주장에 대하여 필자는 그의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다음같이 보완하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에만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윤리실천과 선행을 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동성애 반대 투쟁과 교회의 윤리 및 사회정의 운동은 양자 택일 사항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자에 힘을 쏟아 부어, 후자를 지나쳐서는 안될 일이다. 만일 그럴 때, 동성애 반대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기독교가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 입법 등에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반대운동과 더불어 교회 내부의 각종 목회세습 배격, 각종 형사 처벌 받은 목회자들의 자숙과 설교금지, 각종 권력 다툼이나 각종 금권 선거 연루자 배척 등 교회 정화 운동에 전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까지 동성애 투쟁하는 자들에게 하라는 것은 역할분담론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교회 내부 비리 척결 문제는 교회 원로들과 중진들이 해야 하고 동성애 반대 투쟁은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보완적인 보다 적극적인 윤리적 선행운동으로 신자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 돌봄 등 사회적 정의 실천 등 선행 아젠다를 실천하여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인들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인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4. 동성애 이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 이슈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한다
손 교수는 “기독교가 그런 사소한 것에 목 멜 이유는 없다. 동성애 반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라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23:23-24).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고 밝힌다.
특히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예수님이 낙타에 비유했던 ‘정의와 긍휼’에 힘을 기울였다면 그 때 누렸던 도덕적 권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루살이 같은 동성애와의 싸움에도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지금이라도 낙타와 하루살이를 구분하고 낙타에 집중해야 하루살이도 구할 수 있다.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에 사용하면 영적 전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하루살이(동성애 반대)도 한국교회가 해야할 사회적 과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독립운동이나 신분 차별 타파운동이나 남녀 동권운동에 앞장선 것은 낙타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사회적 소외자들과 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 베풂에 사용하면 동성애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회 세습, 일부 목회자의 독선적 교회 경영 및 세상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탈법적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그의 견해에 찬성한다. 그러나 오늘날 ‘동성애 이슈는 낙타가 아닌 하루살이 제거’라고 비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5. 기독교의 상실한 위상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깊이 다시 자성해야 한다
손 교수는 오늘날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위상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건국 후 상당기간 개신교만 군목을 보냈는데도 다른 종교나 사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독교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서 기독교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너나 잘 하세요’ 야유만 받게 됐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명성교회의 세습으로 인한 교단의 정관 유린과 교인들 앞에서 세습 안하겠다는 세 번 약속 파기, 서울장로교회 등에서 진행 중인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싸움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키고 있다.
한기총(한국기독교 총연맹)도 초기에는 좋은 역할을 하였다가 2011년 이래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켰다. 한기총은 1989년 12월 28일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당시 36개 교단 6개 단체의 대표 121명이 서울 강남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출발하여 보수적인 연합기관으로 발전하여 지난 22년동안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2011년 이래 한기총 지도자들이 불미스러운 권력 다툼, 금권 선거 파동과 파행적 운영을 하자 이에 분개한 교단들이 나가서 2012년 한교연, 한교총 등이 생겨나게 되면서 한기총은 대표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 등 보수교단 연합기관들은 교권 쟁탈에 몰두하다 대의를 상실하여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데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낙타와 같은 큰 문제들이 한국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서 반동성애 운동에 열성을 지닌 지도자들은 반드시 동성애 이슈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교회가 가진 사회를 향한 정의와 긍휼의 실천, 목회세습의 폐단 그리고 교권 투쟁 등 우상숭배와 탐심에 대하여 크나큰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를 근절하고자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 보수진영 지도자들은 손 교수의 자기들을 향한 충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동성애 반대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 사회적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교권투쟁이나 명예욕의 우상에 갇혀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6.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구별해야 한다,
1) 동성애 선천적 경향 인정?
손 교수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기와 사기꾼을 구별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기꾼은 자기가 결정해서 거짓을 저지르지만 동성애자가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보수교단의 목사의 대학생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동성애적 경향 때문에 심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며 동성애 성향자와 동성애 행위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에 대해 필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손 교수는 “동성애자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 ”보수교단 목사의 대학생 아들이 스스로 느끼는 동성애적 성향”을 예를 들면서 “동성애 행위자와 동성애 성향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동성애의 선천성, 즉 유전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나 생각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성애 성향을 선천적 기질적으로 부여하시고, 이를 가증하다고 금기하시는 자기모순적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동성애 유전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래 7항 참조)
2) 동성애 성중독과 동성애자 인격의 분리: 동성애 행위는 죄, 동성애자는 치유받아야 할 인격
그러면서도 동성애 행위는 죄라고 지적할 수는 있으나 동성애 행위자 인격을 향하여 이성애자들이 혐오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금기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서 본인도 여기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기꾼도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심리상담적으로 측면에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성애 반대자들이 자기는 동성애 중독에 빠지지 않았으니 스스로 의롭고 동성애자들은 죄인이라고 스스로 의로운 의식을 혹시나 가진다면 이는 교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반대자들도 항상 자신을 돌보고 동료들을 돌보고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자들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이러한 중독에 빠지게 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이들이 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갖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혹시나 스스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동성애 행위”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매주 주정 헌금과 십일조 드린다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신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토색, 불의, 간음, 동성애”를 하지 않았다는 외형적인 율법 규례 이행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 속에 끊임없은 죄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겸허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죄 욕망 죽이기와 예수와 새로운 영적 연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7. 동성애는 선천적이라는 유전설은 의학적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손 교수는 “아직도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 택해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보다 동성애자들을 더 심각하게 반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1993년에 미국 동성애 의사인 해머(D. H. Hamer)가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1999년 미국 의학자 라이스(G. Rice)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없다고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였다. 2005년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다시 Xq28이 동성애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B. S. Mustanski a. et., "A Genomewide Scan of Male Sexual Orientation." Human Genetics 116, 2005, 272.)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동성애는 유전적이며 선천적이고 주장하나 이에 대하여 정통 신학자들은 동성애 선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동성애 유전자를 주입하신 하나님이 동성애는 “가증한 일”이라고 금지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기 당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동성애 선천성) 하시고 “아니오”(동성애 금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필자도 성경이 동성애를 명료히 금기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 동성애는 동성애 선천성 견해는 성경적 신학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선천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든 비자의적이든 후천적 환경에 의한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자들의 정설이다.
8. 양성평등의 헌법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에 앞선 글에서 손 교수는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변경하려는 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비판과 항거가 거세게 일고 있다.”며 “특히 사회 일각에서 헌법 제36조 1항. ‘혼인괴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에서 ‘양성의 평등’을 ‘성 평등’으로 고치자는 움직임이 있어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성경이 동성 성관계를 분명하게 정죄하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세계 최초의 그런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양성 평등(sex equality)을 천명하는 것으로 이를 세계풍조에 맞춘다고 성평등(gender equality)으로 개정해서는 않된다. 인류문화는 변하나 인간성(성적구조와 생리)는 변하지 않는다. 성평등이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창조주가 주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을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인간을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젠더 이데올로기로 재구성하고자하는 “제2의 반역”(the second revolt)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를 제2반역이라고 이름 부치는 이유는 선악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반역이 “첫 반역”(the first revolt)에 대하여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성(biological sex) 를 인위적으로 거부하고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만드려고 하기 때문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