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이선규 목사 "하나님도 편애하시나?" (롬9: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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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문에 진노의 그릇(22)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준비 한 그릇을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멸하기로 준비하신 진노의 그릇과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로 나누인다.

1, 하나님의 선택권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는 긍휼의 그릇으로 선택하고 누구는 진노의 그릇으로 선택하신다는 말인가? 하나님도 편애 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 문제는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께 따질 문제가 아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의 일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오직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살뿐이요 따질 성질이 못된다.

한 처녀가 출가를 했다고 하자. 그 마음에 나는 이 가문을 위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 되었다고 믿고 살면 행복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 복만을 추구 한다고 하면 결코 그 여인은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고 그 집에서 살수도 없을 것이다 .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그 누구나 어떤 일에 선택을 받는다. 다만 가정 일에나 사회적인 일로 한계가 있을 뿐이다.

바울은 애굽의 바로와 모세를 예로 든다. (17) 바로의 권력은 강 팍해 짐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예를 경험 한 바이다.

인간의 포악한 정치 세력들이 강포를 부리다가 망한 역사를 말이다.

모세는 당시 양치는 목자 였으며 백성 이스라엘은 약한 노예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긍휼의 그릇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에 인간의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긴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었다(롬 9:16). 누가 진노의 그릇이 되고 긍휼의 그릇이 되는가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 택에 속한다. 토기장이가 진흙 덩이로 귀한 그릇을 만들고 천한 그릇을 만들 듯이 그 분의 주권에 속한다.

먼저 긍휼의 그릇 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1) 죽은 자를 살리신 조처 (에배소서 2:3-8)에 “전에는 우리도...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아들 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 믿는 자가 사망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오로지 그분의 긍휼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긍휼)이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긍휼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일을 해 낸 자 들이었다 가령 노아가 받은 은혜를 활용 할 때 온 식구가 구원을 받았으며 (창6:8)롯도 은혜를 받았으나 ((창19:19) 그의 아내는 예외였다.

우리가 더 나은 데가 있어서가 아니다. 능력이 있어서이거나 내가 원해서 이거나 달음박질을 잘 해서도 아니다.

오직 긍휼의 은혜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긍휼

창세기 3: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을 분별치 못하는 조치였다.

범죄를 한 그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축복의 동산에서 추방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추방 할 수 없으셨다.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이다.

양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곧 양이 희생되었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양의 희생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표상이요 가죽옷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의롭다 함을 입 는 표상이다.

이렇게 인간을 긍휼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 고자 하시는 크신 배려였던 것이다.

구약 성경 창27:1-4절을 보면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세의 손과 다르나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 하였더라”라고 했다.

정작 장자의 복은 누가 받았는가?

여기서 상상을 해보자. 야곱이 얼마나 불안 했을까?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지 않을까? 그래서 심장이 뛰었을 것이다.

그것을 누루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 이삭에게 나아가는 야곱, 그 야곱은 손에 싸감은 염소 가죽에 생명을 걸고 나간 것이다.

그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다. 어떻게든 끝을 보아야 겠다는 집념을 보여준다. 사람은 투지가 있어야 한다.

인생 이라고 하는 것은 썰물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밀물만 있는것도 아니다.

어둠이 덮일 때가 있는가 하면 밝은 때가 있기 마련이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춥고 배고픈 날이 있으면 배부르고 따뜻한 날도 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야곱에게도 어렵고 힘들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일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복을 받고야 말았다. 얼마 만큼 복을 받았나?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진 복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것이라 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분별치 못했다고 하자. 하나님이 분별치 못하셨을까? 그래서 야곱의 꾀에 넘어가 축복을 한 것일까?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였다. 무엇을 의미 하는가? 야곱이 긍휼의 그릇이 되었다는 점이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큰 자로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하셨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5)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인생을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설사 유랑의 길을 걷는한 있다 손 치더라도 위험한 고비를 겪는일이 있다손 치더 라도 하나님께서는 돌보시며 구원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다.

창세기 28:15절을 보자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라고 하셨다. 절대 안전을 약속하여 주시는 말씀이며 생명 보장을 다짐하는 재확인 인 것이다.

시편 23편 4절을 보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인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감싸고 있는인생. 하나님이 복 주시 기로 선택해 놓은 인생 하나님이 허물하지 않고 긍휼을 약속받은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를 생각해 보자.

3. 영적 행복자

우리는 하나님의 세움을 입은 자들이다. 왜 그러 하셨을까?

그냥 누리라는 것일까? 복된 일을 하라고 긍휼을 입혀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을 본문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는: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롬 8: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를 미리 아 셨다고 하신다. 무엇을 아셨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피조물 된 인간이 알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9:11)뜻이란 말은 앞에 둔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뜻 가운데 행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 (롬9:16)선택 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선택하는 자의 고유 권한의 결과일 뿐이다. 긍휼은 자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긍휼로서 우리를 택해 주셨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하신일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다. 오직 감사만 있을 뿐이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다고 했다(시111:10). 계명을 믿고 지킬 뿐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고 무조건 적으로 선택해 주셨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일 조건을 가지고 선택 하셨더라면 누가 해당할까?

하나님의 편견을 이해 할것 같다. 새해 아침에 다짐해 본다.

감사함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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