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하면서 루터에 대한 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에 대하여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언급을 하면서 참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모두가 제사장이라면 굳이 목회자가 왜 필요한가? 라고 언급을 하면서 루터에 대한 것 즉 “만인제사장설”을 설로 흘려버리려고 하는 견해들을 보며, 그러한 글들을 많이 읽게 된다. 설이라는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만약 루터가 만인제사장에 대해서 설이라고 하였다면 루터 역시 잘못된 것을 주장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성경은 분명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에 나타난 레위지파의 사역과 제사장의 사역과 사도들이 언급한 제사장에 대하여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구역성경에서부터 나타나는 제사장에 대한 권한과 부여는 레위지파에게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이 구약 성경에서 언급한 제사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두려워할까? 그것은 목사로서의 권위와 위치가 상실될까봐 그러는 것이다.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너무나 많은 착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본인들이 정말 대단한 존재인줄로 알고 살아간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본다면 우리들은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다. 대단한 존재라고 볼 수도 없을 만큼 형편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가 형편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드로전서2장9절에서 언급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다.
첫째로 목사 그들은 레위지파에 속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제사장들인가?
한마디로 레위지파도 아니고 성경에서 말하는 제사장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레위지파후손이고 제사장들인 것처럼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성도들을 군림하고, 족벌체제를 이루어 나가려하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세상이, 성경에 대하여 제대로 눈을 뜬 사람들이 항의를 하면 주의 종에게 대항한다고 하나님께 어떠한 벌을 받고 싶어서 그러느냐고 협박까지 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다. 그뿐 아니라 교회가 성장한 것이 자기들이 힘과 능력에 의한 것인 양 자랑하는 사람들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목사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다가 보니 교회가 자기들의 재산인양 북한의 김일성의 족벌체제와 같이 레위지파의 대대로 이어받는 제사장인 것처럼 한 교회를 자자손손 대를 이어 단물쓴물을 다 빨아 먹으려는 파렴치한 목사들까지 나타나게 되며, 이윽고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가정도 파괴되고, 교회도 파괴되게 만드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도 많고 비일비재하다.
목사 그들은 오직 당신들 자신은 죽고 없어지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을 해야 하는 자들이다. 당신들의 밥벌이를 위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충성하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며, 교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이 당신들과 당신들 자식들의 뒷치닥을 하기위하여 바친 것이 아니다. 정말 당신네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조금이라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자부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에베소서4장11-16절에 이르기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하였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건만 그 소명과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세상의서의 정욕과 탐욕으로 물들어 하나님이 주실 영광보다도 이 세상에 빠져들어가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는 자칭 목사들이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너희들이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줄 알라.
둘째로, 주님의 양을 가로채는 도적들이여 회개하라
오늘날 많은 자칭 목사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어지럽히고, 하나님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자칭 거룩한 목사인양, 자칭 주님의 양을 키우고 먹이는 목자인양, 늑대가, 이리가, 양을 가장하고, 교회에 들어가 주님의 양들을 현혹시키고, 교회를 파괴하는 일들이 잦음을 본다. 요한복음10장7절-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목자에 대하여 상기하기를 참 목자는 좋은 것을 양에게 먹이게 하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을 줄 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종교지도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야고보서3장1절에서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선생이 먼저 심판받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오늘날 무인가 신학교부터 중세시대와 같이 많은 교단에서는 성직매매가 버젓이 성횡하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 23장10-15절의 말씀을 상고한다면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오직 지도자는 한분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자칭 목사들이 지도자라는 자리에 예수리스도의 자리에 버젓이 앉아 거짓 지도자의 행세를 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본인들도 망하는 자들이면서 천국에 가려는 자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거짓지도자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자칭 목사들이 말하기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였다. 복을 주는지 주지 않는지 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서 교인들에게만 강조를 한다. 성경에서는 분명 말한다. 먼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상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을 징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과 징계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도 않고 교인들에게만 경고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보면서도 들을 귀가 없고, 깨닫고 회개할 마음이 없고, 제대로 보고자하는 눈이 없기에 자기들의 범죄함 알지 못하고 교인들만 탓하고 교인들만 징계하고 교인들만 잘하라고 나무란다. 여기에 있어서 말라기 1장 6절에서 말하기를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라기2장1절-7절을 살펴본다면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였고, 옳은 길을 떠났고, 율법을 거스르게 하였고, 언약을 깨트리고, 여호와의 길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수많은 자칭 지도자인 목사라는 것을 말하며, 징계를 당함을 일컫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지도자들은 본인들의 죄성을 숨긴 채 교인들에게만 나무라는 추태를 버젓이 벌이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들을 볼 때 오늘날 자칭 나는 참 목자요, 나는 나를 희생해서 교회를 세우고, 이만큼 성장시켰다고 자부하는 거짓목사들이여 당신들은 강도요, 절도자인 거짓목자이며, 자칭 목자로서 양을 피리하게 하며, 양을 멸망하게 만들며, 양들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고, 아파할 때, 그것은 너희들 탓이지 내 탓이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같이 동거 동락하지 못하고, 같이 아파하지 못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못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 가는 자이며, 자기 배를 위하고 양은 돌보지 아니하는 자라는 것이다. 당신들은 자칭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삯군 목자요, 도적이요, 자기 배만 섬기며, 양들의 눈을 가리워 도적의 추종세력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을 통하여 모든 탐욕과 욕심을 가지는 도적놈이요, 거짓목자요, 삯군목자요, 사단의 종이다.
셋째로는 왜 우리가 제사장인가?
구약에서 말하는 제사장의 역할 중의 한 가지는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반드시 제물을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중간적인 역할을 제사장이 하였다. 그러나 그 제물의 역할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히브리서 4장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행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 9장26절을 보면,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주셔서 또다시 번복하여 제물로 피의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을 대제 내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2장5절에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자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제사장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적인 제사장이 아니다.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셨기에 더 이상 짐승의 피가 필요 없는 산제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드리는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첫째로는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10장19-22절에 의하면“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중간에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있어 대신 피의 제사를 드려주는 것이 아닌 오직 우리 자신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모든 죄를 고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아뢸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둘째로서는 우리 즉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이 자녀로 회복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백성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계에서 봉사로를 섬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베드로전서4장7-11절을 보면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또한 고린도전서12장4-12절에서 말하기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12정12-31절에 이르기를 몸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은사와 연결이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듯이 우리에게는 각약 각색의 은사를 부여 하셨고, 사명을 주신 것이다. 나는 사명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나 사명을 받았다. 그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신 은사들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은사를 가지고 목사를 추종하고 목사에게 충성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충성 봉사함으로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로 목사 그들만 기름부음 받은 것인가?
성경에서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목회자는 기름부음 받은 자이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말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목사는 하나님이 아니다. 목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도 아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까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주신 은사로서의 직책이요 사명으로서 오직 예수님의 양을 잠시잠간 맡아 좋은 꼴을 먹이는 자이다. 요한일서 2장20절에서 이르기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또한 요한일서2장27절에서 이르기를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뿐 아니라 고린도후서1장21-22절에서는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이 바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증거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잘 말씀해주신다.
“성도”라는 단어 안에는 모든 그리스도인 즉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구원 받은 자가 포함된다. 목사는 포함되지 않고, 장로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를 성도라고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일컬어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거룩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카도쉬로서, 카도쉬의 어근은 ‘분리‘, ‘격리’의 뜻을 지닌다. ‘거룩함’을 뜻하기도한다. 구약에서 ‘거룩’함이라고 하는 속성이 부여되거나 관련되어 언급된 대상은 주로 하나님, 시간, 사람, 장소 및 기타 사물들을 가르키고 있다. 헬라어로는 “하기오스”(거룩한 자)이며, 히브리어로는 “하시딤”(신실하며 헌신하는 자들), 혹은 “케도쉼”(거룩하게 구별되는 자)이 사용되었다.
고린도전서1장2절에서 말하기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또한 로마서1장7절에서 이르기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후서1장1절에서는 이르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은 레위기 19장2절에서 이르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하여 질 것”을 명령하셨다. 이제 거룩이라는 하나님의 대표적 속성이 하나님의 백성에게까지 확대됨으로써 거룩은 의와 정결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하여짐에 때한 개념은 구약에서 비롯하여 발전되어 오다가 신약 시대에 와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강력히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거룩하라’는 명령은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다. 고린도전서3장16-17절에서 이르기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였으며, 베드로전서2장9절에서는”…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모든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기름을 부음 받은 자이지만 그 안에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소명과 사명을 주시어 각자에게 은사대로 사명을 주신 것이다. 로마서8장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은 각 지체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시는 이유로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다.
목사들이여 당신들만이 기름 받은 자라고 착각하지 말고, 당신들만이 제사장이라고 주장하지 말며 성도들을 현혹시키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오직 주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까지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으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며, 자기를 주장하지 말고, 목사 자신의 양으로 주님의 양을 가로채지 말고, 오직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주님의 양을 주님의 양으로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와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위하여 올바로 살아가도록 양육할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