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신대 사경회에서 한 강사의 친북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비판한 이 학교 신대원 이승찬 전도사의 글이 SNS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글 전문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
‘성서한국’을 향한 고발장: 성서한국은 강도의 이웃인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청어람 아카데미 양희송 대표의 <“성서한국은 종북좌파인가?” 복음주의 운동을 향한 색깔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나의 응답.
“성서한국이 교회 내에서 주체사상을 신봉하면서 교회를 박살내고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이 목적인 종북좌파이다.”라는 논란에 대한 2016년 4월 15일 수원지방법원 제3형사부(부장판사 이종우) 2심 판결, “피해자(성서한국)의 지위와 적극적 활동 내용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합리적 근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3월 23일 장신대 학부 사경회 주강사 김영식 목사(평통연대 운영위원)의 적화(赤化)통일 옹호 발언, 사경회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한 Y군, <“만약에 북한이 대한민국을 점령하려 한다면 용서해야 하고 점령 당해줘야 하나요?”> 김영식,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에 김정은이 폭력적으로 이렇게 지배하고 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비폭력적으로 가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냥 당하는 거죠. 뭐. 당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죽으면 안돼요?”>
들어가며
필자는 4월 1일 “장신대 동아리 ‘암하아레츠’의 활동을 우려합니다”라는 제하의 짧은 글을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게시하였다. 필자는 수년 간 한국 교회 안의 동성애적 운동을 지켜보았고 또한 탈북민 사역(필자는 탈북민 청소년들을 돌보며 가르치는 일을 해오고 있다)을 해나가며 얻은 지식들과 자료들을 토대로 짧은 글을 쓰게 되었다. 양희송은 4월 9일 자신의 칼럼에서 필자의 글을 비판하였다. 그는 필자의 논리를 아쉬워했다. 이제 필자는 양희송과 세간의 그러한 아쉬움에 응답하고자 한다.
아니, 나는 응답을 넘어 고발한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기보다는 강도의 이웃이 되기로 선택한 성서한국을 나는 고발한다(눅10:36). 강도를 만난 북한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커녕(사1:17) 북한 주민을 폭압하는 김일성 우상숭배 정권의 편에 서서(시1:1) 강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서한국을 고발한다. 선악을 분별하기를 포기하며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악을 선으로 둔갑시키는 성서한국을 고발한다(사5:20). 악을 미워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시77:10)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의 정권(계13:5-10)과 공존(共存)·화해(和解)하고자 하는 비겁한 종교인들(고후6:14-16)을 고발한다.
1. 양희송, “성서한국이 종북 좌파란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면, 장신대와 통합교단은 간첩 소리를 피해갈 길은 없을 것이다.”
양희송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서한국이 종북좌파’란 식의 비난은 사회적으로 극우 근본주의자들이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사건처럼 장로교 통합 측 신학대학교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WCC 가입교단이며, 2013 WCC 부산총회에 교수와 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했던 장로교 통합 측의 신학교에서 이제야 전도와 사회참여의 통합을 모색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색깔론에 기반을 두어 비난을 가한다? (…) 성서한국이 종북 좌파란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면, 장신대와 통합교단은 간첩 소리를 피해갈 길은 없을 것이다.”
양희송은 옳게 지적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양희송에게 올해 3월 21-23일에 열린 장신대 학부 사경회에서 나온 발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부 사경회 주강사로 나선 김영식 목사(낮은예수마을교회 담임, 평통연대[舊 평통기연]운영위원)의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다. 김 목사는 21일 저녁 예배설교에서 논란의 발언을 하였다. 일단 들어보자.
김영식, "북한 김정은이 84년 생입니다 생일이 1월 8일이기 때문에 빠른 83이죠. 올해 35살입니다. 저희 교회 재정을 맡고 있는 집사님과 동갑입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동역자들이 거의 다 83년 생들이에요. 89년 생 아내 이설주와 결혼해서 2013년 생 딸 주혜, 2월 19일이 생일이지요. 주애라는 딸 하나를 가지고 있죠. 이 재정 맡은 집사님도 딸을 하나 갖고 있는데 주애와 동갑입니다. 저희 교회 재정 맡은 집사님은 한국은행에서 국제 자본 유출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 늘 모니터 하는 사람이죠.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입니다. 한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기에 결코 어리지 않는 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김정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비방하고 무조건 조롱할 수 있습니까? 저희 교회 식구들 그 누구도 재정 맡은 이 집사님에 대해서 예의 없게 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유엔이 인정한 국가의 지도자를 그렇게 예의없이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남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상한 겁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 상식적인 국민, 정상적인 국가의 사람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단의 폐해입니다. 정상적으로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 거예요."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3728&Newsnumb=2018033728)
김 목사는 북한 김정은과 자기 교회 집사님의 나이가 같다는 것을 거론하며 이 둘을 비교한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는가? 왕위를 ‘세습’한 김정은과 자신의 ‘노력’으로 한국은행에 입사한 집사를 비교한다? 자유의 나라 스위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청정 빙하수를 실컷 들이키더니 고국 북한에 돌아와 왕위를 세습하고서는 2500만 북한인민의 피고름을 먹고 자란 3대 세습 사교 전체주의 집단의 독재자 김정은과 평범한 교회의 집사를 비교한다? 자신의 고모부를 고사총탄으로 난사해 죽이고 회의 중 졸고 있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총살해 버리고 지금도 수많은 지하 기독교인을 때려죽이며, 천안함 46 용사의 살해를 주도한 김정은과 교회의 집사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김 목사의 실언은 절정을 찍었다. 김영식,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김정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비방하고 무조건 조롱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더 알아야 김정은을 비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위해 구성된 ‘기쁨조’ 여성의 음란한 란제리를 구입하기 위해 38억을 지출했다는 사실 외에 우리는 무엇을 더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이어서 “하물며 유엔이 인정한 국가의 지도자를 그렇게 예의 없이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남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상한 겁니다.”라고 했다. UN 가입국에 북한이 가입했다고 해서 그가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북한은 종교 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화지수(Democracy Index), 경제자유화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 언론·출판·표현의 자유(Freedom of the Press)에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2018년도 open doors 선교회 발표). 작년 2017년, UN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은 알고는 있는가? 세계 최악의 인권 수준의 국가 지도자가 다른 국가의 지도자와 견줄 만 한 것인가? 무엇보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일가를 신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 10대 종교 주체사상의 교주이다. 김일성 집단은 하나님을 훼방하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태양이라며 하나님을 참칭하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적 그리스도 세력이 아닌가?
김영식 목사의 문제적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부 사경회 마지막 날 질의응답 시간에 탈북민 출신 Y군(신학과 3학년)이 2차례 연이어 질문하였다(강의 녹음을 녹취하였다).
<김영식 목사, “사도바울이 할례자와 비할례자에 대해 말할 때 비할례자 한 사람을 구원하려면 나는 비할례자가 되겠다. 할례자를 구하려면 할례자가 되겠다.” “이것을 우리 한반도 언어로 바꾸면 빨갱이 한 사람을 구하려면, 한 영혼을 구하려면 빨갱이가 되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합니다.”>
김영식 목사는 할례자를 구하기 위해서 할례자가 되겠다는 바울의 말처럼 빨갱이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빨갱이가 되겠다고 하였다. 김영식 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전 9장 19-22절의 맥락을 중심으로 고전 7장 19절의 어휘(할례, 비할례)를 인용한다. 그런데 김영식 목사는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 우선 해당 구절이 있는 고전 7장에서 할례와 관련한 핵심 구절은 19절이다.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할례는 외면적·비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내면적·본질적인 것이다.
반면에 빨갱이,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할례처럼 외면적·비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본질적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불의와 가난이 해소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겠다는 유토피아 세계관을 지향한다. 죄인이 그런 나라를 이 땅에 세우겠다는 것은 오만이며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두겠다는 반역의 행위이다. 또한 고전 9장에서 핵심은 19절의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구원하고자)함”이다. 빨갱이는 유물론자이며 동시에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했던 바울은 유신론자이다. 유물론자인 빨갱이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김영식 목사는 자신의 궤변을 그럴싸하게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의 진의를 무시하고 오용하였다.
탈북민 Y군과 김영식 목사의 대화를 계속 들어보자.
<김영식, “기독교인들은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진짜.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에 김정은이 폭력적으로 이렇게 지배하고 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비폭력적으로 가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냥 당하는 거죠. 뭐. 당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죽으면 안돼요? (…) 그리스도의 평화를 그렇게 실제로 살아가려면 그런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끝까지 예수님처럼 그냥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냥 그렇게 죽으면 안될까.”>
“그냥 당하는 거죠.” 북한이 남침하더라도 기독인들은 싸우지 말고 그냥 죽임당하자라는 것이다. 적화통일 되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김일성 집단에 의해 씨가 말라 버린 북한의 교회처럼 한국의 교회가 무너져 버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증기롤러로 깔려 죽은 북한의 성도들처럼 한국의 성도들이 그렇게 짓밟혀 버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김영식 목사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당일 사경회 전체특강 강사로 이동춘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겸임교수가 ‘우리 하나가 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통일 강연을 하였다. 이동춘 교수의 강연 내용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을 비롯한 이적(利敵)단체들의 논리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 남한의 잘못을 크게 보고 북한의 악랄함을 작게 보는 양비론이 그의 주요한 논리이다. 다음의 기사를 참조하라(“장신대 사경회 또 친북논란...美도 핵보유했으니 북핵도 정당?”,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3766&Newsnumb=2018033766).
그의 강연에서도 김영식 목사와 비슷한 발언이 나온다. 이동춘 겸임교수는 기독인의 통일 방법론은 ‘평화 지향적’이어야 함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동춘 박사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장신대 사경회 강연 전문을 게재하였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919535101431098&id=100001238792764)
이동춘, <“우리는 예수가 말씀하신 평화 개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검을 사용하지 않는 평화 개념’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는 소위 ‘비폭력적’ 평화 개념을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장 52절)>
이동춘 겸임교수는 “예수가 말씀하신 평화 개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도 김영식 목사가 그러한 것처럼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에 성경의 말씀을 짜 맞추고 있다. 그 다음 구절인 마태복음 26장 53절을 보면 예수님은 천사 군대를 부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천사 군대는 이사야 37장 36절에서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죽였던 그 천사였으리라. 그러나 주님은 이 자리에서는 무력 사용을 원하지 않으셨다. 왜일까? 52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4절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일 무력을 사용한다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고 물으신다. 이런 일이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영광스런 지위를 상실한 자들이 다시 하나님의 통치를 누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그 복음의 사건. 이를 위해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고 이 자리에서 칼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자. 내가 밤늦게 길을 걷다가 어떤 어린 여자아이가 구타와 함께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무력으로 제압할 것인가? 좋은 말로 ‘평화’스럽게 강간범을 어르고 달랠 것인가?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며 하나님을 참칭하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 앞에서 평화를 노래할 것인가?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평화만을 노래하란 말인가?
‘저기, 강간범 아저씨. 그만해주실래요...?’
이동춘 교수의 사경회 강연 전문을 보면 ‘북한’이라는 단어가 총 55회 나온다. 필자는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북한’이라는 단어를 지정학적 의미 외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라는 말로 쓴다. 이에 대비하여 북한 주민이라는 말을 쓴다. 분리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춘 교수의 글에서는 북한 정권, 북한 주민이라는 분리된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양자의 의미를 북한이라는 한 단어에 뭉쳐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저서에서도 동일하다(이동춘. 『남북한평화신학연구소 연구총서 10: 한반도 통일논의의 신학담론, 정치신학에서 화해신학으로』. 서울: 나눔사. 2017).
<결국 북한을 대립의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태도는 북한을 형제가 아닌 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에서는 선교를 위한 정복주의만이 보일 뿐이다.>(116쪽)
<북한 사람을 소위 ‘뿔 달린 빨갱이’로 희화하는 학습은 분단의 경험이 가져온 불행한 트라우마에 기인한다.>(140쪽)
이동춘 교수는 위 문장들에서 가리키는 북한이 북한 정권인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아우르는 말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런 태도는 그의 책 전체에서 나타난다. 피아식별이 불분명 하다. 우리가 마땅히 ‘미워’해야할 대상(시139:22)과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사1:17)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에 알레르기를 느끼는 일부 기독인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타난 미움의 그 본질은 적개심과 같은 감정이 아니다. 성경의 사랑이 감정 그 자체이기보다는 ‘언약적 헌신’을 주요골자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편을 중심으로 나타난 증오나 적개심은 그 미움의 대상의 악한 활동을 반대한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시26:5).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악한 자들의 목적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의 성공을 막는 것이다. 물론 이런 증오는 감정적인 요소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베소서의 권면대로 분개심을 오래 품지 말아야 할 것이다(엡4:26). 왜냐하면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엡4:27). 그러나 성경은 악인들의 정책과 계획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악인들을 미워할 것을 허용한다. 아니,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악을 미워하라고 자주 권면한다(시97:10; 101:3; 119:104, 128, 163; 암5:15; 유23; 계 2:6).
우리는 북한을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으로 대분(大分)하여 북한 정권의 그 활동과 목적을 ‘미워’하고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을 사랑해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북한 정권)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시139:21-22) / “배교자들의 행위(김일성 우상 숭배)를 내가 ‘미워’하오리니.”(시101:3) /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북한 정권)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북한 정권)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역대하19:2)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북한 주민)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이사야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을 통일의 파트너로, 공존과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별없는 기독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김일성 정권과는 ‘화해(和解)’할 수 없다고. 화해의 개념은 국가-국가, 사람-사람의 문제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령도자님은 정녕 이 땅 위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로동신문 주체85 1996년 2월 8일)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내용에 주목하고 순종해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6:15). 이동춘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교수들이 논하는 ‘화해(和解)의 신학’은 북한 정권의 사악한 정체를 외면하고 인간이 고안한 평화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취사선택 하였다. ‘화해(和解)의 신학’의 그 실상은 우상숭배 세력들과의 공범(共犯)을 꾀하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反逆)의 신학’이다.
성서한국을 비롯한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북한의 봉수·칠골교회를 진짜교회로 여기고 통일의 파트너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가 평통연대에 고문(顧問)으로 적(籍)을 두고 있는데 한국예수전도단 설립자 오대원 목사도 평통연대에 고문(顧問)으로 있다. 오 목사는 봉수칠골교회가 진짜 교회라고 말했다가 이후에는 사과했다.
(오대원 목사의 문제 발언, https://www.youtube.com/watch?v=yhpblnc_0ho)
(오대원 목사의 “봉수·칠골 교회는 진짜” 발언 사과.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78061)
이동춘 교수의 학부 사경회 강연 내용 중 한 대목을 더 들어 보자.
이동춘, <제가 그리스도교의 통일담론을 연구하면서 늘 염두에 두는 문서가 있습니다. 1988년 2월에 발표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하 「88선언」)입니다. 이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가 발표한 것으로 지금까지 발표된 그 어떤 선언문보다 탁월한 성서적·신학적 선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의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지난 3월 7일 「88선언」 30주년을 맞이해 NCCK는 ‘88선언 30주년 기념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성서한국 이만열 공동대표도 이와 같은 말을 했다. 이만열은 2007년 10월 15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KNCC의 88통일선언을 “가장 차원 높은 통일 문건”으로 격찬한다. 그는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의 정권차원에서 많은 문건을 발표했지만, 내가 살핀 문건 중에서는 KNCC통일선언만큼 차원 높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652
(KNCC의 북한과 통일 관련 행보는 심히 우려스럽다. 최근 사례는 다음과 같다. 다음 기사를 참조하라.
NCCK “이석기 구속·통진당 해산은 국가의 만행” 석방 촉구.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7174)
우리는 여기서 학부 사경회 대표강사 이동춘 장신대 겸임교수와 성서한국 이만열 공동대표의 인식의 궤가 유사함을 짐작할 수 있다. KNCC의 88통일선언문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왔다. 88통일선언문은 “민족의 분단이 장기화 되면서 양 체제에서 모두 안보와 이데올로기의 이름 아래 인권은 유린되어 왔으며,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억압되어 왔다”며 한국과 북한에 대한 양비론을 편다. A4 8장에 달하는 이 선언문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이다. 선언문은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하루 속히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휴전 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촉구한다. 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상호간 신뢰회복이 확인되며, 한반도 전역에 평화와 안정이 국제적으로 보장될 때,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하며 주한 유엔군 사령부도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적화통일 포기나 폭압 체제 해체 같은 전제가 없는 평화협정론이다. 이는 북한의 주장과 정확히 같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뒤 소위 주체혁명 위업을 완성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과거 남(南) 월남 역시 73년 평화협정 체결 및 주월 미군 철수 후인 75년 북(北)월맹 남침으로 공산화됐고 수백 만 인구가 학살 당했다. 성서한국 이만열 공동대표와 이동춘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겸임 교수는 월남의 사례를 알고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 “종북 타령 그만하고, 공북(共北)·화북(和北)으로 가자”
(‘2.’의 시작은 성서한국의 대표성을 띄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한다. 성서한국의 모태가 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1987년 창립)’과 성서한국의 기관지 ‘복음과 상황(1991년 1월 10일 첫 발행)’의 주요 핵심 멤버인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로부터 시작한다. 이만열 대표는 또한 ‘평통연대’라는 단체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 ‘공의정치포럼’, ‘희망정치시민연합’등에서 주요 임원으로서 활동한 바 있다. 또한 이만열은 전(前) 국사편찬위원장의 경력 그리고 박원순과 임헌영 등이 주축이 된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사학계의 중진으로서 많은 글과 활동을 통하여 한국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성서한국 기독교 연합체에게 이만열은 공동대표로서 그의 활동은 성서한국의 대표성을 띄며 그 운동의 방향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원로(元老)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북(從北)은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세력을 말한다. 적그리스도의 예표에 대한 영적 분별의 상실을 뜻한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2013년 1월 21일 유코리아라는 인터넷매체에 “종북 타령 그만하고, 공북(共北)·화북(和北)으로 가자”는 이만열 공동대표의 글이 올랐다(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3).
이만열 공동대표는 “종북은 대북 햇빛 정책 이후에 나타나 주로 진보적인 세력을 엮어 공격하는 ‘테러적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억울해한다. 이어 “‘공북(共北)’을 거쳐 ‘화북(和北)’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며 “‘공북(共北)’은 북과의 공존을, ‘화북(和北)’은 북과의 평화를 모색하는 길이다. 공존하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것, 이것이 평화통일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만열 공동대표는 종북(從北)세력이 북한의 對南적화노선에 따라 공산화 통일을 선동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700만 민족의 학살자 집단인 김일성 가문을 추종해 “김일성 만세” “김정일 만세”를 불러도 도덕과 가치엔 영향이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북한 공산주의 정권, 주체사상 체제를 인정한 뒤 하나가 되자고 말한다.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완벽한 혼재다.
이만열 공동대표는 홍정길 목사 등과 함께 ‘성서한국’을 이끌어 왔다. 그는 ‘북쪽교회를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형제살인을 저지르는 것(2005/11/1)’이라는 등 북한 가짜교회 봉수교회를 감싸는 논리를 펴왔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만열 공동대표, <“남북교회 진위 논쟁은 승자 없는 게임” (…)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이 “형식상 진짜교회의 모습을 하고도 교회를 세습하고 재산 때문에 폭력배를 예배당에 불러들이기까지 하는 남쪽 교회의 모습”을 들어 “남북교회 진위 논쟁은 승자 없는 게임으로 끝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신앙을 입으로 시인하는 이에게 “당신은 가짜”라고 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와 종교의 자유를 바라는 진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강영섭 위원장과 손효숙 목사(봉수교회)·장승복 목사(칠골교회) 등은 남측 인사들 앞에서 그들의 신앙을 입으로 시인한다”면서 “입으로 시인하는 이상 신앙은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말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665)
위 기사에서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는 “형식상 진짜교회의 모습을 하고도 교회를 세습하고 재산 때문에 폭력배를 예배당에 불러들이기까지 하는 남쪽 교회의 모습”과 북한 봉수·칠골교회 비교한다. 봉수 칠골 교회는 북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산하에 있으며 모든 교인들이 통일전선부 대남요원들이다. 남한의 교회가 저지른 罪(죄)를 이유로 한국교회를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사이비 종교, 이단, 무엇보다 죄 없는 자들을 죽이는 사악한 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후6장에서 그 문제 많던 고린도 교회를 두고 “하나님의 성전”이라 칭하였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5) 이만열 대표가 교회를 대하는 기준은 하나님 보다 더 높은 것인가?
북한은 김일성으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독교를 인정한바 없다. 아래 김일성의 연설을 참조하라.
북한 김일성의 1962년에 행한 연설,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들을 함께 데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을 모두 재판해서 처단해버렸고 그 밖의 일부 종교인들 중에서도 악질들은 모두 재판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종교인들은 본인이 개심하면 일을 시키고 개심하지 않으면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는 강도와 그 강도가 만든 가짜 교회를 옹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만열 공동대표, <“한국교회의 개혁과 참된 교회의 표지” : (…) 이만열 교수는 “입으로 신앙을 시인하는 이상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을 했다 (…) 이러한 논쟁을 보면서 남쪽교회의 현재 상황을 살피게 된다. 진짜 교회인가? 참된 교회인가? 가짜 교회인가? 이만열 교수의 분석을 받아들이면 남쪽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자신 있게 참된 교회임을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북쪽교회를 가짜라고 주장하여 형제가 형제를 미워함으로 형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는 반드시 새롭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791)
위 기사에서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그러면서 북쪽교회를 가짜라고 주장하여 형제가 형제를 미워함으로 형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살육하는 사이비 종교, 이단이 세운 외화벌이 사기극 공연장, 달러 보급창고를 ‘가짜’라 말하는 게 형제를 미워하고 살인하는 것이라니? 이토록 북한정권 옹호에 필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양희송도 한몫 거든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당신의 소원은 통일? 평화와 통일로 가는 로드맵 만들자 : 북한과 오랫동안 교류해온 이들은 북한의 공식 교회가 중국의 삼자교회가 그러했듯, 그 사회에 종교의 자유와 선교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공식화 하는 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결국 중국의 경우도 삼자교회가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회의 비판이나, 가정 교회의 비난을 자초했으나 중국교회를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삼자교회는 비중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선택한 사람들을 북한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4088)
양희송 대표가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북한의 봉수·칠골교회는 김일성 주의와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세워진 양의 탈을 뒤집어쓴 가짜 교회이다. 그래서 봉수교회의 지도자들은 김일성을 신이라고 신앙고백 한다.(북한 봉수교회 리성숙 목사,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하나님은 곧 김일성 주석님이다.” 출처. 미국의 소리, 2011/11/29) 그러나 삼자교회는 그 시작이 기독교 신앙이지만 그 종교 활동에 있어서 정부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만열 성서한국 공동대표와 양희송 대표는 이제부터라도 선악을 분별하여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여기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3. 성서한국의 주요 참여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을 중심으로 본 성서한국
성서한국의 참여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1987년 12월, 이만열을 비롯하여 손봉호, 김인수, 장기려, 원호택, 이장규, 강영안 등이 시작한 기독운동단체이다. 성서한국 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2018년 현재까지 이만열과 손봉호는 성서한국의 공동대표로서 성서한국의 운동 방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윤실은 교회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활동들을 해왔다. 그 중에서 지면 부족상 3가지만 소개한다. 1)‘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국보연)’에 참여해 국보법 폐지 활동 동참. 2)천안함 · 연평도 사건 이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키리졸브 훈련’을 중단을 주장. 3) 기윤실은 이러한 활동 성향을 보이는 단체들이 으레 그렇듯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을 주장한다.
1) 기윤실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국보연)’ 참가단체로 국보법 폐지에 동참해왔다(https://goo.gl/388i5r). ‘국보연’은 이른바 종북 단체·종북 인물 등을 옹호하는 등 극렬한 주장을 펴온 단체이다. ‘국보연’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성명 중 일부는 이렇다.
▶종북단체 실천연대 옹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만들어진 민간 통일운동 단체이다. 촛불항쟁에 앞장선 진보진영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이자, 공간기구와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폭압정치 외에는 강부자를 비롯한 1% 특권층만을 위한 정책을 더 이상 펼치기 어려운 이명박 정권의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거듭 반복한다면 제2의 촛불이 심판에 나설 것임을 정부와 공안당국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2008년 9월 29일).”
*실천연대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 등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을 추종해 오다 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다. 이 단체는 북한인권 문제 제기를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 음해공작”으로, 탈북자들은 “북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도망친 사람들”이며 “일부 탈북자들의 주장 외에는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증거초자 없는 것이 현실(2010년 1월 22일 논평)”등으로 비난해왔다.
2) 기윤실 역시 유사한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굴종적 평화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예컨대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키리졸브 훈련’ 중단을 주장했다. 기윤실은 2012년 3월1일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기독교 3.1선언’에 참여, “남북 간 대화의 문은 닫힌 지 오래며, 벼랑 끝까지 가 있는 북핵문제는 언제 풀릴지 요원하다”며 “서해 충돌의 단초가 된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이 봄철로 예정되어 있어 작년 연평도 포격사태와 같은 불행한 참화가 있을까 심히 염려된다”고 밝혔다.
기윤실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북한의 도발이 아닌 소위 “서해 충돌”로 정의한 뒤 한 걸음 더 나가 “서해 충돌의 단초가 된 키 리졸브 한미합동훈련”으로 표현, 마치 韓美연합군사훈련이 평화를 파괴한 것인 양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한국정부는 올해 더 큰 위기를 부를 키 리졸브 군사훈련 계획을 중단하고, 일촉즉발의 위기가 상존하는 서해의 공동협력방안 등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3) 기윤실은 이어 “남북화해협력사업들은 하나같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포석으로 주목되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정체되었거나 중단되었으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남북이상가족상봉사업조차 중지되었다”며 “한국정부는 어떠한 이유로든 쌀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멈추지 말고 즉각, 그리고 대량으로 재개하여 남북화해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기윤실은 무조건-무작정-무차별적 대북 지원, 즉 북한 정권과 체제를 도와야 한다는 요지였다.
기윤실은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화해와 협력이 동서독 통일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기억할 때, 그동안 한국교회가 목숨 걸고 사랑과 관용의 길을 걷지 못했음을 참회하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서독의 對동독 지원은 동독 정권과 주민의 분리를 통한 ‘인권 개선’과 ‘개혁 개방’이 목표였다. 특히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대가를 받지 못하면 주지 않는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동독이 요구하기 전에는 주지 않는다’는 3불(不) 원칙을 지켰다.
돈을 주고 자유를 사 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절정판이었다. 62년 ~ 89년 사이 동독이 억류한 정치범 3만4천여 명과 가족 25만 명을 서독으로 데려와 자유를 누리게 했다(출처: 통일연구원 통계). 동독주민은 서독의 TV를 시청하고 왕래하며 통일을 꿈꿨다. 동독 영토 한 가운데 위치한 서베를린은 서독을 알리는 창구였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사랑과 관용의 길”을 말하며 수많은 금품을 주고도 정치범은커녕 납북자 한 명 데려오지 못했다. 개혁 개방도, 인권 개선도 이루지 못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 “공개처형 중단” “탈북자 영아살해·강제낙태” 등 북한정권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하지 않았다. 북한주민은 한국의 TV 시청은 물론 왕래도 못한다. 소위 인도적 지원이 북한정권을 맹목적으로 유지·연장·강화시켜왔을 뿐이다.
기윤실 역시 마찬가지다. 성명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하라”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는 한 마디 언급이 있을 뿐 골자는 무조건-무작정-무차별적 대북(對北)지원이다. 그리고 “양측 정부는 남북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활성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전향적으로 나설 것”과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과 정당들은 당리당략을 넘어 민족화해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큰 구상을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북한 공산주의 정권·주체사상 체제, 악(惡)에 대한 비판도, 한국을 상대로 한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비판도 전무한 채 한국의 자위적 대응의 중단만 촉구한다.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것과 무관한 對北지원을 가련한 북한주민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표현이라고 가장한다. 이 모든 미혹을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 사랑 실천”이라고 결론짓고 그렇지 않은 분별은 “동포에 대한 증오와 대결, 남북한 당국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자존심대결”로 몰아간다. 이 섬뜩한 성명을 발표한 개신교 단체는 기윤실과 성서한국을 비롯하여 아래와 같다.
개척자들(대표: 송강호), 공의정치포럼(대표: 이만열, 홍정길), 교회개혁실천연대(백종국, 오세택, 정은숙), 교회2.0목회자운동(실행위원장:신형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박은조, 백종국, 임성빈, 전재중), 기독청년아카데미(원장: 오세택), 담쟁이숲아카데미(대표: 김형일), 생명평화연대(대표: 최철호), 성서한국(공동대표: 김명혁, 박종화, 손봉호, 이동원, 이만열, 이승장, 홍정길), SFC사회변혁국, 평통기연(상임대표: 박종화, 손인웅, 이규학, 이영훈, 홍정길), 평화누리(공동대표: 고상환, 김애희), 하나누리(대표: 방인성), 희망정치시민연합(대표: 강경민, 백종국), 희년함께(공동대표: 김경호, 김영철, 방인성, 이대용, 이해학, 전강수, 허문영, 현재인) 이상 15개 단체
글을 나가며
우리나라의 일부 종교인들을 보면 과거 수십 년 전 남(南) 베트남의 모습이 떠오른다.
1967년 南 베트남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야당 지도자 쭝딘주 변호사는 ‘우리민족 끼리’를 내세우며 ‘미군철수’, 조속한 ‘평화협정’을 통한 ‘남북통일’을 주장했다. 정치인들 뿐 만이 아니라 짠후탄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인들이 ‘평화’와 ‘화해’의 이름으로 공산주의 정권 北 베트남과의 소위 민족공조를 꿈꾸었다. 결국,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의 끈질긴 선동의 여파로 1973년 1월 27일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1973년 3월, 미군은 전면철수 하게 된다. 국민들은 평화협정을 완전히 믿고 있었고 소금반찬으로 연명하는 北 베트남이 전쟁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1975년 3월 10일, 北 베트남은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南 베트남의 짠후탄 신부를 비롯한 종교인들은 정부를 비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결국 자유 南 베트남은 北 베트남의 총공세 이후 50여일 만인 4월 30일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사이공 함락 후 南 베트남의 짠후탄 신부를 비롯한 종교인, 교수, 학생 및 통일 운동가까지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고 대부분 처형되는 등 수백만 명이 처형, 학살 되었다. 南 베트남 패망에 앞장섰던 인사들까지 처형된 것은 자본주의에서 反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 교회에는 북한 정권의 실체와 영적 정체성을 직시하지 않고 평화와 화해를 노래하는 종교인들이 많이 있다. 애굽의 바로와 골리앗 앞에서 민족공조를 노래한다. 이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아니라 강도의 친구를 자처 하는 것이다(눅10:36). 뿐만이 아니다. 김일성을 하나님으로 받드는 봉수·칠골 교회를 가짜 교회라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기독인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벨리알과 협력하고자 하는 기독인이 여기저기에 있다(고후6:15). 이것은 한국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영적 분별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 때에 엘리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삼상4:15)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북녘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제 저들의 고통에 응답하시고자 한다(출6:5). 그 때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한국교회의 기도가 박수로 부딪히는 그 순간이다. “너(한국교회)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이제 우리의 차례가 남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기다리신다. 한국교회가 악을 악이라, 선을 선이라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지혜를 갖길 원하신다(사5:20).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를 그저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다. 필자는 4월 1일에 이렇게 말하였다. “성서한국은 공동체의 이러한 구체적 혐의에 대하여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서한국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혐의에 대하여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는커녕 계속해서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은 한국 교회에게 결코 선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는 성서한국의 기독교 연합체와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성과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저기 북녘에는 온전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완전히 박탈당하였다. 가서 전할 수도 없다. 저들에게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달려가기 위해서는(사52:7)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무너져야 한다.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서 신앙과 양심이 보장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은 어렵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우리가 선악을 구별하고 주님께 한 마음으로 북녘의 우리 동포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주님께 부르짖을 때 주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 우리는 그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시126:3)을 행하신 것을 보며 여호와를 다시금 역사의 주인으로 경외하게 될 것이다.
2018년 4월 16일(월)
장로회신학대학원 113기 이승찬(20173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