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오베라는 남자’를 읽은 후로 프레드릭 배크만에게 매료되었습니다. 성격이 별나기는 하지만 아내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던 오베가 가슴 깊이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 아내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아내보다 제가 먼저 가리라고. 아내 떠난 빈 공간이 우주처럼 커서 제가 우주 속의 미아가 돼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그 후로 읽은 책은 [브릿마리 여기 있다]입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는데 쿠바 방문 때 다 읽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들이 있었는데 이 책 내용이 궁금해서 저녁 시간에 같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 숙소에서 이 책을 다 읽은 책입니다. 힘없는 할머니 한 분의 열정이 한 마을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내용이었는데 역시 많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최근에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른 책을 구입했습니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책입니다. 아내는 책을 다 읽더니 제게 감동적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였습니다. 어차피 아내가 산 책은 제가 원래 읽는 책에 덤으로 다 읽기 때문에 먼저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아내가 읽은 책을 읽겠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읽기도 하지만 지금 읽는 책을 조금만 더 읽으면 끝나기에 아내가 권한 책을 그 후에 읽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내는 막무가내입니다. 제가 배크만의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책은 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등살에 못 이겨 먼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배크만의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손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흐려질 때 가족 간에 얼마나 아픔이 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을 무렵에 제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때문에 내 이야기라고 한 거지?" 아내는 그렇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옛날 화장실인 변소에 빠졌을 때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으시고 제 몸에 묻은 똥을 깨끗하게 씻어주신 분입니다. 그 후 힘겹게 파출부로 일하시면서 당시에 경제력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서 우리 가족에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 허름한 방을 하나 얻어 자취할 때는 할머니가 함께 사시면서 밥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저밖에 모르셨습니다. 고기 국을 끓여도 고기는 전부 제게 주시려했습니다. 좋은 것이 생기면 그것은 다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입만 여시면 희환이, 희환이였습니다. 손자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지극정성 그 자체였습니다. 할머니에게 제가 없는 삶은 빈껍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셨던 할머니가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찾아뵈면 저를 못 알아보십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불러주셨던 찬송을 불러드렸습니다.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인생향락 좋다 해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상 고난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할머니는 가만히 제가 부르는 찬양소리를 가만히 듣고 계십니다. 저는 한 곡만이 아니라 여러 곡을 불렀습니다. 할머니가 하도 부르셔서 저도 모르게 외우고 있는 찬송들입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일생 동안 고생만 하신 할머니가 가여우셔서 눈물이 났고 그 큰 사랑을 받고도 바쁘단 핑계로 자주 뵙지 못 하는 게 죄송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저를 잡으신 할머니는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손자라는 느낌이 와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익숙한 찬송 소리 때문에 그러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리는 책을 읽은 후 할머니 생각이 간절합니다. 다음 주에는 필히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습니다. 비록 손자를 기억하시지 못 하시는 할머니시지만 제가 그 할머니를 위해 찬송은 불러드릴 수 있으니까요.
글ㅣ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기독교싱크탱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