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신앙]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성황리에 10번째 개인전을 마친 서양화가 최성명(78‧崔聖明) 화백.
서울 북한산성교회 장로이자, 한국국제기드온협장을 역임한 최 화백은 이날 기독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 한 푼 없이 가난했던 자신을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은 "오직 하나님 은혜였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생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뭘 하다가 왔냐?'고 물으실 때 자신 있게 "선교 하다가 왔습니다"라고 밝히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이번 전시회에 대한 소감을 전해달라는 말에, 최 화백은 "그림을 팔고 안 팔고 관계없이, 정말 전시회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동안 고마웠던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었고, 동생을 비롯해 자신의 활동을 잘 몰랐던 지인들도 60점이나 전시된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성명 화백이 처음 그림을 시작 할 때 이야기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형편상 대학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최 화백은 "하나님, 제가 대학을 갈 수 없는 상황인데, 대신 그림 대회 시합에 나가서 작품을 낼 때 '특선'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 졸업 선물로 특선을 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경남 진주에서 전국대회 특선을 받은 사람은 최 화백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힘이 돼서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고, 부산사범대학교(현 부산교육대학교) 미술학과에 진학을 결심한다.
최 화백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그림)공부할 때 돈이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1주일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래서 '하나님, 제가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을 가고 싶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 것인데, 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러면서 1주일간 물 한 목음 안마시면서, 단식하며 금식기도를 했다."
하지만 금식 기도 당시 하나님께서는 어떤 계시도 주지 않으셨다는 최 화백.
그런데, 실제 부산사대 시험을 치러 갈 때 기적이 일어났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7:9-10)
이 말씀 붙들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1주일간 금식기도하고 무조건 시험을 치러갔다.
우선 필기시험을 보는 첫날, 시험 후 2시간 정도 지나니 그는 금식한 탓에 배가 고파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랬더니 시험을 하나 치고 나가니 고향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시험 잘 쳤냐?"하며 물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 화백은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주에서 멀리 부산까지 올 이유가 없는 이 친구가 여기 나타났고, 배고파 시험 못 치겠다고 말하자 빵을 사서 내게 주었다. 맛 있게 그 빵을 먹자, 그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기적은 또 이어졌다. 다음날 실기 시험도 있고 해서 하루를 묵어야 하는데... 최 화백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돈이 하나도 없는데, 잘 곳도 없고 어떻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러자 점심시간이 됐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여기 '진주농고 출신 있냐?'고 수험생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진주농고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래, 그럼 너 오늘 하루 우리집에 가서 자자"고 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선배인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을 그렇게 바로 주신 것이다. 기적도 그런 기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준비해주신 것이다.
시험 후 그 선배는 최 화백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저녁을 주었고, 갑자기 의자에 앉더니 자기를 그려보라고 지시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대학 미술과 선배였고, 내일 실기시험을 내는 교수님이 주는 과제에 이 자세가 나올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최 화백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선배가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는데, 발이 너무 작다며 '무조건 발을 크게 그리라'고 그에게 조언을 했다. 이 교수님의 성향이 그렇다면서...
"정말 신기하게 다음날 실기시험은 그 선배의 말이 적중했다. 앉은 자세를 그리는 것이 과제로 나왔고 개인교습(?) 받은 대로 발을 크게 그렸다."
그렇게 실기를 마치고 마침내 부산사대 미술학과에 합격한 최 화백. 하지만 놀랍게도 형편없는 필기성적에도, 놀랄만한 실기성적을 힘잆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담당 교수님의 말씀에 더욱 놀랐다.
이렇게 입학한 대학이지만, 최 화백의 가정형편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어려웠다. 결국 2학년 한 학기 등록금이 한 달 밀리고 말았다. 그러자 학생과에서는 바로 호출을 했고 자퇴서를 써야하는 상황에 몰린 최 화백.
그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등록금을 납부 할 수 없어 자퇴코자 하오니 처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자퇴서를 적어 봉투에 넣어 학생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최 화백을 불러 세웠다고 한다. 크리스천인 그 친구에게 최 화백은 자초지정을 말하고 '입학도 하나님 뜻이고 이렇게 그만두는 것도 뭔가 뜻이 아니겠냐'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이 친구는 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다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애들아, 최성명이 등록금 못 내서 자퇴해야 된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다음달 장학금 나오는 걸로 우리 주자"
40여 명의 학생 중 10여 명 넘게 크리스천들이었는데, 이들이 바람을 잡으면서 박수를 치자 모두 '그렇게 하자'고 결정했고, 바로 이 친구는 학과 교수님께 찾아가 '최성명 등록금을 학우들 장학금으로 대신 내겠다'고 말씀드리자 교수님도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해보라'고 허락했다.
이 같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최 화백은 자퇴를 면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늘 기도하면 그림을 그렸다는 최성명 화백은 이제 캄보디아 선교사로서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여생을 선교에 전념하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것이라는 다짐을 마지막 말로 전했다.
■ 최성명 화백은...경남 진주 출신으로 부산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도 몸담았다. 서양화가로서는 '보이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의 창조의 비밀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 화백은 한국미술협회 마신지회원이며 경상남도 미술대전 '특선'(1984)과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입선'(1985) 등 다수의 수상 경력과 10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단체전, 초대전 등 65회와 프랑스 파리·영국 런던·미국 시카고 등 해외 개인전과 국제교류전 등을 개최하고,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2013) 수상했다. 신앙인으로서는 북한산성교회 시무장로이자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선교지의 교회 건립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