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이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실종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잔인하게 살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가 왜 살해되었을까를 따지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자말 카슈끄지는 1958년 메디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터키인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의 건국자인 압돌 아지즈 알 사우드 왕의 개인 의사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하여 사우디 여인과 결혼했다. 카슈끄지는 터키어로 ‘숟가락 제조업자’라는 뜻이다. 그는 재산이 40억 달러나 되는 유명한 무기 거래상 아드난 카슈끄지의 조카였으며 파리에서 다이아나 왕세자비와 데이트하다가 함께 교통사고로 숨진 도디 알 파예드의 고종사촌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출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초등, 중등 교육을 받았고 1982년에는 미국의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학위를 받았다. 84년까지는 ‘티하마’라는 출판사 지점장을 하다가 87년까지는 ‘사우디가제트’ 지의 특파원으로 일했고 90년까지는 ‘알샤륵알 아우싸트’, ‘알마잘라’, ‘알무슬리문’ 등 일간지와 주간지의 기자로 일했다. 91년부터 그는 ‘알마디나’ 지의 편집장을 99년까지 역임했고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알제리, 쿠웨이트, 수단, 중동 각지에서 해외 특파원 겸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의 특파원을 겸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군에서도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아랍뉴스의 부편집장을 지냈으며 2003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일간지 알와탄의 편집장에 임명되었는데 2개월도 채 안 되어서 사우디 정보국에 의해서 해고되었다. 그 이유는 한 기자가 와하비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븐 타이미아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는데 이의 게재를 허용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서구 사회에 자유진보 언론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해고된 후 그는 영국으로 가서 나중에 주미 사우디 대사로 갔던 ‘투르키 알 파이살’ 왕자의 언론 보좌관으로 재직하다가 2007년 일간지 ‘알와탄’의 편집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0년 ‘이브라임 알 알마이’라는 시인이 쓴 쌀라피 이슬람에 도전하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다시 자진사직 형식으로 퇴사했다. 그러나 진짜 사임 이유는 사우디왕국의 가혹한 이슬람율법에 비판적인 내용을 게재해 당국자들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사우디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다. 사우디 내에서는 뉴스 방송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바레인에 가서 사우디 갑부인 ‘왈릳 빈 탈랄’ 왕자와 미국의 경제뉴스지 ‘불룸버그 TV’의 도움으로 위성방송 ‘알아랍’ 뉴스 방송을 설립했다. 그러나 방송 11시간 만에 바레인 당국에 의해서 폐쇄되었다. 그는 MBC, BBC, Al Jazeera, Dubai TV 등의 정치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2012~16년까지는 ‘알아라비아’ 지에 정기 사설을 게재했다.
2016년 12월 그는 사우디 정부에 의해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사를 쓰거나 TV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 당했다.
2017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9월부터 ‘워싱턴포스트’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사우디 정부가 카타르를 봉쇄하는 것을 반대했고, 영국과 캐나다와의 외교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나 반대 언론을 폐쇄하는 것을 비판했고, BBC 방송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 건물을 세우는 것을 비난했고, 왕세자가 여성 운전 허용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예멘 내전에 말려드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랍 세계의 전문가로서 영국과 미국의 주요 방송에 정기 출연했으며 사우디 정부는 강경 와하비즘에서 돌이켜 남녀의 인권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사우디 국민들은 투옥될 걱정 없이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랍 세계에서 그의 트위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2백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들을 모두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그의 이름 ‘Jamal Khashoggi'를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이런 그가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하여 터키 여대생인 약혼녀와 함께 2018년 9월 28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을 방문했다. 그들은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고는 며칠 후 다시 오라고 하고 즉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그의 출두를 보고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15명의 행동대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터키로 입국하여 10월 2일 그가 나타나자 달려들어 그를 살해하고 즉시 귀국해 버렸다. 약혼녀의 신고를 받은 터키 정부는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사우디 정부와 공동조사팀을 구성했다.
혹자는 밖에서 기다리는 그의 아내와는 구글 시계를 통해 상황이 자동 전송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영사관 측에서는 관내에는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를 살해한 15명 중 9명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경호부대원들이거나 관련자들이며 그들 중에는 칼과 톱을 준비한 시신 부검 전문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외신은 보도했다.
아무튼 터키 정부는 그가 살해되었다는 확실한 음성녹음 파일을 증거로 확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그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사소한 의견충돌로 주먹다짐이 발생하여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을 인정했으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우디 정부에게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으며 이미 처벌할 관련자들을 발표한 상태다.
이정도 되면 그들은 왜 그를 죽였을까를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 “아랍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다”는 것은 필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죽기 전 ‘워싱턴포스트’에 마지막으로 송고한 원고의 제목이었다.
이슬람의 표현의 자유나 신성 모독죄에 관한 잔인한 처벌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동행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과 살인으로 자신들의 뜻대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신성모독 죄에 해당되는 표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알라(Allah)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는 것(speak ill of)
2. 무함마드의 결점을 말하는 것(find fault)
3. 무함마드나 그의 가족을 대수롭지 않게(Slighting) 말하는 것
4. 자신이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것
5.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거나 영화로 만드는 것
6. 장난감 곰에 무함마드의 이름을 붙이는 것
7. 금지된 행동을 하면서 알라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
8. 이슬람의 결점을 말하는 것
9. 이슬람은 아랍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할 필요 없다고 하는 것, 꾸란은 거짓말로 가득 찼다고 말하는 것
10. 환생을 믿거나 내세를 부인하는 것
11. 무신론이나 세속적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출판하거나 퍼뜨리는 것
12. 비무슬림이 무슬림들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
13. 무슬림이 개종하도록 기도하는 것
14. 이슬람 전통을 장난으로 여기는 것
15. 꾸란을 허락 없이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
16. 요가를 하는 것
17. 이슬람 학자를 모욕하는 것
18. 유대인이나 배화교도의 복장을 착용하는 것
19. 금지된 행동을 금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
20. 비무슬림들의 종교축제에 참여하는 것
21. 비무슬림이 꾸란을 만지는 것
22. 모스크의 벽에 침을 뱉는 것
23. 꾸란을 태우는 것
24. 꾸란을 찢거나 낙서를 하는 것
25. 손을 씻지 않고 꾸란을 만지는 것
26. 허리보다 낮은 위치에 꾸란을 두는 것
27. 꾸란을 베게로 이용하거나 발로 차거나 침을 바르는 것
28. 어떤 사물이나 인간을 알라(Allah)와 동급으로 여기는 것
29. 무슬림이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
30. 무슬림을 타종교로 개종시키는 것
이런 목록들은 실제로 이슬람권에서 집행되어 율법으로 처벌받은 사건들을 참조해서 만든 것이다.
파키스탄 형법에는 신성모독법이 있어서 실제로 무함마드를 모독하면 사형까지, 꾸란을 모독하면 무기징역까지 언도할 수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파키스탄의 아시아비비의 사건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본명은 아시아 노린(Asia Noreen)이었다. 그녀는 천주교인이었고 쉐이크푸라 마을의 유일한 천주교 가정이었기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많은 압력을 받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불결한 사람(나지스)으로 여겼다.
2009년 6월 농장에서 추수를 돕는 일을 할 때 그녀는 가까운 우물에서만 물을 떠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 규정을 잘 지켜오다가 한 번은 우물 가까운 곳에서 낡은 금속 컵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물을 먹는 것을 이웃 여인이 보았는데 그녀는 노린의 가족과 재산상 손해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그녀는 노린에게 화를 내면서 불결한 기독교인이 왜 무슬림들이 먹는 컵으로 먹었느냐고 따졌다. 자신의 종교를 경멸하는 말을 들은 노린은 속이 상해서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희생하셨는데 무함마드는 인류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몇 여인이 동네 이맘에게 “노린이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보고했다. 동네 사람들은 몰려와서 노린과 그 가족들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구타했다. 노린은 신성모독죄로 체포되어 1년 후 2010년 11월 첫 재판을 받았는데 쉐이크푸라 법원의 ‘모함메드 나비드 이끄발’ 판사는 그녀에게 ‘사형(교수형)’과 미화 1,100 달러를 부과하도록 판결했다.
노린은 자신이 재판 받던 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얼굴을 파묻고 혼자 울었다. 군중들은 증오에 가득차서 나처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죽이라고 소리치는데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으나 그들의 소리는 들린다. 군중들은 판사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그 여자를 죽여라. 그 여자를 죽여라,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친다. 법원 건물은 흥분한 군중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거룩한 선지자의 원수를 갚자,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친다. 나는 낡은 쓰레기 자루처럼 차에 던져지고... 그들 눈에 나는 인간도 아니다.
2010년 노린의 판결 후 1개월 뒤 12월에 한 무슬림 성직자는 그녀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50만 파키스탄 루피(한화 약 1,150만원)를 주겠다고 선언했으며, 율법이나 상금 때문이 아니라도 노린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약 천만 명에 이른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한다. ‘이탄왈리’ 모스크의 이맘 ‘가리 모함메드 쌀림’씨는 “그녀에게 사형언도를 내렸다는 것과 군중들은 그녀를 석방시키면 우리들의 손으로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외쳤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 건을 계기로 신성모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펀잡’ 주지사 ‘살만 타시르’나 정부의 유일한 비무슬림 장관이었던 ‘샤버즈 바티’는 모두 암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9년 째 옥에 갇혀 있었고 상고심은 여러 차례 이유 없이 연기되었으나 최근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석방되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석방되더라도 안전문제가 우려되어 대법원에서는 재심을 결정했다. 이 가족은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난민으로 받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이슬람권의 표현의 자유는 신성모독법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사람들은 속고 있거나 속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은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무슬림들이 눈을 떠서 진리를 발견하고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 글은 한국이란인교회 홈페이지(4him.or.kr)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