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누구인가: 사도 바울의 창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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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칼럼'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사도 바울은 과연 누구였을까? 사도 바울(Paul)만큼 기독교 역사에서 극적이고 독특하고 중요한 인물이 있을까?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외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출신과 가문은? 그리고 회심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후 돌연 신앙의 변곡점을 맞았던 것일까?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번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행 9:11; 21:39; 22:3)에서 로마 시민이었던 부모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경 속에서 그의 가족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제롬(jerome)은 한 구전을 통해 그의 부모가 원래 기스갈라(Gischala)라고 불린 한 성읍 출신으로 주전 1세기 로마가 팔레스틴을 유린할 때 다소로 도피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Comm. on Philemon, 23). 2세기 문헌은 바울의 외모에 대해 “체구가 작고 양 눈썹이 붙었으며 코가 좀 크고 머리는 벗겨졌으며 다리가 구부정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때때로 바울은 천사의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울이 선한 표정을 가진 평범한 외모의 인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보아 평범한 유대인 가정보다는 약간의 기득권을 누린 가정 출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초대 교회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을 돌로 치는 자리에 함께 있던 예수 불신자로 놀랍게도 부활한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다. 그의 회심이 세상 누구와도 달리 정말 극적이고 독특한 이유다. 이후 그는 예수의 12 제자 출신도 초대 집사 출신도 아닌 사람으로 부활하신 예수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되었다. 그런 그가 없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지금의 틀을 가진 종교가 될 수 있었을까?

사도 바울은 성경 계시의 저자 40 여명 가운데 가장 많은 성경을 저술한 저자다. 성경 66권 중 최소한 13권이 바울이 쓴 책이다. 예수 불신자요 기독교 핍박자에서 극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대면하면서 교회의 일원에 동참하게 된 인물로 공교회를 굳건히 견고하게 만든 공로자다. 그가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되는 데 있어 최고 공로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대 교부들이 바울 저작들을 연구하고 다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도 바울 로마서의 이신칭의(以信稱義)에서 비롯된다.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바울 저작들을 언급하고 연구하였다. 헤겔, 불트만, 헤르만 리델포스, F. F. 부르스, 칼 바르트, 그레샴 메이천, 윌리엄 바클레이, 알버트 슈바이처와 같은 다양한 배경의 신학자들이 사도 바울 연구에 매달린 것도 기독교 안에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증거하는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비록 바울의 이신칭의만이 정경성의 표준(principium canonicitatis)은 아니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바울 사상의 요점이 기독교의 중심 교리 안에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가지는 상징성이 구속 신학의 칭의 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바울 연구에 있어 미흡한 부분들이 생겨났다. 바로 창조, 창조주, 창조 세상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심은 주목 대상에서 밀려난 감이 있다. 필자의 관심은 이 부분들을 다루어보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창조를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복음에 어떻게 이 창조 신앙을 연결하고 있는가?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의 창조 신학을 어떻게 구속 신학으로 연결하여 기독교 신학을 완성해 간 것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신약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믿었는지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두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첫째 바울은 조직신학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바울은 신학을 체계화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사람의 지성이나 지력에 충분한 만족을 줄 어떤 체계나 만드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경험에 의거한 믿음을 전하여 그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 믿음을 말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그 예수에 대해 말할 때 자기의 부활하신 주님에 대하여 자신이 경험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했다.

둘째, 바울 신앙 안에는 정적(靜的)인 것이 전혀 없었다. 바울은 늘 변동하고 변화하는 인간 경험의 조류에 항상 직면하면서 살았다. 때론 실수도 하고 사색가들과 이단자들을 응대하고 교회가 제도상 정통교회로 정착하기 이전 시기를 살면서 변화무쌍한 상황과 문제에 대면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보고에서부터 새로운 진리, 새로운 보물을 꺼내오는 일을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위대함과 새로운 풍요로움을 늘 발견하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려는 의도가 바울에게는 있었다. 텍스트와 컨텍스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구별과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정확했다는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바울의 기독론, 칭의론, 구원론, 죄론, 종말론, 교회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문제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결코 정적이지 않았던 사도 바울이 변화하는 과학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를 보고는 무어라 말하고 어떻게 복음을 설명하려 했을까하는 점이다. 사도 바울 연구에 있어 주류에서 밀려난 바로 그 부분이다. 조금은 관심을 덜 받는 바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의 창조와 창조주 그리고 작금의 창조 세상에 대한 것이다. 즉 오늘의 인간, 율법, 의식주, 환경(땅)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 있는 세상에 대해 사도 바울의 계시는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울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나 팔레스틴 출신은 아니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 성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civitas)을 갖고 있었다(행 21: 39, 9:11). 그가 유대적 유산에 글로벌화 된 의식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바리새파 유대인임에도 소아시아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바울의 이 같은 역동적 상황은 그가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의 족속 베나민 지파 출신으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던,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다(빌 3:5). 그가 유대인 청중이 아닌 헬라 지역 빌립보 교회에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바울이 이 말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한 배경은 교회를 박해하기 까지 율법에 비추어 보아도 흠이 없고 율법을 철저히 지킨 바리새파 출신으로 반 기독 성향이었던 자신이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가치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빌 3:6-9). 그의 본명이 사울로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최초의 이스라엘 왕에 오른 사울과 같았다는 것도 그가 충직한 유대 배경의 사람임을 증거한다..

히브리인들의 창조 신앙

기독교는 창조 신앙의 종교다. 창조는 히브리 민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신 계시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 했다. 히브리인의 창조 신앙을 이어받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창조 신앙을 역설한 것은 당연하다.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조 자체를 변증하려 하지 않았다. 집 마다 지으신 이가 있는 것처럼 창조는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신 계시다. 그 계시는 성경 계시에 멈추지 않는다. 창조 세상(자연) 속에서도 그 창조의 계시는 여전히 확인된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은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어 있다고 했다(롬 1:20).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몰랐다고 변명하고 핑계할 수 없다. 칼빈도 자연과 우주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보고 창조 세상(자연)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책”, “휘황찬란한 (영광의) 극장, “무언(無言)의 교사”, “거울”, ”궁전“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솜씨를 보고자 하였다. 이 창조 속 계시는 과학 기술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조금도 변경되지 않았다. 집마다 지으신 이가 있는 것처럼 이 당연한 창조와 창조주와 그 섭리에 대해 피조물인 인간은 이 계시를 부정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

사도 바울이 말하듯 인간이 본성은 핑계할 수 없는 증거가 있음에도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광스럽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생각은 쓸모없고 마음은 어리석어 어두워졌다고 했다(롬 1:21).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은 스스로 지혜로운 체 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으며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존재라고 했다(롬 1:21-23). 이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은 첨단과학기술 시대를 자처하는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하다. 우리 사회 속에서도 고급 승용차 앞에 놓인 돼지 머리나 정부 행사에 고사(告祀)의 떡, 고기가 등장하는 것이 여전히 낯설지 않다.

서신서를 쓰는 사도 바울 (1620)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내어 버려두셨다”고 3번이나 강조하고 있다(롬 1: 24, 26, 28). 사람들이 하나님과 참 된 진리를 찾으려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패한 마음으로 합당치 못한 악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인간을 내어 버려두자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시작했다(롬 1:25). 바울은 오늘날까지 남녀 결혼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여 순리를 역리로 쓰는 동성애도 하나님의 버려두심의 결과라고 했다.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당대 로마 시민들에게도 이 이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이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것에 대해 바울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면서 그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한 보응(댓가)가 있다고 했다. 그 보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바울은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보응, 법적 규제, 동성 간 불편한 동거, 잉태하지 못함, 동성 간 연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화적, 심리적, 육체적 불편함과 불균형 그리고 예기치 못한 질병의 초래 등 보응은 많다. 지금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이나 우매한 대중들이 있다. 군 생활을 체험한 남자들에게 있어 군 생활 중 당하는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과 경험은 바로 동성애 성향의 군대 상관을 만나는 것이다. 전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들이 일방적으로 저지르는 폭력적 행위는 불쾌함뿐이요 어떤 병사에게는 자살의 충동을 일으킬 만큼 혐오스러운 체험이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하고 감싸라고? 군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예수께서 마귀와 귀신과 독사의 새끼들을 감싸라고 하셨던가? 도착(倒錯)을 정상이라 말하면 안 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람은 사랑해야 하나 죄와 죄인은 보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이다.

이밖에도 온갖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으로 가득찬 자들과 수군거리며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며 자랑하고 악한 일을 꾸며 대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미련하며 언약을 배신하거나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이 모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사람들이 행하는 결과물들이다(롬 1:29-31). 하나님의 법은 인간이 이런 식으로 살다가 죽는 다는 사실을 끝없이 알려주고 경고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들만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두둔까지 한다(롬 1:32). 인간을 물질에 불과한 유물론적 일원론적 존재로 믿는 공산주의자들이 거짓말과 악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의 존재인가. 그렇다! 인간의 지식은 완전하지 않고 사람을 교만하게 할 뿐이다.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일 때 그 정당성을 설파한 것은 일부 지식인들, 과학자들이었다. 최근 방사성 물질 검출로 대량 회수 소동이 일어난 건강 침대 소동도 음이온이 건강에 이롭다는 일부 방송 의사들의 음이온 예찬에서부터 착안된 광고 결과물이었다. 임산부의 입덧을 드디어 잡았다고 과학의 성과를 찬양하던 진통제 탈리도마이드는 수많은 사지(四肢) 기형의 태아로 인해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하늘에나 땅에나 거짓 신들이 많고 많은 신(神)과 주(主)가 있고 그것을 따르는 어리석은 피조물들이 허다하다.

창조 신앙을 복음으로 연결하는 바울

파이네(P. Feine)가 바울의 복음이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zentrisch)으로 바울이 자신만의 고유한 “하나님 표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본 것은 바울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바라보는 신학자들의 일반적 정서를 바르게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본 논고는 바로 그 바울의 모호한 “하나님 표상”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를 추적한다. 참 된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다고 거짓 것들을 비판만 하고 있을 바울이 아니었다. 바울은 우리가 한 하나님 곧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가 계실 뿐 아니라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그 분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다고 했다(고전 8:6). 바울의 “하나님 표상”(신론)이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비록 바울이 조직신학자는 아니었으나 히브리적 창조, 창조주, 창조 신앙에 그치지 않고 바울은 당연하게 기독론적 접근으로 나아갔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창조와 창조주 신앙에 그치지 않고 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이쓰만(A. Deismann)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누가는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아레오바고(Areopagus) 연설에서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놓은 제단을 소개하면서 이곳에 있던 헬리니즘 신 이해를 통해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 전하려 하였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는 덕담 비슷한 언급을 하면서 복음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도시는 우상이 가득한 도시였다(행 17:16). 바울은 아테네의 이런 풍경을 보고 격분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바울은 마음을 가다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회당의 유대인 및 경건한 이방인들과 토론하고 장터로 나가 날마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과 토론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하였다. “외국 신들을 선전하는 것 같다”는 이들에게 바울은 당신들은 모든 면에서 종교성이 많은 분들이라고 했다(행 17: 23). 바울 자신이 이리저리 다니며 예배처를 살펴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다. 바울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모르고 예배해 온 그 신을 자기가 알려주겠다 했다. 그 신은 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므로 사람이 손으로 만든 신전에서 사시는 분이 아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이 드리는 것을 받는 분도 아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도 신에게 무언가 바치기를 좋아하는 종교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한 사람에게서 모든 민족을 만들고 온 땅 위에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각 나라의 연대를 미리 정하시고 그들의 국경을 정하셨으며 이제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음을 선물하였다고 전하였다(행 17:23-31).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고 또 더 듣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행 17:32). 이 부분에 대해 주석들은 바울의 선교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는 측과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과연 바울의 선교 전략은 실패한 것이었을까? 지금도 바울의 모범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권, 북한, 이슬람 등 창의적 선교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열매는 가시적으로 크게 보이지 않으니 그들의 전략은 실패한 것일까? 바울이 전한 복음에 아테네의 몇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하고 바울을 따르고 믿었다. 그 중에는 놀랍게도 아레오바고의 법관 디오누시오(Dionysius)와 다마리(Damaris)라는 여자와 그 밖에 몇 사람이 있었다. 결코 복음은 좌절되지 않았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접촉할 경우에는 그들에게 일부러 창조 신앙을 역설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다르다. 선교 전략상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 선포를 통해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있었다. 신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이 전략은 동일하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초 선결 지식으로서의 창조 신앙 선포는 선교 전략 상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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