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기독일보 강태광 편집위원] 열정을 의미하는 ‘passion’은 라틴어 ‘passio(고통)’에서 왔다. 열정은 그냥 단순히 힘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감수하는 뜨거움이다. 열정은 난관을 극복케 한다. 철인 랄프왈도 에머슨은 “열정 없이는 위대한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열정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많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화사한 날에 맞춤양복 전문점 골드핑거의 사장 김병호 장로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 짧은 시간에도 기자는 김병호 장로에게서 청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그 열정으로 김 장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이민생활의 고비를 넘기고 어엿한 기독(基督) 실업인(實業人)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산업화 현장에서 기능인으로
산업화 물결이 한창이던 1970년대 청년 김병호는 친척의 권유로 양복업계에 투신하였다. 1950년대에 시작한 국내 원단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양복 기술의 발달로 소위 양복점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신사복 정장 제작 기술을 배우려 했다. 배우는 사람들은 많고 일할 곳이 적은 상황에서 젊은이가 꿈을 키우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열정의 사람 김병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착실히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 건실한 기능인으로 양복업계를 지켰다. 김 장로는 기능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기능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한국 맞춤양복협회 장인상도 수상하였다. 타고난 근면함과 손재주를 세상이 알아준 것이다.
열정으로 열어가는 성공시대
맞춤양복의 전성시대는 80년대 초 기성복의 등장으로 쇠퇴한다. 구로공단과 청계천을 일대로 발달한 봉제산업 활성화와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국내 진출로 국내 맞춤양복 산업은 쇠락한다. 많은 양복점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김병호 장로가 운영했던 신당동 대림라사는 뒷골목에 위치한 열악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불황을 넉넉히 이길 뿐 아니라 한 달에 100벌 이상을 주문 생산하는 기염을 토해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열정을 다하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 불황에서 허덕이는 김병호 장로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다. 당시 KBS 기동취재반이 대림라사에서 취재를 했고, 거울에 비친 대림라사 간판이 방송을 탔다. 거울에 비친 양복점 이름만 방송되었는데 대림라사는 하루아침에 전국적으로 유명 양복점이 되어 전국으로부터 고객이 몰려온다.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데 또 위기가 왔다. 양복점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J모직이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맞춤양복 업계는 다시 휘청거린다. 대기업의 공격적 마케팅 여파는 엄청났다. 맞춤양복점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이때 김병호 장로의 열정이 다시 한번 발동한다.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대기업 원단 불매운동을 주도한다. 약수동에서 뚝섬까지 걸어서 150개의 양복점을 방문하고 불매운동 동참 서명을 받았다. 김 장로의 열정에 감동한 양복점들이 불매운동에 동참하자 난리가 났다. J모직 물류창고에 원단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마침내 J모직이 항복했다. 보전금을 주며 타협을 시도했다. 이때 J모직이 준 보전금으로 ‘한국 맞춤양복협회 회관’이 건립됐다. 김병호 장로의 열정을 설명하는 일화다.
바닥에서 시작한 이민 생활에서 꽃은 피어나고
이후에 불어닥친 IMF의 바람은 김병호 장로를 덮쳤다. 한국에서는 재기조차도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모가 주신 1천만 원으로 항공권을 사고 나머지는 정착금으로 사용했다. 그 1천만 원은 아들의 재기를 위해 노모가 이웃에 빌린 돈이었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이민이었다. 2000년 7월 29일. 잊을 수 없는 그날부터 시작된 미국 생활은 땀과 눈물에 젖은 촉촉한 날들이었다.
준비없이 시작한 이민생활은 쉽지 않았다. 기능인으로 취직해서 옷을 만들었다. 직장생활도 후회없이 성실하게 했다. 나름 의리를 지키려 했다. 자신을 직원으로 받아주고 영주권을 내준 옛 사장님께는 아직도 1년에 2번씩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것이 김병호 장로의 사람됨됨이다.
2011년에 개업한 골드핑거는 LA 다운타운에 있다. 제법 자리를 잡았다. 기성복이 판치는 상황에서 맞춤 양복점을 찾아 주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김병호 장로는 고객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고객 만족을 도모한다. 골드핑거는 미국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한인 고객도 있지만 주 고객은 미국인들이다. 김 장로의 기술과 인격을 믿고 찾아 주는 고객들이 있어 골드핑거는 든든하다.
신앙생활의 시작과 신앙훈련
우연히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간곡하게 신앙생활을 부탁하셨다. 그래서 김 장로는 대림라사 근처에 있던 문화교회를 출석했다. 교회의 사랑과 관심이 여러 가지 면에서 큰 힘이 되었다. 그 중에도 문화교회 박병섭 장로의 심방과 기도는 잊을 수 없다. 박병섭 장로는 오가는 길에 꼭 양복점에 들러 기도하며 격려해 주었다. 박 장로의 사랑의 심방과 격려는 새신자로 교회에 정착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들음으로 김병호 장로는 주일을 성수하는 신앙인으로 세워진다.
어느덧 김병호 장로에게 신앙생활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매주 듣는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김 장로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도미하여 새 삶을 사는 동안에도 김병호장로는 철저하게 주일을 성수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주일 성수하다가 체험한 주님 손길
어느날 김병호 장로의 몸이 여상치 않았다. 병원을 찾았는데 병명을 밝히지 못했다. 몸에는 이상 증세가 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하니 맘이 답답했다. 답답하고 급한 마음에 무작정 한국을 방문한다. 이렇게 방문한 한국에서 첫 주일을 맞는다. 머물던 큰 딸 집에서 큰 딸과 함께 교회를 찾는다.
찾아간 교회가 강남중앙침례교회(피영민 목사)였다. 그런데 전문의들의 자원봉사로 심장·폐 질환자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는 광고를 듣는다. 김병호 장로는 곧장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통해 단번에 검진을 권고 받는다. 다음날 검진을 통해서 심근 경색이 75% 이상 진행되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고 수술하여 완쾌된다. 김 장로는 이 과정에서 주님의 손길을 경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놀랍다. 우연히 찾은 교회, 우연히 찾은 예배, 그리고 우연히 받은 상담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것이다. 김 장로는 하나님 은혜에 감격한다.
기도제목과 소원
인터뷰를 마치며 기도제목과 소원을 묻는 기자에게 김병호 장로는 기다린 듯이 대답했다. 우선, 철저한 주일 성수라고 대답했다. 그는 골프를 티칭프로에게 어렵게 배웠지만 필드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하면 주일에도 골프장에 나가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주일을 지키는 그를 축복하신 하나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것이다. 둘째, 그는 늘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인생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생명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은혜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기도제목이다. 셋째로 그는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기도제목이다. 그는 늘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한다. 그가 한샘교회(이순환 목사)를 섬기게 된 것도 이런 마음에서다. 목회자와 교회를 돕고 섬기는 것이 기쁨이자 보람이다. 김 장로는 섬기려는 마음을 갖다 보니 원치 않는 감투도 쓴 적도 있다.
김 장로는 인터뷰 내내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할 말이 많았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스토리를 주신다. 김 장로에게는 인생 굽이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스토리들이 있다. 하나님의 손길로 다듬어지는 김 장로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