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도대체 '네가 누구냐'는 것과 또 하나는 '왜 물로 세례를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있는 광야로 모여 들자, 당시 종교 지도자들 즉 성전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해 있던 저들은 매우 당황한 나머지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하여 조사단을 파견 하게 된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유대인들은 요한을 압박하기 위해 물었지만, 요한은 매우 분명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가 다시 세상에 온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사단이 그러면 네가 “선지자냐" 하고 다시 묻는다. 여기 선지자란 모세가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이다(신명기18:15.18). 당연히 세례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서 전혀 다른 삶을 보게 된다.
그의 삶은 경건 자체였고, 그가 증거하는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성전은 말할 수 없이 부패고 타락해 있었다.
당시 종교 지도자의 모습은 어떠했나?
저들의 모든 경건은 모양뿐 아무런 능력이 없었고. 모두가 형식이요, 외식이요 위선이었다. 이럴 때 세례 요한의 출현은 저들에게 커다란 충격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의 질문에 한 마디로 "아니"라고 대답한다.
세례 요한의 주인은 내 뒤에 오실 분이신데 그가 얼마나 크신 분인가는 자신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한다. 오직 참 빛을 증거 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현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하게 말씀을 접하게 된다.
어느 때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어느 때는 목회자가 모든 것을 대신 할 것처럼 기대하면서 그를 우러러 보기도 한다.
목회자를 통하여 신비 체험을 하고 전에 받지 못했던 은사라도 받으면 더욱 목회자에게 매달리려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자. 목회자가 하는 일은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일 뿐"이다.
아무리 내노라 하는, 소위 '뜨는' 목회자라 해도 세례 요한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요한은 참 예언이 끊어진 때에 참 말씀의 대언자였다.
그 예언자의 목소리가 말라기 선지자를 정점으로 끊어지게 됐었다.
예언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시대 상황은 성경에 기록 할 가치가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 끊어졌던 목소리가 요단강에서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그 요한의 출현을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빛 되신 예수님이 어두움의 세상에 오실 때 그 빛 되신 예수님을 어두움의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 이었다.
그의 사명은 분명하다. 빛 되신 예수님을 세상 앞에 증거 하는 것이고, 그 빛 되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이었다. 분명 요한은 빛이 아니었다. 빛의 증거자 였다. 빛의 증거자는 자기 빛을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빛을 조금이라도 가리게 해서도 안 된다. 전적으로 빛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
주님은 이러한 요한을 가리켜“여자가 나은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찬 하셨다. 예수님께 대한 증인의 사명은 세례 요한만이 아니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모든 자들의 고백 이어야 한다, 그런데 빛된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우리의 인간적인 빛이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관계 없이 예수님의 빛을 우리 개인이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의 빛을 이용해서 자기가 잘 보이고 자기 위치가 더 잘 빛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악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한다. 어느 00교단에 속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목사나 어느 부흥사나 어느 은 사 체험자의 똘마니가 되게 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요한은 저 참 빛 되시는 예수님만을 믿게 하였다. 현대 교회와 지도자들은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하신 의미를 되새겨야한다.
요한복음에는 빛과 어둠을 잘 대비 되어있다. 세상은 어두움이요 그리스도는 빛이다.
어두움이 상징하는 것은 질병, 죄악, 절망 죽음 등이다.
이 세상은 죄가 들끓고 있다. 속임 강탈, 반역, 폭행, 살상 전쟁 등 어둡고 캄캄하다.
그러나 주님은 참 빛으로 오셔서 세상을 밝게 해 주신다. 예수로 말미암아 정의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참된 평화의 나라가 세워진다. 빛은 모든 만물의 에너지이다. 주님께서 탄생하신 당시의 세상은 오늘 우리의 시대와 같이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정치 적으로 암울한 시대요, 미래가 보이지 않던 시대이었다.
한 마디로 어둡고 우울한 시대였다.
현대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인간 악이 고삐가 풀린 거대한 세력으로 이 세상을 비인간화 지대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사는 연륜이 더해 갈수록 올바로 살기가 어렵고 날이 갈수록 개인의 죄와 집단의 악은 점점 더 농축 되어 감을 실감하게 된다.
화려한 고층 건물이 높이 솟아오를수록 어두운 죄악의 지하실도 점점 더 깊어지고 시원한 고속도로가 뻗어 나갈수록 죄악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
이 세상에 빛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만약 3일간 빛이 없으면 생물이 살 수 없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시다.
인간의 영혼과 인격을 살리는 빛이시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 안에서 죽은 영혼이 거듭나서 새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된다.
또한 치유의 빛이시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게 될 때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 지르기를 "다윗의 지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을 줄 믿느냐?“ 하시니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주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더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분주 하셨으며, 각종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다. 양심은 마비되었으며 영혼은 죽어 있고, 종교는 병들어 있고 사회가 병들고 문화가 병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민족과 개인을 치유 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주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비추이는 생명이시다”라고 하신다.
주님의 빛을 받아 거기서 내 뿜는 빛으로 살아가자.
주님의 생명은 세상의 생명과 다르다.
육신의 생명과도 다르다. 주님의 생명은 빛을 발하는 생명이다.
세상의 생명은 낡아지는 생명이고, 육신의 생명은 썩는 생명이나 영원한 생명은 낡아 지지 않는 생명이시다.
주님의 생명은 영원히 빛을 발하는 생명이시다. 주님의 생명은 신자들 안에서 네온사인 같이 빛을 비추인다. 성경은 (요일 1:4절) 주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영원토록 빛을 비추이는 참 빛을 가진자이다. 이 빛의 분출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영원한 빛의 생명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자발적 으로 내어주신 십자가 사건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절정이 담겨 있음을 깨달아 알자. 나아가 본문 12절의 말씀대로 그 이름을 믿고 그 분을 영접하자.
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의 수여자이시다.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고귀한 생명까지 내어 주셨다. 그 결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 안에 있게 되었다.
이 생명을 얻은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었다. 따라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롬13:12).
"전에는 어두움 이었으나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세례 요한은 이 빛을 증거하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우리도 참 빛에 거하고 빛을 증거 하는 증언자들이 되어보자. 하늘에서 큰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