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외교는 탈냉전 시기 최대의 위기에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사상 최고이고 이제 미국 본토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미북 대결도 최고조이다. 군사적 충돌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남북 관계는 최악이었던 지난 정부 수준에서 아직 나아진 것이 없다.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저점이다. 한러 관계도 지난 정부 이래 진전이 없다.
미중, 미러 관계가 최악이라는 점도 악재다. 이들 간에는 북핵공조 보다 상호견제 심리가 앞선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여 유리한 담판 입지를 확보하려는 김정은의 집요함이 있고, 이에 대응하는 트럼프의 예측불가 행태가 있다. 결국 북한과 미국의 상호 대응에 따라 격변이 날 수 있다.
본토가 북한의 타격권에 들게 되자 미국은 자극된 가운데 이에 맞설지 타협할 지 논란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의 그간 대응은 다소 위태롭고 혼란스러운데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정치적 곤경 속에 있어 불가측한 행동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억지하고 징치하는 일방, 상황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노력도 하여야할 터인데, 사태의 동력이 미.북에 있고 현재의 남북관계나 한중관계를 볼 때 대북, 대중 협의로 활로를 열기 어려우므로, 일단 대미 협의를 중심으로 일을 풀어갈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 더욱이 근래 미국 내 논의의 흐름을 보면 우리의 냉철한 대처가 시급하다.
당장 경계할 일은 군사적 충돌이다. 북미 간의 레토릭은 이미 위험수위이거니와 아울러 주목해야할 것은 미국 내에서 군사적 대응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한 일도, 이 정도의 공감을 얻은 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모두 미국 자신이 위협에 직면하였다는 인식 때문이다.
반면, 상황이 협상 국면으로 가더라도 유의할 점이 있다. 위기를 거쳐 미북이 대좌한 후, 편의적 타협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례가 있다. 30년여 북핵 역사에서 중대 국면은 93년 북한의 NPT 탈퇴와 06년 첫 핵실험이었는데, 그 때마다 미국은 입장을 바꾸어 북한과 타협하였다. 93.6 미국은 북한의 NPT탈퇴 임시 중단을 확보하는 대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그래서 북한은 그 합의문을 조미 관계 40년 사상 최고라고 불렀다.
첫 핵실험 후에도 미국은 북한의 BDA 자금 해제 요구를 들어 주고 핵 활동 중단을 확보하였다. 이제 우리는 북핵 위협 하에 든 미국이 어찌할 지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미국이 지금의 위기를 거치면서 동맹의 운용을 재고할 여지도 있다.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자국에 대한 위험을 무릅쓸지 재고할 수 있다. 북한의 전략이 이 부분을 겨냥하고 있으니 확장억지, 전략자산 및 주한미군 운영과 유사시 전력 증원 등에 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미국이 북핵문제의 출로를 찾기 위해 중국과 한반도 안보구도 변경을 협의할 소지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미국 내에서 전에 없던 논의가 나오고 있다. 키신저가 제기한 미중 간 새 안보구도 논의나 영구분단을 전제한 두 국가 해법 또는 한국 주도 통일 후 미군 철수 구상 등이 그 예이다. 우리의 운명에 관련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시나리오에 잘 대처하려면 미국과 신뢰에 기초한 공조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을 말리기도 하고 힘을 빌리기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주의 외에 나은 대안이 현재는 없다.
그런 면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지금 미국의 격앙된 심리 상 우리가 미국이 받는 위협에 무신경하거나 양비론을 취하면 동맹으로서 신뢰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이제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우리의 대미 지원 의무가 발동될 수도 있으므로 우리의 자세는 평가되고 기억될 것이다. 자칫 미국 내 대한국 방위지원 재고나 한반도 새 안보구도 논의 기류를 부추길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스스로에게 위기가 닥쳤다고 인식하면 과하게 반응하였다.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니 미국이 처한 위협에 적극 공감하고 동맹답게 처신할 용의를 견지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결정적 순간에 미국을 설득할 자산이 된다. 그런 후 조용한 외교로 미국의 절제된 대응을 주문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의 미사일이 ICBM 인지에서부터 괌 겨냥 실험에 대한 대응 그리고 사드 배치에 이르기 까지 이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둘째 앞서 말한 대외 여건과 별도로 국내에는 진보적인 대북, 대미 정책 주문이 있는데 이 역학에 잘 대응해야한다. 정부로서 지지층의 주문과 대외 상황의 요구를 조화시키지 않을 수 없는데, 만일 양쪽 주문을 조율된 정책으로 녹여내지 않고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수용하면, 대미정책에 부조화가 생기고 일체성이 손상될 수 있다. 조율된 정책을 마련해야하고 그 준거 또한 현실과 국익이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외교는 유례없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일의 상당부분은 대미 외교에 걸려있고 최선의 대처는 냉철한 현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글=케이아메리칸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