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관리했던 故 최봉인 장로, 그가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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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후손인 최지연 원장, 기자회견 열고 진실 밝히고 고인 추모해 달라 요청
故 최봉인 장로와 그의 사모. ©샛별한국문화원 제공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한국교회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귀한 이곳의 중심에 있는 양화진 선교관 땅이 이 일대를 60여년 동안 돌봐 왔던 故 최봉인 장로가 사실상 소유주였다는 후손의 공개적인 주장이 나왔다.

故 최봉인 장로의 손자 며느리인 최지연 원장(샛별한국문화원, 시애틀 베다니교회 담임목사 사모)은 지난 2일 종로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사실을 주장하며 ▶최봉인 장로에 대한 역사, 즉 '소유주였고 자손들이 대한민국 기독교 발전을 위해 재산을 헌납했다'는 내용을 바로 써달라 ▶선교관 2층 예배당을 '최봉인 장로 기념 예배당'으로 명칭해달라 ▶양화진을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생이나 교수, 연구팀들에게 공간을 사용케 해달라 ▶최봉인 장로 후손들이 출판 기념회나 추모 음악회를 갖게 해달라 ▶선교관을 현재 세계로 나가 있는 대한민국 선교사들의 친정집으로 사용하고, 미래의 선교사를 키우는 일에 사용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최 원장은 주일과 수요일은 백주년교회가 사용하고, 백주년 교회가 쓰지 않는 시간과 주일 저녁, 월, 화, 목, 금, 토 등의 시간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하게 해달라며 "유니온 교회의 특별한 행사 때 장소 제공도 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故 최봉인 장로는 서교동교회 창립 교인들 중 한 명으로, 초대 장로이다. 그는 16살에 혼자 강릉에서 서울로 와 양화진에 정착했고, 이후 그는 친구의 전도로 故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됐다. 특히 헤론 선교사가 죽으며 그의 집뒤에 묻게 되고, 이후 무덤이 늘어나게 되자 선교사들이 감검관(관리자, 묘지기) 직분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최 원장은 고인이 서양귀신이라고 도망하던 때에 선교사들과 함께 다니기를 좋아했으며,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13남매를 여자들까지 신교육을 시켰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1906, 1907년 묘가 1년에 80개 씩 늘어나며 하인과 소작인들과 함께 묘를 관리하며 묘지회에서 돈을 받았으나, 일제때 선교사들이 다 쫒겨 나간 후에도 긴 세월을 수백개의 묘지를 믿음으로 관리하기도 했다"고 했다.

특별히 최 원장은 고인이 현 양화진 선교관 자리에 자신의 노옥을 헐고 일대 제일 크고 멋진 서양식 기와집을 세웠다고 밝히고, "절대로 할아버지 땅이고 할아버지가 지은 집이라고 단언했지만 증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료를 제시하며 "2012년 드디어 국가 외교문서 등을 통해 할아버지가 지었던 집이 있던 선교관이 할아버지의 땅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원장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도 고려했지만, 마지막까지 대화로 풀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