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망명 전 39호실 고위 관리, "북한 원유 수입에 싱가포르 회사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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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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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고 있는 미국으로 망명한 전 39호실 고위관리 리정호 씨. ©VOA

[기독일보=북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매년 20~30만톤(t)의 연유를 수입하고 싱가포르 회사들이 20년 동안 중개 역할을 해왔다고 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가 밝혔다.

2014년 한국을 거쳐 지난해 미국으로 망명한 리정호 씨는 28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시작된 ‘싱가포르 라인’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014년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을 지내다 한국을 거쳐 지난해 미국으로 망명한 리정호 씨는 "싱가포르는 아시아 석유 거래의 중심지이자 많은 중계회사를 갖고 있어 북한이 이 회사들을 통해 러시아와 거래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용도가 높은 싱가포르 회사를 내세워 러시아 기업과의 계약을 맡김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하고, 원유를 먼저 받은 뒤 자금을 나중에 지불하는 싱가포르 업체의 특권 또한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리 씨는 "북한 유조선인 대흥 6호, 7호, 12호 등을 일본으로부터 사들여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싱가포르의 중개로 확보한 러시아 원유를 북한으로 수송하는데 자신이 직접 관여했다"면서 "이같은 ‘싱가포르 라인’의 일부는 현재까지도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해당 선박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 씨는 또 "북한이 유조선을 이용해 러시아에서 매년 20~30만t의 연유를, 중국으로부터는 5~10만t 가량의 가솔린을 수입하고 있다"면서 "항공유는 정기적으로 수입하지 않고 지도부의 지시가 있을 때마다 들여오고 있다며, 매년 5천~1만t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그는 "중국에서 송유관을 통해 무상으로 매년 50만t 규모를 제공받지만 이는 기업이나 주유소 등 일반경제 부문과 소비자 사이에서 통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 씨는 “중국에서 파이프관으로 들어오는 원유는 1년에 50만t이 되는데 이걸 봉화화학공장에서 가공하게 되면 가솔린과 디젤유가 각각 한 10만t 나오고, 여기에 항공유도 좀 나오고 중유, 원활유, 나프타를 비롯해서 각종 석유화학 제품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트럭들과 승용차에 사용할 수 있는 오일 수량은 약 20만t, 이런 정도 밖에 안되고 그것마저도 전부다 군부에 공급하고 일부는 비축하고 있다”고 했다.

리 씨는 "현재 북한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북한 유조선은 10척~12척 사이로 1000~3000t을 적재할 수 있는 규모라며, 필요에 따라 러시아 선박들도 용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에 대한 원유와 석유 유입이 막힐 경우 북한 정권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 씨는 "39호실에서 수 십만 명이 일하고 있다"며, "중앙기관들 가운데 금강총국은 금 생산을, 대흥총국은 송이버섯을 비롯한 농토산물과 사금 생산을, 대성총국은 가공무역과 상업, 해외 중개무역 등을 주로 담당한다"고 설명하면서, "대성은행은 39호실 산하 모든 기관들의 은행 업무를 맡고 있고, 모란지도국, 선봉지도국, 유경지도국은 상업 위주의 활동을 하며, 대외건설총국은 해외 노동자 파견, 대경지도국은 수산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9호실 불법 경제활동은 점차 옛말이 돼가고 있다"며, "북한 지도부가 나서서 그런 활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따라서 "대북 제재를 39호실 활동과 여기에 연루된 인사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효율적인 압박 방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리 씨는 북한의 광물 수출이 전체 수출 규모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북한경제의 취약성으로 지적했다.

북한 당국도 심각성을 깨달아 2008년부터 석탄 수출 상한선을 500만t으로 고정했으나 지난해 이미 그 4배를 초과하는 등 석탄 의존도가 위험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석탄 수요가 크게 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소규모 탄광에서 ‘꽃제비’들까지 동원해 작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리 씨는 "이처럼 과도한 석탄 의존도는 북한경제를 한 순간에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며, 장성택 등 고위 관리들에 대한 숙청 바람이 불던 2013년12월부터 몇 달 동안 석탄 수출이 중단되자 광산과 관련 기업들은 물론 평양 시내 장마당, 식당, 상점 등이 일제히 문을 닫는 등 여파가 매우 컸다"고 회고했다.

또 "2014년 8월 북한 지도부로부터 무역 거래를 중국 일변도로 하지 말고 러시아와 동남아 지역 등으로 모두 전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수출입 시장을 러시아로 옮기면 가격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한국 방문 직후로, 당시 중국에 대한 북한의 감정은 ‘적대적 관계’를 넘어설 만큼 극도로 악화됐었다"고 전했다.

리 씨는 "북한경제가 최근 들어 호전된 것으로 보이고 주민들 삶이 약간 나아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정권의 지도력이나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의도치 않게 시장이 확대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들 "경제 주체들이 시장경제 방식을 도입해 이익을 추구하면서 경쟁을 벌임으로써 북한 경제가 다소 활기를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 씨는 또 "노동당 16호실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북한 지도자가 경제관리 방법을 개혁하기 위해 2012년 하반기 신설해 인민경제대학 교수 출신이자 39호실에 근무하던 관리를 실장으로 앉혔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북한 지도부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선진 경제체제를 도입해 북한 실정에 맞게 발전시키려고 했지만, 연구진들은 수령 유일 중심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에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해야 하는 시장경제 방식을 결합시키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리 씨는 "과거 39호실에서 이뤄졌던 불법 경제활동은 대부분 다른 부서로 이관됐으며, 대북 제재를 39호실 사업과 인사들에게 집중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리 씨는 2002년 경제, 문화, 건설 부문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지만, 2014년 북한에서 진행된 처형과 숙청을 보면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리 씨는 북한을 빠져 나오기 전까지 30년 동안 노동당 직속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면서 39호실 산하 대흥총국 선박무역회사 사장과 대흥총국 무역관리국 국장, 국방위원회 소속 금강경제개발총회사(KKG) 이사장,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 등을 지냈다.

이 기간 동안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각종 광물과 수산물 거래를 주도했고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 북한 서해에서 석유 탐사를 시도하는데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씨는 미국 망명 직후 미 행정부 고위 관리와 의회 의원을 만났고, 미국 정부는 리 씨의 활동에 관심을 보여왔다.

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리 씨와 거래했던 일본의 한 소식통은 리 씨의 선박 수입과 송이버섯 수출 등 현지 사업과 직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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