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주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한국의 한 분식점에서 일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꽤 규모가 있는 현대화된 음식점에서 저는 여러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분주하게 테이블을 오고 가며 음식주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그런지 서툴기 그지 없었습니다. 노인들 세 분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서 주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음식 이름을 들었는데 꿈이라서 그런지 도무지 기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주방장에게 말하려고 갔는데 주방장이 종이에 적어 오라고 신경질을 냅니다. 허겁지겁 주문 전표 용지를 찾느라고 여기 저기 뒤지다가 간신히 전표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문 받은 음식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 손님에게 가서 주문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미 30분이나 지났습니다. 걱정스러웠습니다! 몰래 쪽문으로 그 노인들을 바라보니 늦게 나오는 음식 때문에 이미 단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이 기분 나쁜 꿈을 박차고 깨어 났습니다. 새벽기도회에 갈 시간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옷을 입으면서 제가 목사라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활 규범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책이 탈무드(Talmud)입니다. 거의 경전에 버금가는 이 권위있는 책 속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의미있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평생 동안 지속되는 물음은 무엇인가?" 정답은 "아예카(Ayeka)"입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Where are you?)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숲 속에 몸을 숨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던지신 하나님의 첫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경 원전에 보면, 여자는 선악과를 따 먹으라는 뱀의 유혹에 많은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과일에 손을 댑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먹으라는 말 한마디에 아무 생각없이 냉큼 주워 먹습니다. 남자라는 동물이 원래 다 그렇습니다. 갈비가 빠져서 그런지 쓸개 빠진 짓도 잘 합니다. 그러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3:9)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아담은 비로서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숨을 존재가 아니라, 떳떳이 서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아예카"라는 질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해 계속 흘러갑니다. 동생을 죽이고 숨어 버린 가인에게도, 욕심 때문에 남몰래 전리품을 숨겨 버린 아간에게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 행 선박의 밑바닥에 몸을 숨긴 요나에게도, 그리고 박해를 피해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려고 아리안 가도를 급히 걷고 있던 사도 베드로에게도 주님은 "아예카"를 물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과연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이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인간의 책임있는 삶의 자세를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아예카?"(아무개야,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짧지만 이 진지한 물음 앞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책임있게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