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人과의 만남] 강정훈 전 조달청장, "매켄지 목사를 아십니까?"

교육·학술·종교
오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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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선교사들 자료 모아 기증·특별전 열어
▲ 강정훈 전 청장과 그가 기증한 문고를 중심으로 특별전이 진행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윤현규 기자

어려운 시절, 조선 땅의 선교사로 왔다가 갖은 고생 끝에 온 정신착란 등 병마로 한국에 온지 2년을 못 채운 채 1895년 어느날 권총으로 소중한 삶을 스스로 마감한 비운의 선교사, 한국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1884) 초대목사인 매켄지(W. J. Mckenzie).

'캐나다의 동쪽 섬사람' 매켄지 목사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보다는 늦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교회의 '목사'로는 처음이었다 .

그는 그 시골에서 오두막집을 직접 지어 조선음식을 먹었다. 또한 자비(自費)를 들여 생활하는 독립선교사로 낮에는 농민들과 함께 일을 했다.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농민들은 소래교회를 점령했으나 나중에는 그에게 감복해 교회를 지켜주었다.

그러던 '푸른 눈'의 선교사가 일사병과 말라리아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매켄지 목사는 조선에서 선교하는 동안 캐나다에 있던 그의 약혼녀 매컬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매컬리는 그 편지를 엮어 '한 알의 밀'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의 책을 외국의 헌책방에서 찾아 모아온 강정훈 전 조달청장(미암교회 장로·신성교회 초빙교수)은 '한 알의 밀'은 "아름답고 가슴 아픈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강 전 청장은 이 책을 수집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지난해 기증했다. 

그는 "이 책에 둘의 편지가 나오는데 (매켄지 목사가 죽기) 20일전까지도 편지를 보냈다"며 "(그의 편지를 읽으며)선교에 불타있는 목사님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메켄지 목사는 편지에서 '춥다, 열이 난다, 밤에는 잠을 못 잔다'고도 남겼다. 

강정훈 전 조달청장은 '자살'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한국 기독교 역사에 파묻힌 매켄지 목사에 대한 평가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매켄지의 가족을 찾으려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매켄지 목사나 그의 약혼녀 매컬리나 두 사람 다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자녀가 없으니 가족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매켄지와의 편지가 끊긴 매컬리 또한 신학 공부를 하고 1904년 한국에 들어와 '한 알의 밀'을 쓰고 원산에 가서 40년을 독신 선교사로 지냈기 때문이다.

■ 강정훈 전 조달청장은…
강 전 청장은 조달청 부산지청장(1983~1985)과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과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를 역임했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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