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5) - 스킨십
■일시: 2017.05.28. 서울 강동구 초대교회 주일예배
■본문: 마태복음 8장 1~4절
(마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8: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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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다섯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 안아줌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2001년, 미국의 한 거리에 ‘제이슨 헌터’라는 한 남성이 ‘프리 허그’(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남녀노소 누구든지 안아주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진심을 다해 아무런 대가없이 안아주겠다며 ‘프리허그’라는 피켓을 든 남자에게 여러 사람들은 반응하였고, 그의 프리허그에 많은 사람들이 따뜻함과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이슨 헌터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그가 프리허그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를 너무나 사랑하여 주시던 어머니에게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항상 제이슨에게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란 걸 가르쳐 주시고, 안아 주셨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자, 제이슨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실천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프리허그를 시작하였고, 교회나 공동체에 ‘프리허그’라는 로고를 새겨 놓은 티셔츠를 나누어 주며, 프리허그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이 운동은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세계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경쟁과 반목이 가득하고, 삭막한 삶의 자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사랑과 위로의 운동이 되었습니다.
프리허그가 시작된 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도 프리허그가 일반화 되고, 정치인들, 연예인들, 그리고 특별한 아픔의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거리로 나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줌으로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프리허그의 모토는 ‘모든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 라는 것을 알게 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믿고, 소망을 나누자’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따뜻한 안아주심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스킨십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랑과 진심이 담긴 포옹과 터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랑받기 위해, 보시기에 좋게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일을 가장 열심히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안아주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수하여 주시고, 만져 주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진심을 담은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기 아이들을 안수하여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며 데리고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쁘신 예수님에게 어린아이들을 안수하는 일은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을 꾸짖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습을 보시고, 도리어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안아주심을 가장 약하고,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또 오늘 본문처럼 정말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지시고, 안수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수많은 무리 중에는 부자들도 있었고, 학식이 높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 앞에 나온 나병환자, 지금으로 말하면 한센병자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 나온 나병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제가 예전에 여수의 애양원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애양원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목회하셨던 애양원 성산교회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신 후 여수 애양원교회에 부임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은 흉한 모습의 한센병 환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치료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사랑의 원자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이 이를 먼저 행하셨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미시며, 그의 몸에 대시며 병을 치유해 주시는 기도를 한다는 것,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병이 옮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유력한 사람도 아닙니다.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 치료해 주고자 하는 마음, 위로의 마음이 있으셨기에 예수님은 나병으로 피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몸을 만지시며, 기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의 터치가, 사랑의 스킨십이 나병 환자의 썩어 들어가는 살을 새 살로 치유하여 주십니다.
아무렇게나 만지는 것이 사랑의 터치, 사랑의 스킨십이 아닙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스킨십은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추행이나 범죄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 무례한 터치와 예수님의 사랑의 터치, 스킨십이 달랐던 것은 정말 예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안아주시고, 안수하여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하늘의 축복을 받고 기쁨을 누렸고, 나병 환자는 병을 치유 받게 됩니다.
우리 가족들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 부모님, 자녀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상대방의 감정을 읽으며, 정성스럽게 어깨를 주물러 주시고, 자녀들을 쓰다듬어 주시고, 포옹하여 주시고, 악수하여 주신다면 진심이 전달되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상대방도 나에게 사랑의 표현을 더하여 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본능입니다. 사랑에 사랑이 더하여 지고, 은혜에 은혜가 더하여 지며, 진심에 진심이 더하여져서 생명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캥거루 캐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기의 살을 맞대고 안으면서 아기의 체온을 유지하고,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는 치료법입니다.
몇 해 전, 미숙아 쌍둥이를 출산한 엄마 케이티는 두 아이 중 남자 아기인 제이미가 호흡을 하지 않아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으로 엄마인 케이티는 의사 선생님에게 아이와의 이별인사를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바로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산모인 케이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사망선고를 받은 아기 제이미를 엄마 케이티는 안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 인사를 합니다. “아가야, 만나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고, 너무 사랑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제이미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료진은 ‘사후 반응’ 이라고 진단하였지만, 이내 제이미는 숨을 쉬고, 움직이고, 엄마의 젖을 찾는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케 하였고, 캥거루 케어의 놀라운 주인공이 됩니다. 엄마의 따뜻한 가슴이, 심장소리가 죽은 아기를 살려낸 것입니다. 제이미는 무럭무럭 잘 자라 귀여운 꼬마 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 최고의 의료진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미숙아의 생명을 살려낸 것은 바로 따뜻한 어머니의 가슴이었습니다. 엄마의 숨소리, 따뜻한 체온, 사랑한다는 고백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났던 한 작은 생명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한 기적의 치유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랑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스킨십은, 특히 자녀들에게 부모님의 따뜻한 안아주심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강력하고, 가치 있는 사랑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하고, 귀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안아 주시고, 어깨를 주물러 주시고, 손을 만져 주시고, 사랑의 터치를 더하여 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된 교회 공동체 식구들을 만나게 되시면, 이성 간에는 존중함과 귀함의 마음이 담겨 있는 정중한 악수를 청하여 주시고, 동성 간에는 사랑의 마음 가득 담아 안아 주시고, 포옹하여 주십시오.
사랑의 스킨십에,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정말 주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난 5주 동안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여러분의 제1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이십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이 사랑의 언어를 나누고 계십니까? 함께 고민하고,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의 언어를 통해 삭막하고, 괴로움이 가득한 곳에 주님의 사랑과 평강, 위로가 가득하여 질 줄 믿습니다. 이것을 전하는 전달자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남은 2017년의 시간들, 사랑의 언어들로 매일 매일을 채우시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ㅣ구재원 목사(초대교회, 한국예배기획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