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요한복음 17장은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이 요한복음 17장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11절 하반부,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늘 본문에 세 번이 나옵니다.
올해 3․1절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3․1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 둘이 아닙니다만 그 가운데 특히 감동적인 것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삼천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끝에 삼일절 노래 제창순서가 있는데 이 점은 삼일절 노래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기독교와 천도교와 불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여러 해 동안 3월 모임을 경동교회에서 각 종교 대표들을 초청해서 가졌습니다. 그러면 천주교의 젊은 신부님들이 대표로 오셔서 ‘천주교는 그 때 참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곤 했습니다. 만세운동 거사 날짜는 처음에는 다른 날이 거론되다가 고종황제 인산 당일 피하고, 주일 피하고, 그래서 3월 1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말재주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만 삼천만이 하나로, 세 종교가 하나 되어, 3, 1, 참 잘 정해진 것 같습니다. 3․1운동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앞에 떳떳한 모습을 보인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21세기 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어기면서 예수님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불효막심한 청개구리도 엄마 개구리의 마지막 유언은 들어서 어머니를 냇가에 묻었는데 한반도는 청개구리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 1장에도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이 말씀이 일곱 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루를 빼놓고는 매일 보기 좋아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의 끝 절인 31절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강조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루를 빼고서는”하였는데 둘째 날입니다. 둘째 날의 창조기사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여러 주석을 찾아보았더니, ‘둘째 날의 창조역사는 그 날 끝나지 않고 셋째 날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를 비롯해서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나뉘다’라는 말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절과 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조를 위해 불가피해서 나뉘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나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어서 이 날의 기사에는 보시기에 좋아하셨다는 말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뉘는 것을 싫어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막대기 둘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겔 37: 17) 하나님은 그런 분인데 한반도, 한민족은 지금도 나뉘어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3․1절과 한국교회의 과제”입니다. 3․1절과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과제는 여럿입니다. 그 가운데 제일 큰 과제는 남과 북이 하나를 이루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통일선교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반도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하는 상태로 만드는 일, 예수님의 최후 기도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의 교독문에는 ‘나라 사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교독문이 교독문 99번에서 103편까지 다섯 편이 들어 있습니다. 이 교독문들은 국가기념주일에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3․1절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며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독 순서에 이 나라 사랑 교독문 가운데 하나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나라 사랑 교독문 가운데 다섯 번째, 103번이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요한복음 17장과 나라 사랑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에 “하나가 되어” “하나가 된 것 같이”라는 말들이 들어 있어서, 찬송가공회에서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요한복음 17장을 나라 사랑 교독문의 하나로 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을 위해 많은 봉사,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발표자인 박명수 교수님이 이 점을 늘 특별히 강조하고 계시는데 개화, 민족운동, 건국을 위해 정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발표자인 민경배 교수님께 한국교회사를 배웠는데 돌이켜 보니까 52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민족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인 줄로 압니다.
이것은 하기 민망한 말입니다만 그 때 한국교회는 ‘민족을 근심하는 교회’였는데 지금은 ‘민족이 근심’하는 교회가 된 느낌이 있습니다. 토씨 하나가 다릅니다만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개화, 민족운동, 건국, 인권운동, 이제 한국교회가 이 민족을 위해 힘쓸 일, 이 민족을 효과적으로 섬기는 일은 이 민족이 하나 되도록 하는 일,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동족들에게 복음을 힘써 전하는 일, 통일선교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이고 있는 상동교회는 한국교회 민족운동의 성지입니다. 우리는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동교회라고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말이 민족운동의 중심이었다는 뜻을 가진 ‘상동파’인데 상동파라는 말은 일반역사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설교에 참고하기 위해 상동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표지에 “민족의 교회 상동교회”라고 하고 전덕기 목사님의 사진이 크게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상동교회는 우리 민족 그리고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 과거형으로 끝나지 말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다음 주일, 17일에 전덕기 목사님 105주기 추도예배가 있다는 소식도 읽었습니다. 이 자리에 이준 열사, 김구 선생, 그 밖의 많은 분들의 체취가 스며 있습니다.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그 가운데 아홉 분이 감리교 교역자인데 그 가운데 네 분이 상동교회 출신입니다. 그분들의 체취도 배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 1950년대 말에 여기 상동교회에 자주 왔습니다. 지금은 여기가 서울연화 중구용산지방인데 그때는 중부연회 서울남지방이었습니다. 서울남지방 용산교회가 제 모교회입니다. MYF 서울남지방 체육대회(주로 배구대회)를 하는데 서울남지방에 운동장이 있는 교회가 몇 없었습니다. 그때는 상동교회 옛 예배당 뒤에 조그만 운동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상동청년학원이 있었는데 교장 이승만, 교사진에 주시경, 최남선, 남궁억이 있었고 구한국 군인 출신으로 뒤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 된 이필주 목사님이 체육교사였습니다. 그 운동장에 이필주 목사님의 체취가 배어 있었을 텐데, ‘그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 분의 체취를 맡기 위해 애쓸 것을…’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스며 있는 기독교 독립운동가들의 체취를 지금, 마음의 코로 맡아 보시기 바랍니다.
삼일운동 100주년, 뜻 깊은 때입니다. 상동교회, 뜻 싶은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뜻 깊은 때에 뜻 깊은 곳에서 뜻 깊은 주제 밑에 모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회복해야 할 책임을 먼저 깨달아야합니다. 3․1운동 때 한마음, 한 목소리로 ‘독립’을 외쳤는데 오늘, ‘통일’을 외쳐야 합니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비장하고 간곡한 기도를 이루어드리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료제공 = 한국복음주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